아들 편을 들고 싶었던 순간들

하루 45점, 그 문자가 도착한 오후

by 교육학자 최애은영

벌점 문자


평범한 오전이였다.

강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고등학교 학생생활부]

"○○○ 학생 벌점 안내 자켓 미착용 15점

바지 미착용 10점

넥타이 미착용 10점

셔츠 미착용 10점..."


하루에 45점.

잠깐, 벌점 45점이라고?


나는 문자를 세 번 다시 읽었다.


자켓, 바지, 넥타이, 셔츠... 대체 뭘 입고 간 거지?

속옷만 입고 갔나?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물었다.


"야, 오늘 뭘 입고 학교 간 거야?"


아들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교복 입고 갔지. 근데 자켓이 좀 짧아서 안 입었고,

바지는 슬랙스 입었고, 넥타이는 답답해서 안 했어."


그러니까... 교복의 형태만 갖춘 '나만의 스타일링'을 한 거였다.



멋부림 DNA, 대체 누굴 닮은 걸까


우리 아들은 멋부리는 걸 유난히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이리저리 매치하더니,

중학교 때는 무신사 사이트에 입덕했다.

매주 택배가 왔다.


현관 앞에 쌓이는 검은 비닐봉지들.

"또 샀어?" "응, 세일이야."

그 대화가 몇 번이나 반복됐는지 모른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교복마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런다. "엄마 닮았네."


부정할 수가 없다.


나도 패션계에 오래 몸담았던 엄마를 닮아서인지,

특이한 옷이 보이면 꼭 사야 했다.

머리색도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무지개를 다 얹어봤다.

다들 미대 교수님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나는 늘 튀었다.


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게 그냥 나였다.


그 DNA가 아들에게 고스란히 흘러갔다.


문제는, 나는 자유로운 직업이고,

아들은 교복을 입어야 하는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거였다.




코로나가 바꿔버린 것들

사실 우리 때는 달랐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선도부가 줄지어 섰다.

전교생이 한 줄로 서서 교복 점검을 받았다.

치마 길이, 바지통, 머리 길이까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억울할 일이 없었다.

모두가 똑같이 점검받았으니까.


그런데 코로나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교문 점검은 사라졌다.

밀집을 피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대신 교복 점검은 담임과 각 교과 선생님의 '재량'에 맡겨졌다.


재량.


이 단어가 문제였다.

어떤 선생님은 꼼꼼히 체크했고,

어떤 선생님은 대충 넘어갔다.

어떤 반은 매일 점검을 받았고,

어떤 반은 한 학기에 한두 번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하필이면, 원리원칙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었다.




원칙대로 하신 거예요, 그런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담임선생님은 잘못하신 게 아니다.


선생님은 학칙대로 하셨다.

교복 미착용은 벌점 대상이고,

선생님은 그 규칙을 '정확하게' 적용하셨다.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고,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학교에 전화해서 "왜 우리 애한테만 벌점을 주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오히려 죄송했다.

규칙을 안 지킨 건 우리 아들이니까.


그런데.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엄마, 옆 반 애는 나보다 더 심하게 입고 다녀.

근데 걔네 담임은 아무 말도 안 해."


"1반은 자켓 안 입어도 아무도 신경 안 써.

왜 우리 반만 이래?"


"내가 반을 잘못 걸린 거야.

진짜로."


교육학자의 머리, 엄마의 마음


솔직히 고백하면, 마음으로는 아들 편을 들고 싶었다.

'선생님이 좀 너무하신 거 아니야?

다른 반은 안 그러는데 왜 우리 반만?'

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교육학자니까.

강의실에서 예비 교사들에게

"부모가 교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아이도 학교에 잘 적응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규칙대로 하신 거야. 네가 잘못한 거잖아.

서운한 건 이해하지만,

엄마는 선생님이 잘못하셨다고 생각하진 않아."


아들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는 맨날 선생님 편이야."

가슴이 찔렸다.


나는 선생님 편도, 아들 편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어서 원칙을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들에게는,

그게 '엄마가 내 편이 아니다'로 들렸을 것이다.




규칙은 누구에게나 같아야 한다


밤에 아들이 잠든 후,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아들이 잘못한 건 맞다.

교복을 제대로 안 입었으니까.

그리고 아침에 제대로 입혀 보내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교복 규정은 '학칙'이다.

담임선생님과 그 반 학생들만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전교생에게 적용되어야 할 규칙이다.

그런데 어떤 반은 점검을 안 하고, 어떤 반만 점검을 한다면?

어떤 선생님은 넘어가 주고, 어떤 선생님만 벌점을 준다면?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앞차가 불법유턴을 했다.

나도 따라서 유턴했다.

그런데 경찰이 나만 세워서 벌금을 내라고 한다.


"앞차도 그랬는데요?"

"그건 내가 못 봤어요.

당신만 걸렸으니 당신만 내세요."


괜찮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규칙 자체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가 생기는 거다.


일관성, 내가 늘 강조하는 것


일관성.


이건 내가 강의할 때 정말 자주 하는 이야기다.


"규칙은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규칙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봐주고,

어떤 상황에는 예외가 적용되면,

학생들은 규칙이 아니라

'처벌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생깁니다."


나는 늘 이렇게 실천한다.

강의에 10분까지는 지각해도 봐준다.

대신 11분에는 예외 없이 지각 처리한다.

10분 59초에 들어온 학생도 출석,

11분 1초에 들어온 학생은 지각.


야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이런 일관성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10분까지만 가면 돼"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니까.


"오늘은 봐주실까,

안 봐주실까"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 아들의 학교는,

그 일관성이 없었다.


규칙은 같은데,

적용은 반마다 달랐다.




그 후로 벌어진 일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아들은 담임선생님과 정말 힘든 나날을 보냈다.


선생님 눈에 아들은 '말 안 듣는 학생'이 되어갔고,

아들 눈에 선생님은 '나만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관계는 점점 꼬여갔다.

그리고 나는 결국,

교장선생님을 찾아가게 됐다.


교육학 박사가, 아들 문제로 교장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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