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워킹맘이 작가가 되기까지
노란 햇살이 비쳐드는 한 브런치 카페,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이 등굣길 아이들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와 상관없는 모르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괜스레 움츠러든다. 부러웠던 걸까?
평범한 대한민국 워킹맘인 나의 하루는 아이 등원, 회사, 하원, 육아와 집안일이 전부였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어 인플루언서들의 SNS를 구경하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아니, 휴식인 줄 알았다. 정작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으니.
숨 가삐 뛰어다니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남편의 퇴사! 나는 어깨마저 무거운 가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살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삶에서 크게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공황발작. 숨 가쁘게 살다 숨을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일상은 웨하스처럼 바스러질까 위태로웠고, 나는 더 불안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놓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삶에 대한 의지였다. 스스로를 다시 살려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새로이 움직였다.
육아 퇴근 후 즐기던 밤의 여가를 버리고, 일직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벽 기상을 들였다. 전에 없던 혼자만의 시간에 명상을 하고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내면을 채우고 있었던 것일까! 우연인 듯 운명인 듯 글쓰기를 만났고,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한 말들을 손 끝으로 쏟아내었다. 그러다 나의 진짜 브런치, 이곳에 다다랐다.
글을 쓴다는 건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하얀 화면 앞에 자신을 꺼내 놓으면 미처 몰랐던 저 깊은 곳의 나까지 언어가 되어 있었다. 묻지 못한 질문과 설명하려 애써보지 못한 말들이 텍스트에 투영되었다. 거울 앞에 선다는 건 거울에 나를 비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들 들여다보는 게 목적인 것과 같이, 글을 쓴다는 건 입력이 목적이 아니라 출력된 내면을 마주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기대하지 못한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짧고 긴 글로 자아냈고, 그것을 이불 삼아 덮곤 했다. 그러다 어떤 기적을 발견했다. 나들 위한 이불이라고 생각했던 글들이 다른 누군가를 덮어주는 모습을. 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글들이 다른 누군가를 비춰주는 경이를. 그랬다. 내 글을 발행한다는 건 이 글이 타인에게 향할 수 있다는 것.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되고 그때 우리는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는 것을.
나를 찾으려 시작한 글쓰기는 이토록 기대치 못한 소통과 연결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나를 살리고자 했던 일들이 어느새 새로운 꿈으로 자라났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났고, 글은 쓰면 쓸수록 쓰고 싶은 내가 커졌다. 특별할 것 없이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내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하고 싶은 이야깃거리들이 있었다. 혼잣말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행동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공황장애를 훌훌 벗어 버렸고, 그 자리에 새로운 꿈을 입었다. 글로 나와 우리를 살리겠다는 작가의 꿈을.
브런치는 내게 자유로운 캔버스가 되어주었다. 동시에 소통의 무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책장에 차곡차곡 꽂혀가는 책들처럼 이곳 브런치에는 내 이야기들이 한 권 한 권 해마다 자리를 더해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고, 전자책을 써보기도 했다. 공저로 에세이를 출간하는 경험을 해보고, 지금은 나만의 단독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진짜 작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꿈꿔본 적 없는 이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그 이름을 나는 이곳에서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보다 선명히 그려내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고 같았던 그 일 덕분에, 나를 살리고자 했던 움직임 덕분에, 그리고 자유로이 펼칠 흰 눈밭 같은 이곳 덕분에. 또 하나, 이곳에서의 만남들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모르는 웃음이 가득한 남들의 브런치 모임이 부럽지 않다. 한층 단단해진 나는 그 소리를 뒤로 하고 혼자만의 테이블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세상에 닿을 이야기를 쓰는데 몰입한다. 그렇게 나만의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내가 되어. 어쩌면 글 앞에 동그랗게 모일 우리들의 브런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