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가 지망생의 첫걸음
책이 좋아지니 글쓰기가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나마 내 책에 대한 환상이 생겼다.
책을 쓴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저 두꺼운 분량을 가득 채운 글을 써낸다는 건 어떤 호흡으로 해야 하는 일일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분량만 해낸다면! 원고만 쓰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되는 것이 책인 줄 알았다. 그렇게 장소와 계절을 보내고 보내며 원고를 쌓아갔다. 제법 묵직한, 무려 90,000자에 달 하는 글! 해냈다고 생각했다. 거의 다 왔다고. 책까지 이제 코 앞이라고.
하지만 원고가 다가 아니었다.
분량을 채운 원고를 쥐고 내가 들어간 곳은 끝없는 퇴고의 굴레. 고치고 고쳐도 섬세히 매만지거나 혹은 과감히 뜯어내야 할 곳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이건 끝을 내야 끝나는 일이구나.’ 싶었다. 언제까지나 붙잡을 수도 없고, 퇴고는 마지막 순간 까지도 할 수 있으니 이제 다음 산인 투고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출판사에 나의 원고를 제안하는 일. 나는 정녕 원고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역시 원고가 다가 아니었다.
출간 기획서가 필요했다. 책을 내 줄 출판사에게 왜 내 원고가 책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영향력을 가진 책이 될 수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출간 기획서는 인터넷에 전형적인 양식이 올려져 있었다. 표로 잘 짜인 양식에 항목을 채워 넣으면 그만인 듯 보이는. 하지만 그 항목을 채우는 것도 고심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욕심을 좀 더 내본다면, 양식 그 이상의 기획서를 내밀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그 욕심을 택했다.
표에 채운 내용을 골격 삼아 나만의 풍성한 기획서를 기획해 보았다. 기획서를 기획하다니… 이것은 실로 또 다른 기획이었다. 제목과 부제목의 세트를 고민하고, 작가 소개, 기획 의도, 타깃 독자, 홍보 방안 등 하나하나의 항목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성했다. 내용이 잘 설명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출판사 분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을 그려보며. 이렇게 기획서를 작업하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공수와 고심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마치 또 다른 원고를 쓰는 듯 에너지가 들어갔고, 원고에 앞서 이렇게 전략적인 기획을 했더라면 내 원고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글은 글! 나의 글은 전략보다는 마음 흐르는 대로의 그 자취를 따라가다 만나는 생각에 집중하는 글이기에 이내 마음을 끄덕였다.
원고와 출간 기획서. 이제 정말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간이라는 것은, 그 이전에 투고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물론 앞선 작업들이 만만했던 건 결코 아니지만).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출판사들이 있었다. 그중에 나의 책을 내줄 곳을 찾는 일, 그리고 그 선택을 받는 일. 이것은 누가 맺어주는 인연일까? 일단 그 인연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 필요했다.
출판사 이메일 리스트를 확보하기 위해 집에 있는 책들부터 쭉 훑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서점에 가서 출판사 조사를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많은 리스트를 확보했다.
그리고 투고를 위한 이메일을 작성했다.
메일 제목부터 작가 소개, 원고 소개 등의 내용은 공통으로 들어가되 출판사 별로 ‘내가 왜 이곳에 투고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썼다. 이것은 또 다른 작업이었다. 평소 책을 읽을 때 출판사를 열심히 보거나 고려하지 않았다. 때문에 출판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우선 투고하려는 출판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어떤 책들을 주로 출간하는지 살펴보고, 그중에 내가 읽은 책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았다. 그러다 인상 깊이 읽었던 책을 발견하면 “유레카!” 이것에 곧 든든한 레퍼런스가 된다. 그 책의 좋았던 점을 이야기하며, 귀사와 함께 나의 책이 이러이러한 책으로 만들어지길 희망한다고.
그렇게 한 곳 한 곳의 출판사를 고르고 들여다보며 나와 그의 연결 고리를 찾아 메일을 작성하다 보니 제법 많은 에너지가 들고 속도가 더뎠다. 출간을 위해서는 최소 100군데는 투고해야 한다던데, 그러려면 한 번에 10개씩도 메일을 보내고 해야 한다던데 이 정도 속도로는 일과 정리 후 겨우 3개 남짓 해낼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러다 한 달 내내 투고만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 사이에라도 누가 긍정의 회신을 주면 좋을 텐데. 이렇게 공을 들였으니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이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조급해지지 않으려 했던 내 마음과 달리 손가락은 솔직했던 것이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메일을 보내놓고, 다음날 아침 6시 눈 뜨자마자 메일함을 확인했다. 당연히 메일함에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나 대체 뭐 하는 거지? 뭘 기대한 거지?’ 스스로가 너무 우스웠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안달이 나서 어쩌냐며 스스로를 달래 보았다.
회사 이메일이 아닌 개인 이메일은 사실 평소에 쓸 일이 잘 없다. 뽀얀 먼지 속에 확인하지 않는 메일들만 수백 개씩 쌓여가고 있었다. 그랬던 메일함을 미리부터 깨끗이 정리하고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본다. 회신 온 곳은 없는지,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았는지. 그야말로 질척대고 있다. 빠르게 읽어본 곳을 발견하면 너무 기쁘고 금세 좋은 일이라도 생길 것 마냥 희망이 들어찼다. 하지만 끝끝내 열리지 않은, 어쩐지 앞으로도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메일들도 있었다. 그리고 열린 곳도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어디 책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출판사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투고 메일이 쏟아져 들어온다던데, 나도 one of them 일 텐데, 책을 만들어낸다는 건 어마어마한 투자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내 원고가 발탁된다는 게 어디 쉬이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기로 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지은 이 원고가 책이 되어야 할 이유. 그 불씨를 잘 지켜내며 씩씩하게 투고를 이어가기로 말이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더 크다.
글쓰기를 너머 기획을 해보고, 출간 제안을 해보는 일. 작가가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씩 서툴지만 충실히 밟아가는 이 시간을 누려보자고.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이 길을 설레며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