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돕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
연휴의 첫 날, 남편과 나는 각자 집에서 작업할 일들을 살포시 미루고 아이와 나들이를 나섰다. 회사일도 많고 퇴근 후에는 원고 투고를 위한 작업으로 분주한 요즘이었다. 분주했다는 말에는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시간에 쫓기고 머릿속이 지지직 거렸다. 어깨는 매일같이 뻐근했다. 휴식이 필요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그런 휴식. 하지만 바다까지 찾아가기엔 시간과 체력 소모가 녹록치 않을 터라, 적당한 거리의 호수 둘레길로 종일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야말로 요즘 딱 필요한 그런 나들이. 햇볕을 쪼이고 땀 흘리며 걷고 카페에 앉아 책을 실컷 읽으며 중간중간 우리들의 도란도란 타임을 가졌다. 마음이 꽉 찼던 날, 나들이로 노곤해진 식구들이 모두 잠들고 나는 다시 작은방 불을 켜고 들어갔다. 에너지를 얻었으니 이제 할 일을 해야지.
에세이 투고를 계획하고 있다. 원고 작업에 이어 기획서 작업, 투고할 출판사를 알아보는 일까지… 글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책쓰기는 그 뒤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이 이토록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한꺼풀 해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꺼풀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한 덩이 빵이지만 알면 알수록 켜켜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크로아상처럼 투고의 A부터 Z까지는 그야말로 섬세한 겹들의 향연이었다. 보드라운 겹을 완성해가며 때로는 기쁨에 부풀었지만, ‘지난한 과정’이라는 말을 종종 떠올릴 만큼 점점 마음에 어려움이 들어섰다. 그것이 예민함으로 표출되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래, 원래 예술가며 작가며 많이들 예민하댔으니까.‘ 라며 나의 뾰족함을 스스로에게 합리화해 보이기도 했다. 그럴때면 내가 정말 첨예한 작가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 엄마의 고군분투를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바삐 움직이며 열심히 하는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던 것일까? 며칠 전 다같이 서점에 간 일이 있다. 아이를 어린이책 코너에 데려다주고 마음에 드는 책을 보고 있으라고 했다. 엄마는 저기 에세이 코너에서 필요한 책들을 보고 있겠다고 말하며. 그리고 나는 매대의 책들을 찬찬히 살피며 예전에는 제대로 펴본적도 없는 책의 제일 뒷장을 먼저 찾았다. 투고를 위해 출판사 정보가 필요했다. 처음 투고를 해보는 초보작가들은 수백개의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다고 한다.
‘세상에… 수백개나? 그렇게까지 해야 단 하나의 출판사를 만날 수 있는거야? 아니, 그렇게 하면 만날 수 있는건 맞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여러 마음과 의심이, 그리고 그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 묘한 자존심까지 스믈스믈 들었다. 하지만 책을 알면 알게 될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현실적으로 투고라는 작업을 알아보게 될 수록 내 질문은 겸허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제는 한 권 한 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책의 뒷 면을 펼친다. 출판사 이름과 이메일 정보 사진을 찍는다. 나만의 투고 메일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결국에 필요한 단 한 곳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책을 살피며 사진을 찍는데 심취한 내 옆에 작은 그림자가 나란히 섰다.
“엄마 내가 도와줄게.“
엄마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요새 익히 봐서 알고있는 아이는 금새 곁으로 다가와 작은 손을 내민다. 저 쪽에서 흥미로운 어린이책을 구경하는게 더 재밌을텐데, ‘돕고 싶다‘는 말을 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이 책은 어때? 이 책도 할까?”
물으며 책 뒷장을 잡아주었다. 혼자 책 넘기랴, 사진 찍으랴 뒤엉키던 내 두손은 아이의 작은 손이 책을 맡아주는 동안 사진을 잘 찍어내는데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저 엄마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겠거니 생각했다.
그 후 어느 저녁, 여느때처럼 아이와 나는 각자의 책상에 나란히 앉아 할 일을 했다. 나는 겹겹이 이어진 기획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연필이 점점 연필깎이 안으로 깎여 들어가듯 빨려들어가며 뾰족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수시로 왼쪽으로 몸을 돌려 아이 수학문제 푸는걸 도와주고 이런저런 말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나의 왼쪽과 오른쪽은 퇴근 후 엄마의 일과 작가의 일을 다 잘 해내겠다며 서로의 치열함을 뽐내고 있었다. 할 일을 마친 아이는 이번엔 동그란 얼굴로 새로운 요구를 한다.
“엄마, 나도 돕고 싶어. 돕게 해줘.”
하아… 기획서 작업도 하고 원고 작업도 해야하는데 네가 뭘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이 와중에 네가 도울 일도 찾아줘야 할까… 이기심의 투정이 마음을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 동그란 얼굴의 두 눈은 진심이었다. 돕고 싶다는. 그래, 이 마음에 집중하며 엄마는 나름의 기지를 발휘한다.
“그럼 엄마 출판사 리스트를 아직 많이 못 모았는데 이거 도와줄래?”
하며 태블릿으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간다. 에세이 목록을 선택하고 그 안에 책들을 한 권 한 권 선택한 뒤 출판사 이름이 나오게 캡쳐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사진만 보고 손쉽게 출판사 이름을 정리할 수 있다며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 그리고 아이는 이내 자신의 임무에, 나는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됐다 됐어, 이러면 아이도 나를 돕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나도 덕분에 필요한 리스트를 모을 수있겠어.’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무척 흡족해하며 이어지다 끊어지다를 반복하던 그 작업에 다시 머리를 갖다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 이 책도 할까?”
“엄마 이것도 에세이야?”
“엄마 아까 그 페이지가 없어졌어.”
으아아! 아이는 내게 세 문장을 연달아 읽을 시간을 주지 않으며 질문 추임세를 넣었다. 도와준다더니… 돕고 싶다더니… 점점 마음 속 무언가가 한계치까지 차올랐다. 결국 나는 딱딱한 얼굴로 독한 대사를 내뱉었다. 엄마는 지금 글 써야하는데 진도를 못나간다고, 돕는거 맞냐고. 와… 나 정말 이렇게 말했을까? 다시 쓰면서도 내 자신이 너무 못돼서 심장이 가냘프게 떨린다. 아이를 키우며 내 인격의 밑바닥을 한번 씩 마주하는데, 이 날도 그 중 하나가 되겠지…
엄마를 도와주던 동그란 얼굴은 이내 죄인처럼 풀이 죽었다.
“엄마 미안.”
미안해… 미안한건 엄마인데 네 그 작은 입으로 미안을 말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며칠 시간이 흐른 어젯밤, 잠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종일 꺼두었던 원고 작업자 모드를 다시 켰다. 시간은 금세 자정을 지났고, 이제는 투고 메일 리스트를 정리해보려 엑셀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가 캡쳐해둔 자료를 찾으려고 태플릿 사진첩을 눌렀다.
와르르…
동그랗고 묵직한 잘 익은 빨간 사과같이 탐스런 무언가들이 마음에 쏟아져 들어왔다. 사진첩 안은 아이가 캡쳐해놓은 수십, 어쩌면 백장이 넘을지 모를 책 사진들이 가득가득 차있었다. 머리를 댕 하고 맞은 듯, 마음에 보신각 타종이 울린 듯 내 안팎의 모든것이 정지했다. 며칠이 지난 한밤중에야 열어본 아이의 사랑 앞에 죄 많은 엄마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사랑의 순도 앞에, ‘돕고 싶다‘는 맑은 마음 앞에.
아이가 모아둔 사진에 의지하며 그 출판사를 검색하고 이메일을 찾아냈다. 그리고 엑셀 파일의 리스트를 한줄 한줄 채워갔다. 무슨책인지도 모르고, 별로 재미있는 일도 아니었을텐데, 엄마에게 핀잔까지 들어가면서 찍어놓은 귀한 사진들. 그 노력에 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피곤함을 붙들고 하나라도 더 리스트에 올리고 올렸다.
나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엄마 작가되는거 도와주겠다고 우리 딸도 이렇게 손을 보태고 마음을 모으는데,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앞으로 투고하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 아이가 만들어준 이 책장에, 그리고 아이의 응원에 기대어 힘을 내야겠다. 그래서 책이 세상에 나오고 한발 한발 작가로 성장하면서 ‘네가 날 키웠다‘고 꼭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그리고 도움이 되고파하는 그 마음을 더 깊이 알아주고 소중히 대해야겠다. 동그란 얼굴, 동그란 마음이 엄마의 모난 표정으로 다치지 않도록 내가 더 넓어져야겠다. 순수한 그 마음이 마음껏 구를 수 있도록.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