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며 울컥하는 지점

스무 살 내 어설펐던 날들의 기억

by 클로드

지난 주말, 우리 세식구의 첫 음악회 나들이가 있었다. 마침 지브리&디즈니 OST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제 초등 3학년이 된 아이도 음악회를 경험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연주회 음악이 더 반갑도록 미리 애니메이션들을 함께 챙겨보았다.

연주회 당일,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긴장을 품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만에 이런 연주회를 와보는지! 한참 신생아 육아를 하던 시절, 하루 휴가를 얻어 홀로 서울에 가서 음악회를 관람했던게 마지막이었다. 숨통 같았던 그 시간 속 아기는 이제 성큼 자라 함께 음악회를 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조금은 걱정되었다. 두시간의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아이가 즐기며 앉아있을 수 있을지 말이다. 지루해하면 자도 된다고 말해줘야지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빈 무대 위 수십개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덩치가 큰 악기들은 주인보다 먼저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의자와 악보 보면대 뿐인 빈 무대를 바라보는데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저릿해왔다. 이윽고 검은 옷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들고 자리를 채웠다. 무대 위 내 자리를 향한 그 발걸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20년 전 대학 오케스트라 동아리 시절 나는 플룻 연주자였다. 어두운 공연장 속 무대를 밝히는 조명 아래 긴장과 결의를 안고 또박또박 걸어갔었다. 자랑스러웠고, 실수 없이 해내고 싶었던 마음. 치열했던 연습 끝에 뜨겁게 무대에 올랐던 그 시간.


연주자들이 무대를 채우고 연주가 시작되기전 하는 일은 바로 튜닝이다. A(라)음에 맞춰 모든 연주자가 각자 자신의 소리를 얹어보며 체크한다. 이미 무대 뒤에서 수 없이 해봤겠지만 이렇게 연주 직전에 마지막 튜닝을 확인한다. 멜로디도 박자도 없이 겹쳐져 하나가 되는 이 소리 속에서 때아닌 울컥함이 올라왔다. 모르겠다. 그저 항상 이 지점에서 속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오른다.

플룻을 연주하며 수도 없이 튜닝을 했었다. 혼자 할때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둘 이상만 되어도 서로의 소리를 맞추는게 필요하다. 그 섬세한 작업이 나는 참 어려워 이리저리 악기를 맞춰보고 '이게 맞는건가?'하며 소리를내보곤 했다. 막상 연주를 하던 시절에는 이런 울컥함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객석에 앉은 나는 이 장면에서 번번히 주책스럽다.

왜 그럴까? 잊고 살던 옛 감각이 한꺼번에 몰려와서일까? 무대 위 그들을 동경해서일까? 대학 동아리 시절, 내 젊음의 모든 어설픔이 집약된 기억 때문일까? 감동일까 연민일까.


풋풋해서 더 어설펐고, 자유로운만큼 더 이리저리 부딪히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이 하고 싶어 들어갔지만 막상 마음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재수를 해서 들어간 나는 바로 위 선배들에게도, 동기들에게도 어색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과에서는 나와 같은 친구들이 많아서 어려움 모르고 적응했는데, 이 곳 동아리는 그게 참 어려웠다. 어느정도 친해진 관계도 있었지만 그 이상 깊은 마음은 나눠지지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강한척, 쿨한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연애하던 시절보다 연애 안하던 시절 더 복잡하고 속시끄러운 일들이 그 안에서 많이 일어났다. 2주의 짧은 연애, 그 후의 심적 후폭풍, 기분풀이 같았던 첫 미팅, 음악과 꽃다발 뒤로 사양했던 마음들, 우정으로 끝난 장기간의 썸.

그땐 뭐가 그렇게 어설프고 심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짠하게 기억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이 연주회 초반 한동안 어지러이 떠다녔다. 지금 내가 어지러운게 연주의 감동때문인지 생각때문인지 모를 만큼. 플룻을 놓은지는 오래되었다. 놓았다고 표현하기 민망할 만큼 수준급 연주자도 아닌 그저 취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단단하고 빛나는 이 악기 너머 오래도록 선명히 기억되는 과거의 내가 있다. 단단하게 보이고 싶었고, 매 순간 빛나고 싶었던 그 때의 나는 사실 자주 울고 작은 일에도 오래 무너져있는 사람이었다. 플룻과 나의 관계는 이토록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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