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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Jan 19. 2023

도쿄여행 5

2022, 12월 6일. 후타코타마가와, 다이칸야마





지명 속의 '가와(강)'에서 알 수 있듯이 '후타코타마가와'는 굽이지는 강가에 우뚝 서있다. 그 강, '다마가와'너머에 메트로폴리탄 도쿄가 있다.









후타코타마가와역은 우아한 여백들을 곳곳에 거느린 쇼핑몰 안에 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상점들과 레스토랑이나 디저트카페밖에 놓인 메뉴판을 유심히 훑어보며 라이즈(RISE) 쇼핑몰의 줄거리를 대충 파악한 후 밖으로 나왔다. 꽤 큰 규모의 아크테릭스가 눈에 들어오기에 당연히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 아크테릭스에서 사고 싶었으나 품절되어 못 샀던 파카는 역시 이곳에도 없었다. 겨울옷은 이미 다 판매되고 봄옷은 아직 들어와 있지 않은 매장을 그래도 한참 둘러보았다. 유리창너머의 예쁜 화병에 홀려 들어간 생활용품가게에서 남자친구가 한국인이라는 매장직원과 바디랭귀지가 범벅인 영어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다마가와', 그 강옆에 바짝 붙은 공원, 그 강 너머에 넓게 포진된 들판, 그리고 이것들을 크고 넓게 내려다보며 군림하는 아파트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역을 가로지르고 신호등을 몇 개 건너서 도시의 반대쪽도 훑다 보니 순식간에 후타코타마가와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전철역으로 돌아와 승강장에 서서 돌이켜 보니, 입을 도무지 다물지 못한 채 '우아, 우아, 우아'라며 감탄만 쏟아부은 반나절이었다. 에르메스를 품에 안고도 담백하기 그지없는 마을, 후타코타마가와는 다시 올만한 곳이었다. 전교 1등이 공들여 써낸 답안지 같은 이 동네는 시간을 내어 찬찬히 들여다 볼만한 곳이었다.


















예정했던 데로 늦은 오후에 다이칸야마에 도착했다. 자주 와서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길거리와 골목들을 돌아다니는데 도무지 신이 나질 않았다. 심기일전도 할 겸 제법 쌀쌀한 날씨에 얼어붙은 발가락도 녹일 겸 티사이트의 스타벅스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오래전 다이칸야마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많이 놀랐다. 그날 하루 종일 호들갑을 떨었던 내 심장 박동이 아직도 느껴진다. 이 동네의 많은 것들이 내가 처음 접하는 문화경험이었다. 이제는 한국에도 두루 퍼져있는 대형서점 안의 프랜차이즈카페를 다이칸야마 티사이트 스타벅스에서 처음 보았다. 그때 내 바로 옆자리에 여든이 족히 되어 보이는, 일본인 노부부가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책들을 가져와서 보았다가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서 앉았다, 하여간에 분주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시종일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서 이태리어교본을 읽고 계셨다. 두 분 앞에는 그란데사이즈의 아메리카노가 놓여있었다. 늦은 오후에 짙은 카페인이라니, 불면증이 없는 분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은 늙은이가 아니었던 나는 그 백발의 노부부를 한없이 흘릿거렸다. 내 미래의 모습이 저분들과 비슷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노인의 세계로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이 자진하여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옛 문호의, '역사는 젊은이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라는 말의 실체를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에서 나는 그날 보았다. 말랑말랑한 젊은 두뇌가 '책'과 '커피'라는 두 개의 문화를 한 상업공간에 촘촘히 묶은 현장을 나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처음 보았다. 게다가, 온통 펄떡이는 젊은 피들만이 빼곡했던 공간에서 1도 꿇리지 않았던 백발의 노부부는 다이칸야마에 대한 내 애정을 순식간에 키웠다. 그 이후 서울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향수 '르라보'를 사기 위해서, 혹은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곳들을 어슬렁거리기 위해 도쿄에만 오면 일단 한 번은 다이칸야마에 들렀다.    




방금 '후레쉬'한 후타코타마가와(줄여서 니코타마)를 보고 와서였는지. 4년 만의 다이칸야마를 보는 싸늘한 내 시선은 죄 없는 연인을 배반한 이의 죄 많은 눈길이었다. 커피잔이 비어 가는 동안 몸은 데워졌으나 마음이 좀처럼 달구어지지 않아 밖을 돌아다닐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애꿎은 창밖 하늘을 노려보았다. 잰걸음으로 허겁지겁 달려온 다이칸야마가 마치 속이 텅 빈 선물 상자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마음을 털어내려 식어서 오로지 쓴맛만 남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유서 깊은 고택이어도 쌓이는 먼지를 쓸고 닦아야 그 자리에 사람의 숨결이 스며드는 법이다. 이는 고택과 폐가를 가르는 지점이다. 이번 도쿄여행에서 들른 긴자에서 티파니 카페를 만났다. 서울에도 들어온 파인다이닝 '구찌오스테리아'에 관한 기사를 읽었기에 이종문화들의 또 다른 결합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티파니라는 보석과 파스타 또는 머그잔에 담긴 커피와의 '쨍'한 결합을 내 '생눈'으로 보았다, 온 사방이 은색으로 반짝 반짝 빛나는 긴자에서.

 




헬로 니코타마, 사요나라 다이칸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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