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이병헌

그가 돌아왔다.

by 클라우디아

한국에는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가 없다. 요즈음 빅뉴스의 중심에 우뚝 선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에서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 어느 유명한 아나운서와 대형 포탈 서비스 대표와의 결혼 소식이 널리 알려졌던 때였다. 그 대표의 출신 대학이 서울의 '본교'가 아니라 '지방' 캠퍼스라며, 뉴스에 알려진 그의 이력 중에서 출신 학교명에 지방캠퍼스란 사실을 병기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현재는 대한민국 대형 포탈 서비스의 대표라는 '격'이 있는 그의 과거에 붙여졌던 ‘낮은' 레벨이 수면에 드러난 에피소드였다. 예수는 정작 자신의 고향에서 홀대받는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불렸다. 기적을 보인 예수가 회당에서 드러낸 권위에도 불구하고 고향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너는 사생아일 뿐이야.'라는 말의 점잖은 버전이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코흘리개일 때 얼핏 서로 엿본 불알 크기로 여전히 상대방을 가늠한다. 미국은 졸업 후 10년이나 20년 후에 중고등학교 동창회를 한 번 연다. 반면, 연중무휴로 열리는 우리의 중고등학교 동창회는 출신학교라는 프레임 치기를 명료히 보여준다. 그쪽은 우리와 달리 땅이 넓어서, 다인종 국가여서 동창회를 자주 못하는 거요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출신에 대한 우리네의 집요함이다.




패미와 미투 운동이 점화된 지금의 한국에서 여성과, 특히 '성'과 관련된 스캔들을 가진 연예인의 복귀는 쉽지 않다. 한 번도 아니고 그에 관한 추문은 여러 번이었다. 소문과 뉴스의 어느 정도가 사실이던 아니던 다소 충격적이었던 '과거'가 따라다니는 이병헌이 안방으로, 드라마로 돌아온다는 것은 빅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제작진 쪽에서는 그의 복귀작 주제는 멜로가 아니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의병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된 이야기라는 보도자료가 재빨리 돌았다. 이병헌이 맡은 역과 여주인공역과의 대단한 나이차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함께 이병헌의 과거는 시작 전부터 대중들에게 이 드라마에 대한 피로감을 안겼다.




월정액을 내고 시청하고 있었던 넷플렉스에서 배포하는 이병헌 주연의 '미스터 션샤인'을 구태여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연기력만은 최고다라며 엄지 척을 받았던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보여준 여러 장면만큼이나 영화 ‘마스터'에서 보여준 이병헌의 필리핀식 영어에 감탄했던 터이기도 했다.




이병헌의 안방 복귀작 '미스터 션샤인'의 1회에서 이병헌의 아역배우에게 홀딱 빠졌다. 배꼽을 드러내고 머리는 산발을 한 체로 추노꾼과 배고픔과 추위에 쫓기는 그 꼬마가 안전하게 피난처를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청하다 보니 2회도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럭저럭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았다. 이병헌의 팬이라면 원했을 멜로적인 요소를 드라마에서 뺀 것은 여러모로 영리한 선택이다. 여타 드라마에서는 흔하다는 키스신 하나 없이 여주인공 '애기씨'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처럼 버리는 유진 초이를 대단히 극적으로 연출한 새드 앤딩도 현명했다. 내가 이병헌이었어도 여러 선택지 중에서 '멜로적인 요소를 줄인’ ‘순애보적'인 '새드'엔딩, 이 세 가지 요소를 망설임 없이 골랐을 것이다. 원래 극본이 그렇게 쓰여졌었건, 배우나 드라마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원했건 이 세 가지 요소가 시청률 면에서는 다소 마이너스적인 요인이었을 수도 있으나 이병헌의 '어두운' '마초'적 그림자에 순백의 색깔을 입혀주었다.




애기씨를 위해 온몸으로 총알을 받으며 죽는 유진 초이의 마지막 모습은 이병헌에게 따라다녔던 '마초'를 희석시키며, 동시에 ‘순교'의 효과를 준다. 여주인공이 '최유진'이라는 이름을 절규하면서 극 중 최유진은 죽고 이병헌은 부활한다. 뽀뽀 한번 안 해본 애기씨와의 ‘해피한’ 엔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애통이 이병헌을 일으켰다.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극 중 구동매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미워해야 할 텐데 맘에 들어 큰일이네'를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뱄었을 것이다. 드라마 내내 유진 초이라고 불렸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르러 '최유진'이라는 이름과 출생을 다시 찾는다. 미스터 션샤인의 높은 시청률과 유진 초이 역으로 받은 여러 가지 상으로 이병헌은 그의 이력의 시작이었던 드라마로 돌아와 그가 이전에 만끽했던 드라마 ‘아이리스’와 ‘올인’에서의 성공을 되찾는다.




이병헌의 드라마 복귀 성공이 조물주가 그에게 허락한 '여전히 아름다운 눈빛과 목소리'덕분 인지, 그의 자성과 노력, 안티팬조차도 한수 접게 된다는 탁월한 연기력이나 원어민 수준에 이른다는 영어실력 때문인지, 제작사, 기획사, 작가, 감독, 상업적 이익관계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합이 맞아떨어져서 인지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병헌의 리턴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것은 120~130여 년 전 프랑스에서 거대한 관심을 끌었던 '저주받은 3인'의 스캔들이었다. 이병헌이 일으켰던 스캔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대단한 추문이었다. 당대에 '저주받은 3인'이라고 불렸던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수잔 발라동과 그녀의 아들인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 아들의 친구이자 그녀의 애인이었던 앙드레 위터는 당대의 뉴스메이커들이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수잔 발라동은 세탁부의 딸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였다.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우여곡절 끝에 파리에 온 그녀는 수많은 허드 레일을 전전하다 화가의 모델일을 하였다. 그는 여러 화가들과 사귀면서 모델이자 '애인'으로도 살았다. 위 그림들은 자신보다 26살이 많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린 수잔 발라동의 모습이다. 이 그림들은 르누아르에게 있어 발라동이 어떤 존재였는지 쉽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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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을 모델로 삼았던 여러 화가들 중 로트렉이 수잔의 재능이 그림에 있다는 것을 발견해준다. 위의 두 그림은 화가 에드가 드가가 본격적으로 열어준 화가의 세계에서 발라동이 그린 자화상이다.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의 자의식을 굵고 대담하게 드러낸다.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과 비교해보면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또한 보여주려 하는지 확연하다. 르누아르 그림 속의 아래를 향한 다소곳한 시선과 달리 자화상속의 그녀는 세상과의 전쟁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마친 전사의 눈빛으로 관객을 응시한다. 구태여 도드라지게 그려진 목울대는 그녀가 맞서 싸울 상대에 대한 결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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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동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를 낳은 직후의 모습을 담아낸 자화상이다. 수잔 발라동의 페이소스 가득한 이 자화상을 지극한 슬픔 없이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나도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산고 후 마침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온 세상을 다 안은 듯 충족했던 엄마의 마음이 되어 봤기에 나는 알 수 있다, 자화상속의 발라동이 느끼는 추위와 결핍을.




화가로서 성공해서도 여전히 교양은 없었고 본능에 자주 몸을 맡기며 아들을 잊곤 했던 수잔 발라동을 어머니로 둔 모리스 위트릴로는 10대에 이미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가 결국은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단초도 수잔 발라동의 바로 이 서글픈 자화상이다.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어있을 때 치료법의 일환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어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늘 술에 취해 있고 술에 절어 거리를 헤매던 그였다. 집에서 그를 찾는 것보다 파리의 하수구위에 쓰러져 있는 그를 찾는 편이 더 빨랐다. 모리스 위트릴로가 주로 흰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백색 시대'시절, 파리의 뒷골목과 인적 드문 길을 다수 그린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안정과 부를 누렸던 후기의 '색채 시대'와 달리 '백색 시대'의 그는 파리 시내에 산재해있는 엄숙한 성당이나 위엄에 둘러싸인 궁전을 그리지 않았다.




수잔 발라동은 부르주아적인 안락한 삶을 제공했던 결혼생활 중, 아들의 친구인 앙드레 위터와 사랑에 빠진다. 수잔은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의 친구 위터와 재혼하며 또 한차례 파리지앵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당대인들은 수잔과 아들 모리스, 아들의 친구이자 수잔의 연인 위터를 합쳐 '저주받은 3인'이라고 불렀다.




이 세상에는 성자와 죄인이 같이 살고 있다. '돌아온 탕자'이야기에서 우리는 흔히 성실했던 형의 입장이 되어 방탕한 동생과 그를 감싸는 아버지를 비난한다. 이 세상에는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들도, 그 두 형제를 다 품어야 하는 아버지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는 형이기도 동생이기도 한데. 이 삶은 결코 한 가지로 재단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단순하기도, 복합적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한 번씩 즐거운 시간이 우리에게 불쑥 찾아온다. 동시에 밍밍하거나 슬픈 시간들 또한 적지 않다. 가끔 신이 날 때가 있다. 드문 행운에 어리둥절해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속절없이 그 행운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억울해도 울 수 없을 때가 있다. 슬퍼도 구슬픈 어조의 노래 따위는 부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영의정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바글거리고 영의정이 죽으면 그 빈소엔 개미 한 마리조차 구경할 수 없다는 세속이 두려워서 내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구슬픈 노래는 부르기도 전에 나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냉담함에 무너지기도 한다. 구렁텅이에 빠진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고 모른 체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혹 나에게 침을 뱉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내 부덕의 소치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나와 나를 모른 체하는 그와는 우정의 계량단위가 틀려서 일수 있다. 내 상황이 바뀐 만큼이나 그의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모르는 체하는 그 '분'이 이제와 알고 보니 사실 못된 ‘놈'이었을 수도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이 묵직하게 채워진 것이 우리의 삶이다. 결코 한 가지로 매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일생이다. 인간이 제조한 색깔로는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신이 창조한 인간의 면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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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두어 가지의 억울함이 거듭될 때, 때론 슬픔이 산을 쌓을 때 나는 모리스 위트릴로의 백색을 본다. 그가 그려낸 적막한 골목에는 사람들이 없거나 혹은 있다 하더라도 드물다. 위트릴로의 백색이 물끄러미 나를 본다. 군데군데 묻어있는 희끗희끗한 때를 배경으로 한 위트릴로의 백색은 오장육부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내 심정을 알아듣는다. 아픔과 고독이 걸러지지 않은 체 백색의 벽에 박제되어 있는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은 19세기 파리가 그에 관한 추문을 단죄하고 일말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남아 있지 않았을 백색이다.




모든 것을 단죄하고 난 끝에 한쪽 눈이 없거나 한쪽 손이 없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수잔 발라동의 페이소스 가득한 자화상과 모리스 휘트릴로의 백색이 건네는 위로를 알지 못했다면 나는 조금 더 길게 이 서글픈 시간을 견뎌야 했으리라.




표지 사진 모리스 위트릴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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