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by 클라우디아

잠깐 스치듯 나를 본 남자 사람이 중간에 사람을 넣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때 나는, 어영부영 보낸 대학 4년에 대한 후회에 전공에 대한 뒤늦은 열정이 더해져 막 공부 맛을 알아가던 대학원 1학기 중이었다. 한 달 동안 핑퐁처럼 거절과 청이 통통거리며 튀어갔다 튀어 왔다. 때는 봄이었고 캠퍼스에는 온통 꽃들이 만발했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살랑거리는 바람에 내 마음은 조금씩 움직였다. 이 화창한 봄날, 그 남자 사람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 과히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맘이 들었다. 일단 만나는 보고 거절을 해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5월 어느 날, 덕수궁 옆 코리아나 호텔 카페에서 그 남자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바로 옆의 세실극장과 덕수궁 돌담길을 염두에 두고 내가 정한 장소였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남자 사람을, 사귀겠다는 마음도 없으면서, 사람의 심리란, (으이구), 흰 블라우스에 잘록한 허리 아래로 촤르르르 퍼지는 하늘색 잔꽃무늬 치마를 옷장에서 공을 들여 골라 입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이상형은 키와 골격이 크고 마른 체격으로, 성큼성큼 걸으면 휙휙 휘날리는 도포자락이 어울릴법한 선비 타입이다. 쌍꺼풀 없는 눈에, 얼굴에는 번들거리는 기름기가 없어야 했다. 약속시간에서 10여분이나 지나 쌍꺼풀은 없으나 기름기와 땀이 범벅이 된 얼굴의 남자 사람이 마치 나와 익숙한 사이라도 되는 양 내 앞자리에 철부덕하고 앉았다. 봄인데 날씨가 왜 이리 덥냐며 혼잣말인지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지 모를 말을 하며 재킷을 훌러덩 벗었다. 셔츠 단추 사이로는 이제라도 막 튀어나올 듯 만반의 준비를 마친 풍부한 살집이 보였고 팔뚝은 씨름 장수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오렌지주스처럼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이 정도면 적당히 시고 달아서 맛있다는 귤도 내 입맛에는 매우 시어서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내 앞에 철부덕 앉아 훌러덩 재킷을 벗은 남자 사람은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음료수 어떠시냐며 내게 묻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오렌지주스 두 잔을 주문했다. 덥기는 엔간히 더웠는지 그는 오렌지주스를 원샷에 벌컥 들이키더니 그럼 이제 나가보자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대로 향하던 그는 뭔가 중요한 것을 테이블에 놓고 온 사람처럼 획 돌아가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갔다. 내가 몇 모금 홀짝거리다 남겨둔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더위를 무척이나 타고, 시원한 주스를 두 잔 들이킨 남자 사람과 두어 마디 이야기도 나눠 보지 못한 체로 코리아나 호텔 카페를 나왔다.


덕수궁 옆 세실극장


(뭐.. 당연히...) 처음 보았을 때 맘에 들었다는 둥, 사귀어 보고 싶다는 둥, 그 남자 사람이 나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을 하고 나간 자리였다. 나는 그를 이리저리 자로 재어 볼 심산이었다. 카페에서의 탐색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색하고도 찌릿찌릿한 남녀 간의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덕수궁 돌담길을 나란히 걸을 줄 알았다. 그 돌담길의 끝자락에 다달을 때쯤이면 나만의 은밀한 심사도 대충 마무리될 듯했다. 그 길 끝에서 그 남자 사람에게 안녕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정할 예정이었다. 카페에서 나오자 그는 잠시 들를 곳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했고 나는 굳이 거절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내 시나리오는 그렇게 완전히 비껴갔다.


덕수궁 옆 성공회 건물
덕수궁 옆 성공회 건물
덕수궁 옆 성공회 건물과 이어져 있는 경운궁


토요일 오후, 퇴근길의 직장인들, 하교길의 학생들, 주말 나들이객들로 몹시 혼잡한 버스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아현동 고개를 넘어 이대 부근 버스정거장에 내렸다. 큰 거리를 뒤로하고 추레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더 추레한 어느 건물의, 더더 추레하고도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여니, 더더더 추레하고 어둑한 화실이었다. 그의 친구인듯한 화가와 데생 수업 중인 학생들이 있었다. 잠시 후 학생들이 레슨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는 친구인 화실 주인에게 나를 짧게 소개했다. 둘의 대화가 곧장 무거워지는 바람에 나는 한껏 옆으로 비껴 섰다. 화실의 주인은 그날 아침, 국전에 작품을 출전했으나 장려상에 그쳤다는 결과를 받고 낙담을 넘어서 절망 중이었다. 인맥과 학맥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고졸의 화실 주인은 자력으로 장려상을 받을 만큼 '실력자'였으나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화실 주인은 낙향과 전업을 말했다. 주변에서 모두 인정하는 화가의 '실력'을 언급하며 그는 거듭해서 화가를 격려했다. 둘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진지해졌고 이야기는 끊어질 듯 말듯하며 이어졌다. 소주와 멸치 몇 마리와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의 고추장 그릇을 앞에 두고 둘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화실 한쪽 구석에는 캔버스 천위의 그림들이 어지러이 쌓여있었다. 화실 주인의 전공은 추상화였다.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림들을 하나씩, 한참씩 들여다보았다. 화실 다른 쪽 구석, 간이 칸막이 뒤쪽엔 설거지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비꺽 거리는 수도꼭지를 간신히 틀고 조용히 흐르는 물에 더 조용히 그릇을 씻었다.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더니 문득 화실 주인이 '은하철도 999'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번엔 그가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다. 응달에 파묻힌 건물에다가 채광이 잘 안 되는 실내인지라 제법 어둑한 화실 한 중간에 우뚝 서서, 짙은 색 양복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은 그는 노래 '선구자'를 불렀다, 무려 4절까지. 바리톤의 듣기 좋은 음색이었다. 은하철도 999와 선구자라는 두 노래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아니면 그 노래가 각자의 애창곡이었는지. 그렇게 각각 한곡씩 노래를 주고받던 그가 갑자기 내 존재를 떠올렸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오겠노라고 화실 주인에게 말하고 그와 나는 화실을 나왔다.




오늘 일이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고, 다음에 다시 제대로 만나보고 싶다고 나를 바래다주며 그가 말했다. 나는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한 달 전 나를 봤을 때의 심경을 말했고, 거기에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부터 11개월 뒤인 다음 해 4월 초, 그와 함께 결혼식장에 서있었다. 프러포즈는 물론이고 귓가와 뺨의 솜털을 간지럽히는 사랑의 서약도 없었던 그와 어떻게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문득 생각해본다. 모든 인간관계 중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다는, 이 징글징글하게도 질긴 부부의 인연을 어떻게 이어오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결혼하기까지 11개월의 짧은 예선전을 치른 후 시작된 본선 격인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서로 다른 성향을 알게 되고 놀람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나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여름에도 양말을 반드시 신어야 하고 남편은 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도 내복은커녕 목폴라도 입지 않았다. 그는 친구가 많아 결혼식에서 자신의 친구들 하고만 사진을 세 번이나 찍어야 했다. 반면 친구 사귀기에 있어서 나는 철저히 소수정예 파이다. 신혼 때,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나에게 저녁에 또 덥고 잘 텐데 뭐하러 번거롭게 이불을 개냐며 묻는 그가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결혼기념일이나 내 생일을 그가 자발적으로 기억한 적이 한 번은 있었던가? 아무튼 두 번이 안된다. 나는 아무리 용을 써도 그런 기념일이나 생일을 잊거나 까먹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책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 읽어도 지겹지 않고 오히려 읽을 때마다 색다른 재미를 찾아낸다. 남편에게 있어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거나 재방송을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혼하기 전 서울 시향 정기연주회에 같이 간 적이 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시작하자마자 그는 졸았다. 빰빰빰빰~~~ 울리는 교향곡의 도입 부분이 베토벤과 나에겐 운명을 불러일으키는 노크소리였고 그에겐 꿀잠으로의 초대였다. 이렇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남편과 나를 잇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대의와 그가 행동으로 드러내는 정의의 힘이다. 나만을 바라봐 주진 않지만, 남편의 그런 점이 처음 만난 그날, 화실에 나를 데리고 간 그날부터 그리 나쁘지 않았다.




대의와 정의로 그리는 그의 생각과 행동의 큰 궤적은 내가 품기에는 버거울 때가 많았다. 내가 그리는 좁고 깊은 폭으로는 따라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또한, 좀 더 내 기호와 내 감성에 맞게 에둘러 말해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과 달리 그는 팩트로 묵직하게 채운 돌직구를 자주 날린다. 그런 그의 말이 얄밉고 야속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종국에는 한수를 접게 된다. 버겁고 야속하다는 감정과 그래도 옳긴 옳은 말이야, 맞긴 맞는 일이야라며 인정하는 이성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결혼생활 내내 나의 숙제였다.


덕수궁 옆 성공회 건물 중 사제관
덕수궁 돌담길 영국 대사관 뒤쪽
덕수궁 돌담길 영국대사관 뒤쪽
덕수궁 뒤쪽에 새로이 만들어진 고종의 길 입구
고종의 길
고종의 길
이화여고
중명전
중면전
정동극장의 예스러운 간판


남편과 만난 첫날, 내 기대와는 달리 그와 함께 덕수궁 돌담길은 걷지 못했지만, 그 후 구비구비 희로애락의 고개를 수없이 같이 걸었고 넘었다. 정은 두터워졌고 이해의 폭도 제법 넓어졌고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요령도 나름 갖추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졸리는 이유는 그 음악이 우리의 정신을 편하게 해 주고 긴장을 완화시킨다는 기사를 보고 기쁜 맘에 그에게 그 기사를 읽어주었다. 남편과 같이 걷지 못한 덕수궁 돌담길은 친구와 또는 혼자 걸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길에는 아기자기하거나 고색창연한 볼거리가 많기도 하다. 세실극장 뒤 성공회 건물을 지나 그동안 막혀있다 얼마 전에 개방한 영국대사관 쪽의 돌담길을 걸어본다. 어설프게나마 새로이 만들어진 고종의 길로 발길을 틀어 굴곡진 역사를 품은 애상의 돌담길을 걷다 보면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덕수초등학교길이 저편으로 보인다. 정동교회를 지나면 예원학교를 왼쪽에, 이화여고를 오른쪽에 두고 돌담길은 계속 흐른다. 중명전 앞 추어탕집 앞엔 추어탕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제법 길다. 정동극장 옆에 새로이 문을 연 카페나 파스타집, 빵집들이 눈에 보인다. 울쑥 불쑥 우후죽순으로 문을 여는 가게들과 이리 몰려왔다 저리 몰려가는 손님들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진통을 겪는 강북의 여타 동네와 달리 드문 드문 슬며시 들어앉은 가게들의 수가 과하지 않아 흡족하다.




이렇게 덕수궁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오른쪽 돌담길로 들어가 크게 한 바퀴를 돌아 왼쪽 길로 나오면 그 끝에는, "먹어본 사람들이 다 맛있데요!"라는 선전문구를 붙인 핫도그 노점상이 있다. 천 원으로 이 정도 맛이라니! 노점상 주인의 얼굴이 다시 보인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에 서서 고마울 정도로 고소하고 바삭거리는 핫도그를 우적 거리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면 남편과 처음 만난 카페가 있는 코리아나 호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더위를 많이 타던 남편은 이제는 발이 시리다며 아침에 일어나면 두꺼운 양말을 스스로 챙겨 신는다. 남편의 얼굴 피부는 이제 건조해져서 로션을 물론 크림을 듬뿍 발라도 바를 때뿐이다. 쉼 없이 걸어온 길마다 살과 피를 뚝뚝 떼어내어 통행세를 무느라 남편은 이제 도포자락이 제법 어울릴법한 마른 체격이 되어버렸다. 남편은 이제 노래 '선구자'의 가사 중 1절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기름기를 떼어내고 살과 피를 발라낸 이 긴 세월은 결코 공짜로 먹은게 아니다.




생로병사를 같이 하게 되는 부부라는 이 기막힌 인연에는 행복과 행운을 나누는 것보다 고통을 나누며 위로하는 것이 더 애달프고 막중함을 나는 알게 되었다. 위기는 기회니, 고통은 신이 주시는 선물이니 하는 말들을 이해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만큼 아직 나는 성숙하진 않다. 그러나, 운명이 걸어오는 싸움에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한번 붙어는 볼만큼의 내력이 생긴 것은 오래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인연의 힘 덕분이다.




저녁의 덕수궁 돌담길
저녁 불 밝힌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돌담길.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는 사람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후문, 돌담길에서 들여다보는 석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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