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라는 '폐쇄된' 공간에 살면 이웃과 친해지기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어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딪혀 눈인사를 나누는 것이 대체로 아파트에 사는 이웃 간 교류의 전부라고도 말한다. 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또는 빌라단지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살며 마치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주민들처럼 이웃이 가족이 된다고 말한다. 내가 경험해본 바로 이런 말들은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예욧.
아파트도 주택단지도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건 매 한 가지이다. 대한민국이란 역동적인 나라에서 특히 대도시에서 누군가가 '태어나서 주욱 자란 곳'이 이제는 드물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아파트의 인구밀도가 훨씬 더 높다 보니, 아파트 단지네 마트, 문화센터, 혹은 헬스센터에서 꾸준히 부딪치는 이웃과 사귈 기회가 더 많다. 아파트 단지가 클수록, 브랜드 아파트일수록 단지 내, 또는 인접한 곳에 계획적으로 골고루 모은 생활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그 울타리 내에서 24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아파트 단지라는 조밀하고 깊게 드리워진 그물망 안에서 사람들은 마주 보고 부대끼며 인연을 만들어 이웃이 된다. 아파트 단지 내의 인간 교류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 결과이다. '폐쇄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규모가 만들어 낸 울타리는 하나의 생활권이자 동시에 조밀하다.
주택 동네는 규모의 경제와 관계없이 만들어졌다. 내가 이사 온 북한산 바로 아래 이 동네의 주택과 다세대주택, 빌라들은 아파트 건설이 갖는 하나의 '빅픽쳐'없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널브러져 있다.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내는 단일의 규모보다 더 넓고 더 얕다. 수많은 골목이 이어주는 길은 사방으로 뻗어있다. 그물망은 느슨하고 넓다. 정릉 4동 주민은 정릉 3동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하고, 정릉 1동 주민은 길음동 주민센터에서 일어를 공부한다. 이사온지 6개월째인 지금, 내가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웃의 수가 적은 것은 결코 내가 수줍은 성격이라던가 집순이어서만은 아니다. 그 몇 안 되는 이웃 중에 나랑 나이가 비슷한 이가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대체로 쓰레기를 종류별로 내어 놓는 날이 정해져 있고 그걸 관리하고 처리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아파트 관리비의 공동경비에 그 수고에 대한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 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에서는 그 일을 각자 알아서 한다. 쓰레기 종류에 따라 잘 정리한 후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맞추어 자기 집 앞에 내놓는 이가 있고,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도 있다.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단지에는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쓰레기들을 제대로 정리하는 공동의 관리인이 없다.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집 앞에 내어 놓아 줄곧 흉물이 되는 어느 집에 대해 이웃과 한 목소리로 성토대회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그녀는 며칠 뒤 동네와 북한산 둘레길 투어를 시켜주겠노라 제안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란 정서는 옛날 옛적에 짐을 싸서 저 멀리 보내 버린 지 오래다. 사는 거란 결국은 거기서 거기란 것도 익히 안다. 호의를 거절하면 견디기 꽤나 어려운 서먹함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기 다반사라는 것 또한, 몸과 맘으로 체득한 지 제법 되었다.
더위가 아직 한창인 9월 초 약속한 날, 바람이 슝슝 들어와 바지보다는 시원한 통짜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나와는 달리 등산화와 등산복으로 풀 장착한 그녀를 집 앞 골목에서 만났다.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나오는 북한산 국립공원 정문 대신 반대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작은 사찰 마당을 가로질러 우이동 쪽 둘레길로 방향을 잡았다. 주민센터에서 사물놀이와 캘리그래퍼를 가르친다는 그녀는 이 동네 산지가 22년째라고 했다. "저기 저 다세대 주택의 담장에 개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는 그곳을 막아 놓아 한참을 빙 돌아가야 둘레길로 들어설 수 있다. 저 사찰은 보기에는 작아도 북한산의 많은 절 중에 기부금이 으뜸이다. 그 많은 시주돈으로 절 앞마당까지 아스팔트 길을 매끈하게 깔았다, 예전엔 보드라운 흙길이 걷기에 참 좋았었는데. 저기 저쪽 대성문 길 중간쯤의 영취사는 추석에 송편을 빚어 마당에 쌓아둔다. 누구라도 지나가는 객은 시간만 잘 맞추면 쫄깃하고 담백한 마성의 송편을 맛볼 수 있다. 둘레길중 바로 이 구역은 동네 주민들이 마실 삼아 많이 찾는 길이라 어두워도 그리 무섭지 않다. 무서움을 많이 탄다면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오면 된다, 저녁 먹은 후와 저녁 뉴스 하기 전이라 그 시간대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다." 한 동네 주민 22년 구력의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만장굴처럼 길었고 페르시아산 태패스트리의 무늬처럼 섬세했다.
더운 여름날 걷다가 쉬기에 좋은 곳이라며 둘레길 어디쯤 짙은 그늘 아래 드리워진 해먹에 그녀와 나란히 누웠다. 그녀는 인근 맛집 리스트를 알려 주었고 막국수, 곤드레돌솥밥, 임금님 표 수타 짜장면이라는 그녀의 선택지에서 그날 점심으로 나는 짜장면을 골랐다. 나머지 두 가지는 집에서 곧잘 해 먹는 음식이지만 평소 중국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기에 '오랜만에 어디 한번' 이란 심정으로 짜장면을 골랐다. 밀가루와 짜장 중에 어느 것이 임금님 표인지 혹은 수타면을 뽑는 솜씨를 임금님께서 인정하셨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임'씨 성의 '금님'씨께서 만든 듯이 맛과 양은 평범했고 '7천 원'이라는 값만 '비범'했던 짜장면을 먹으며 내심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벌써 두어 시간 산길을 걸어 발이 아팠고 무엇보다 매우 더웠다. 소심한 나는 흉중의 생각을 만지작거리기만 했지 꺼내어 놓지 못했고, 의욕이 충만한 그녀에겐 동네 투어 시작 전에 이미 흉중에 품은 빅픽쳐가 있었다. 정릉천을 따라 내려가 마을 수호신이라는 나무 두 그루를 보았고, 정릉시장 내의 가게들과 마트들을 종류대로 안내받았다. 큰길을 뒤로하고 골목길로 들어가 돌고 다시 돌아 동네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이 동네에 흔한 다세대주택들 사이에 무심히 자리한 도서관은 맘먹은 작가 한 명쯤은 족히 키워 낼 법한 양과 질의 도서를 갖추고 있었고 쾌적했다. 그녀의 지도편달 아래 구립도서관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고 빼곡한 도서 사이에서 성석재와 번역된 시집을 한 권씩 대여했다. 현란하게 시종일관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다, 결국은 자신이 목표한 지점까지 기어코 독자를 끌어다 놓는 성석재의 문장이 그날의 동네 투어와 닮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원대한 계획 중 화려한 피날레는 '정릉'탐방이었으나, 두어 주 후 문화행사 중 하나로 꽤 비싼 정릉 입장료가 무료라는 플래카드를 보았고 나에겐 다행히도 그녀에겐 아쉽게도 피날레는 뒤로 미루어졌다. 정릉시장에서 고른 과일을 한 봉지씩 사들고 북한산을 바라보며 정릉천을 따라 집으로 올라왔다. 강남과 강북의 산과 천은 이리도 풍광이 다른데 그녀가 들려주는 이웃들의 사연은 어찌 그리 한강의 남과 한강의 북이 닮아 있는지.
버스 정류장 맞은편 세탁소에서 배달 일을 하는 할아버지의 애달픈 가족사는 내가 이전에 살던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의 윗집 사연과 기승전결 중 '결'을 빼고는 같은 이야기의 다른 주인공들이다. 이웃과 담을 이중으로 쌓고 궁금증을 모락모락 피우는 집도 어디에나 있다. 높은 이중 담을 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도 결은 다를지 몰라도 같은 이야기 이리라. 근육이 힘차게 날뛰는 나이에 일자리에서 튕겨져 나와 낙향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생로병사 중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난입한 '병'과 '사'에 분노하며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가정들이 있다. 희망과 절망이 나란히 꼬인 동아줄에 매달려 한평생이라는 외줄 타기를 하며 흘린 땀과 사연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물은 동네와 마을을 휘돌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전설이 되고, 전설들은 간혹 정치를 등에 업고 체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 건국이나 왕조의 신화가 된다. 비록, 더위의 끝자락에서 그녀가 내게 들려준 소소한 이야기들은 가을의 문턱도 넘지 못했고 강은 커녕 실처럼 가는 물줄기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분명히 말했고 나는 제대로 알아 들었다. 제대로 먹은 음식이 적절한 종류와 양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듯 그녀의 많은 이야기들이 낯선 곳에서 낯가림하느라 멈칫거리는 내 다리와 팔의 근육에 힘을 주며 나를 밀어주었다.
그날의 동네 투어 이후,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정릉천을 따라 기꺼이 30분을 걸어 시장을 다녀온다. 이사 와서 처음엔 팻말의 굵은 글씨를 따라가는 보국문길이나 대성문 길을 주로 다녔지만 이제는 여러 갈래의 둘레길이나 더 한적한 오솔길도 알게 되었다. 여름에 이사와 무성한 나뭇잎을 가르고 헤쳐나가며 힘겹게 올랐던 북한산을, 겨울인 지금 모든 걸 떨구어 낸 후 알몸으로 고군분투하는 나무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걷고 오른다. 이제 이곳에서 세 번째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내가 마치 3년을 산 듯한 구력을 지니고 같은 양만큼의 애정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날의 동네 투어 덕분이다.
정릉계곡부터 정릉 시장까지 음식점들이 아주 많았다고 예전에 이쪽으로 등산객들이 참으로 많았다고, 이 동네 산지 22년째인 그녀가 말한다. 그 많았던 식당과 등산객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내가 묻는다. 글쎄요, 다들 어딘가, 어디 좋은 데로 갔겠지요, 그녀가 대답한다. '좋은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의 남쪽 '어딘가'에 오랫동안 살다가, 태어나고 자란 강의 북쪽으로 돌아온 나에게, 떠나지 않고 이곳에 그대로 주욱 살아온 그녀는 첫 친구가 되었다.
[표지 사진 : 북한산 둘레길 중 국민대 뒤쪽으로 내려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