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체가 용광로 속에 들어가 녹아내리던 지난여름 8월 4일, 한강을 건너 이곳 정릉으로 이사 왔다. 이사하는 날 이른 아침부터 포장이사팀은 짐 싸기를 시작했고 나는 서둘러 간단한 소지품을 챙겼다. 더운데 이사하느라 고생한다, 이사 잘하고 더위 먹지 말고 건강 잘 챙겨라, 더위에 짐 정리하느라 진 빼지 말고 천천히 쉬엄쉬엄 해라, 내 스마트폰은 더위의 절정에서 이사하는 나를 걱정하는 오래된 이웃들의 문자와 카톡으로 연신 번쩍거렸다. 이런 날일 수록 제대로 먹어야 한다며 과일이며 빵 등을 챙겨 달려온 몇 분의 격려를 받으며 이삿짐을 동여매고 신발끈을 고쳐 매고 한강을 넘었다.
두 달 전에 약속된 에어컨 기사님이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 땀에 범벅이 되어 나타났을 때 이미 기나긴 여름 해는 꼴까닥 넘어가고 있었다. 어찌어찌 에어컨 설치가 끝나고 급한 데로 얼추 짐 정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밤 9시였다. 동네 시장으로 내려갔다. 제법 불빛이 환하고 손님이 꽤 많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된장찌개와 순두부찌개는 실패하고 싶어도 웬만해선 실패하기 어려운 음식이다. 순두부찌개에서 쉰 냄새가 났다. 찌개국물을 입안으로 퍼 나르다 그만두고 질컹거리는 밥만 입안으로 밀어 넣았다. 많은 손님들은 인근 성당에서 오신 분들이었고 식당 사장님도 그 성당 교우였다.
에어컨도 식당도 더위도 우리 네 식구 중 누구의 잘못 때문은 아니었으나 우리 입은 점점 닫혔고 종일 주고받던 파이팅은 물색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집으로 올라왔다. 첫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뭔가를 하며 움직였던 우리의 몸을 질질 끌다가 주저앉으면 달래서 다시 끌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에어컨에선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이런저런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끄고 잠이란 걸 청해보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고 그다음 날 에어컨 기사님에게 혓바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사정을 거듭하여 에어컨을 겨우 고친 날이 이사온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정릉으로 이사 오는 데 넘어야 할 것은 한강과 더위만이 아니었다. 그 두 가지로 예선전을 통과하자 시장보기라는 본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독한 더위에 과일이나 채소 등의 물가가 많이 오르기는 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동네 슈퍼의 매대에 놓인 찬거리는 종류도 개수와 품질도 빈약했고 가격은 놀랄 만큼 비쌌다. 장바구니에 넣을 거라곤 콩나물 한봉 다리, 두부 한모, 군데군데 싹이 돋기 시작한 감자 몇 알, 껍질이 거무튀튀하여 버리는 이파리가 더 많은 양배추 한 통이 고작이었다. 빈약한 재료에 한숨을 잔뜩 섞은 초라한 밥상이 거듭되자 두고 온 옛 동네의 대형마트와 가락시장에 대한 그리움이 비대하게 부풀러 올랐다.
가락시장에서 감자나 양파, 고구마, 배추, 사과, 배등을 한 상자 사서 이웃과 나누면 가격도 품질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가정경제와 가족의 건강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에 남모를 자부심이 내 주머니 가득이었다. 이른 아침에 나오면 이내 다 팔려나가는 생선시장에서 문어, 낙지, 갑오징어, 갈치, 꽃게 등을 낑낑거리며 잔뜩 사 와서 싱싱한 체로 그날 먹고 나머진 소분해 냉동실이나 냉장실에 넣어두면 든든한 뒷배나 다름없었다. 가락시장 치즈 전문점에서 산 올리브 오일, 무염버터, 각종 치즈는 가격도 적절하고 무엇보다 내 식탁의 심포니에 화려한 변주의 3악장이 되었다. 에샬롯이니 오레가노, 화지타 시즈닝 등 베이킹이나 서양요리에 들어가는 까다로운 이름의 재료도 가락시장 특수채소가게나 수입식품가게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생각들로 옛 동네의 가락시장에 대한 그리움에 헤매다가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 새 동네의 인근에 있는 시장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집에서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걸어서 30분 거리에 정릉시장이 있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길음시장이 있다. 조금 더 가면 성신여대 옆에 돈암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의 몰락에 관한 기사와 뉴스는 많이 보았으나 내 눈으로 직접 본 실상에 나는 깊고 묵직하게 아팠다. 'demise'란 영어 단어가 있다. 사전에선 이 단어를 '서거, (황제 등의) 붕어, (제도, 존재 등의) 소멸'이라고 풀이한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 그들의 몸과 영혼을 먹여 살렸던 시장이란 '실체의 붕어'현장에 내가 서있었다. 시장 안 골목엔 채소, 생선가게, 떡집, 두부집, 고기 판매라는 몇 안 되는 간판과 족발이나 순댓국 같은 그보다 더 적은 숫자의 팻말이 마치 만장처럼 펄럭였다. 하루에는 삼시 세 끼가 있고 그걸 채우기 위해 동네 시장, 집 앞 마트, 여기서 조금 저기서 약간, 찬거리를 조달했다. 물건이 잔뜩 쌓여 눈이 바쁘게 돌아가고 지갑 안 사정에 적당히 눈치를 봐야 하는 가락시장에 대한 허기에 여전히 시달리던 어느 날,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 옆구리에서 '경동시장' 글자를 보았다.
갓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와 손을 잡고 처음 나들이 간 곳이 경동시장이었다. 어머니는 단골가게 주인들에게 한분도 빠짐없이 막내며느리라고 옆에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는 나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여전히 낯선 며느리라는 타이틀과 산더미처럼 쌓인 찬거리들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인파에 헛발을 디디곤 했다. 그날 시장에서 사 온 갈치는 어머니 손을 거쳐 조림이 되어 저녁상에 올랐고 나는 갈치조림이 뜨거워서 놀랐고 그 맛에 놀랐다. 대단한 맛이었다.
그 옛날의 경동시장이 아직도 예전의 활기를 간직하리라는 기대는 진정 한 푼어치도 없었다. 정릉시장, 길음시장, 돈암시장의 실상을 이미 봤던 터라 시장에 대한 기대치를 여전히 갖고 있기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애절했다. 경동시장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보는 바깥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버스 창문에 코를 박고 구석구석 빠짐없이 세월의 무게를 안고 있는 옛 동네 들을 물끄러미 치어다보았다.
경동시장 버스정거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면 왼쪽은 생선가게 골목이다. 첫 집은 '빙초산을 넣었다면 제 집문서를 드리겠습니다.'란 팻말이 붙은 홍어무침 집이다. 오른쪽은 소고기 돼지고기들이 각 부위명과 무게와 가격표를 달고 쌓여있는 고기 가게 골목이다. 두 골목을 그냥 지나치고 곧장 들어가면 좌우에 넘치도록 견과류가 쌓여있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그 끝에서 골목이 4개로 나누어진다. 왼쪽 첫 집이 '형제상회'이다. 이른 아침엔 얼굴이 똑같은 3형제가 나와 물건을 팔다가 낮이 되면 뒤쪽으로 물러가 상자에서 채소를 꺼내 쌓거나 채소단을 묶는다. 3형제의 아내들이 등판하는 시간이다. 싹싹하고 야물딱지고 수더분한 세가지 성격이 잘 어울러진 3형제, 3명의 안주인이 운영하는 채소가게가 형제상회이다.
그 골목 양쪽에 미어터지게 빼곡히 들어선 많은 채소가게 중에서 이곳에서 고들빼기를 사서 담근 고들빼기김치로 더위를 보내고 가을 입맛을 불러들였다. 이 가게의 대파는 유독 싱싱하고 흰 대가 길어서 값은 좀 더 치르지만 달고 오래 두고 먹게 된다. 이번 김장채소도 이곳에서 샀다.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물건이 좋다.
콩나물, 숙주나물, 삶은 고사리나물, 깐 도라지를 파는 가게들이 찰싹 달라붙어있는 곳 중에서 한 곳을 고른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경동시장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게들이 대체로 친절하고 일부는 극히 친절하다는 것인데 나란히 있는 이 콩나물 가게의 두 주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가격을 치르고 받는 콩나물의 무게도, 가게 주인들의 친절의 무게도 자로 잰 듯 똑같다. 오늘은 어느 가게에서 콩나물을 살까 잠시 고민하다, 괜스레 저쪽 골목을 한 바퀴 휘돌고 되돌아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피한 체 '콩나물 천 원어치주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을 하며 잽싸게 돈을 치르고 콩나물이 담긴 봉지를 낚아채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곤 한다.
4개의 골목 중 어디로 간다 해도 과일가게들이 줄지어선 큰길을 만나게 된다. 그곳이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이 만나는 곳이다. 그 많은 과일가게들의 가격도 친절도 비슷하기에 그냥 맘 가는 데로 사과, 배, 단감, 홍시감, 귤, 밤을 골라 넣는다. 요즘 내가 주로 가는 곳은 찐 옥수수 가게 바로 옆에 있는 과일가게이다. 한 개 5백원짜리 사과는 단단하고 맛있었는데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그곳에서 산 사과는 여전히 만족스럽다. 과일가게 아저씨의 말투는 연변 말투인지 서울 말투인지 갈 때마다 달라서 헷갈린다. 느릿하게 한두 마디 할 때는 영락없는 연변 말투였다. 사과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지나치게 이리저리 굴리는 어느 주부에게 따따부따 속사포로 말을 쏘아댈 때는 어찌나 조리가 있던지, 게다가 완벽한 서울 말이었다. 미스터리는 사과가게 아저씨의 힘!
황태포, 통북어, 뒤포리, 지리 멸치, 다시 멸치, 다시마 등을 사는 건어물 가게는 누나와 동생이 교대로 장사한다. 누나는 내가 들어서면 말없이 일단 믹스커피 한잔을 진하게 말아 내놓으며 오늘 뭐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동생은 항상 '커피 한잔 드릴까요?"라고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는데 손에는 어느새 종이컵 하나가 들려있다. 가격도 친절도 물건의 품질도 비슷한 많은 건어물 가게 중에서 나 혼자 맘속으로 이 곳을 단골가게로 정한 이유는 하나이다. 누나도 동생도 말은 없고 손놀림은 재빠르다.
경동시장의 물건의 품질과 친절에 내가 콩깍지가 씌어 호들갑을 떨며 환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가 반성에 남편을 밀고 당겨 같이 경동시장에 간 적이 있다. 경동시장을 잠깐 둘러본 남편도 그들의 친절을 인정했다. 그 정도 품질의 물건들에, 대단히 많은 선택권에,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물건의 다양함에, 거만을 조금은 떨어도 되련만 아침에도 저녁에도 경동시장은 친절하다. 젓갈가게도 친절하고 떡집도 친절하다. 두부집도 친절하고 청국장과 된장가게도 친절하다. 같은 품목의 가게들이 나란히 붙어서인지, 오랜 역사를 쌓아오면서, 친절과 물건의 품질에 가게와 시장의 사활이 걸렸음을 알아서인지 어제도 오늘도 친절한 경동시장을 오가며 나는 또 하나의 강북의 맛을 발견했다.
[표지 사진 :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 사이의 상가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