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조용하지만 장한,

by 클라우디아





친구와 함께 그녀가 다니는 절에 며칠 다녀온 적이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 국보와 보물을 한편에 조용히 품은 사찰에 도착했다. 사찰과 주변의 모든 생명을 두 팔로 꼭 부둥켜안은 산에는 홀로 또 따로 장한 나무들이 빼곡했다. 귀가 펄럭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는 천들과 어김없이 눈이 마주쳤다. 초파일을 목전에 둔 날이었다. 더위가 일찍 찾아온 남쪽 땅의 낮은 몹시 더웠고 사찰 경내는 구석마다 사람들이 빼곡했다. 그 모든 걸 삼켜버린 해가 어느덧 뒷담 너머로 자취를 감추면 문득 그 자리를 채운 찬 공기에 저절로 목이 움츠러 들었고, 내 작은 기침소리에 내가 놀랄 정도로 세상은 시푸르등등한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절에 머무는 동안 새벽예불마다 친구와 동행했다. 친구와 나는 종교가 다르다. 발부리에 걸린 돌멩이 하나에도 내 애절한 소원 하나를 얹어 비는데, 모든 걸 다 아는 눈으로 나를 보는 부처님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침 공양을 마치면 스님께서 우려 주시는 차 한잔을 말잔치 없이 조용히 마시고 더 조용히 주변을 산책했다. 점심공양을 마치면 제법 행장을 갖추고 우리는 절을 나섰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밟아 다져놓은 둘레길은 시작과 끝이 어딘지에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 길을 걷다가 산을 탔다가 다시 그 길로 내려오곤 했다. 밥때가 되기 전까지 그저 발이 가는 데로 걸었다. 사소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다른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걷는 걸 잘하고 즐긴다는 면에서 친구와 나는 찰떡궁합이다.




저녁 공양을 마치면 근처에 있는 목욕탕을 찾았다. 한쪽엔 씻어놓은 조약돌처럼 동그랗고 윤이 나는 머리통의 비구니 스님들이, 다른 한쪽엔 마을 주민들이 목욕바구니에 물을 떠서 연신 몸에 뿌리며 저마다의 언어로 하루를 이야기했다. 친구와 나는 냉탕과 온탕을 들락거리며 경계선에 선 사람이 갖기 마련인 긴장과 호기심 속에 몸을 담갔다 빼곤 했다.




떠나기 전날 저녁, 친구가 절에 올 때마다 들른다는, 인근에서 밥을 '장하게' 잘한다고 소문난 음식점으로 스님을 모시고 갔다. 모든 것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인적은 드물고 이따금씩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남긴 먼지만이 그득한 시골 국도변에 그렇게나 정갈하고 어여쁜 집이라니.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맑은 색의 나무마루엔 갓 칠을 했는지 아른한 향이 배어 나왔다. 은은한 간에, 색과 맛에 과한 치장을 하지 않은 정갈한 반찬들이 하나씩 내 앞에 놓였다. 길이대로 길게 찢은 배춧잎과, 손으로 겅충겅충 뜯어 넣은 열무로 만든 물김치를 떠먹으며 쌉싸름하며 달고 시원한 맛에 놀라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려 식당 주인의 모습을 보았다. 주인은 ‘하얀' '무명천'의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흔히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비닐로 만든 알룩달룩한 앞치마가 아니었다.




주인이 직접 골라 궤짝으로 들여와서 켜켜이 깔고 채운 보리 속에서 시간을 완주한 보리굴비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우리의 밥상 위에 올랐다. '전가의 보도'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 그 밥집의 보리굴비는 내가 먹은 굴비중 최고의 맛이었다. 나는 쪄서 하나씩 밀봉한 튼실한 보리굴비를 사시사철 냉동고에 쟁여둔다. 냉장고에서 해동시켜 들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서 살짝 데운 우리 집 보리굴비는 그 '장한 밥집'의 굴비에 비하면, 하아...





사진을 찍기 위해 끌려 나온 우리집 냉동고안의 보리 굴비중 한마리




갓 지은 공깃밥은 그날 저녁식사의 클라이맥스였다. 아무리 반찬이 훌륭해도 맛있는 밥이 없으면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평소 신념이다. 어떤 쌀로 지은 밥인지 그 '장한' 밥집 주인께 여쭙지 않은 것은 같은 쌀을 구한다 해도 나는 결코 그 밥맛을 흉내 낼 수 없겠다는 단념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절로 돌아왔다. 부른 배를 앞세운 밤길에서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레 맛있는 음식이었다. 마르고 키가 크며, 자세가 국정교과서처럼 반듯하신 노스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된 어머님의 수제비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머니께서는 한 평생 수제비 장사로 많은 자식들 공부를 원 없이 시키셨다고, 가깝고 그리고 먼 동네까지 소문난 수제비였다고, 어머니의 수제비가 몹시도 그리워서 가끔은 직접 만들어 드신다고, 소리 한톨 흘리지 않는 걸음걸이의 노스님께서는 '장한' 수제비 이야기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지금이나 그때나 새로운 레시피라면 혹하는 나는 얼른 스님께 수제비 만드는 법을 여쭈었다. '먼저 밀가루를 반죽하지,’ 스님께서 운을 떼셨다. '물만 넣고 반죽하나요?’ 내가 여쭈었다. '계란 노른자를 넣지, 밀가루와 계란의 비린맛을 누르기 위해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스님께서 답해주셨다. 내가 여쭙고 노스님께서 답해주신 레시피를 혹여 잊을세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급히 담았다. 남편이 탄수화물, 특히 밥과 밀가루를 몹시도 꺼리기에 녹차가루나 도토리가루, 때론 메밀가루를 섞는다는 걸 제외하고는 봄날 저녁, 깊은 산속 오솔길에서 노스님으로부터 건네받은 레시피 그대로 수제비를 만든다. 멸치육수와 모시조개와 미역에서 시원한 감칠맛이 나고, 계란 흰자가 부드럽게 입안을 휘젓고, 쫄깃한 수제비와 달큼한 야채들이 나를 한없이 충족시키는, ‘여러 아들 원 없이 공부시킨' '장한' 수제비는 철을 가리지 않고 내가 집에서 준비하는 두어 가지의 '분식'중 하나이다.




1. 밀가루, 물, 계란 노른자, 소금 한 꼬집, 참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냉장고에서 두어 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도토리 가루, 유기농 밀가루, 계란 노른자 하나, 물, 참기름 두어 방울로 만든 반죽






냉장고에서 2시간 숙성시킨 수제비 반죽






2. 먹고 싶은 야채, 해감시킨 모시조개, 물에 불린 미역, 계란 흰자를 준비한다. [미역은 시중에서 파는 '자른 미역'을 물에 불리면 빠르면서 간편하다. 이 미역으로 오이 미역냉국도 만든다.]

감자, 호박, 양파, 표고버섯, 간 마늘, 대파, 청홍고추, 자른 미역 불린 것, 모시조개, 계란 흰자





3. 맑게 끓인 멸치 육수에 야채와 마늘을 넣고 끓인다.






4. 감자와 같은 두꺼운 야채가 익으면 모시조개를 넣고 수제비 반죽을 손으로 뚝 뚝 떼어서 넣고 끓인다.






5, 수제비 반죽이 익어서 떠오르면 파와 계란 흰자를 넣고 한번 부르르 끓인 후 불을 끄고 뚜껑을 닫고 뜸을 들인다. [나는 만둣국도, 심지어 스테이크도 불을 끄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인다. 부르르 끓거나, 화르르 구워지고 난 후의 수제비, 만둣국, 스테이크에게는 맛이 스며들 시간이 필요하다.]


오이지냉국, 열무김치, 멸치 아몬드 볶음을 곁들인 한 여름의 전형적인 수제비 상 차림




얼마 전 임영웅과 도롯도 맨들이 이 절에서 열린 한국전쟁 70주년 추모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나흘을 걷고도 또 걷고 싶었던 둘레길, 시골 목욕탕 바가지에서 찰랑거렸던 물소리, '장했던 밥집', 오롯이 내가 나였던 새벽예불 시간, 우리 집의 정규 식단으로 정착한 노스님의 수제비 레시피, 이 생각들만으로도 벅찬데, 임영웅과 도롯도 맨들이 그 절에서, 그 산속에서 노래를 부른다니. 평소 사생 유튜브는 소비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음악회가 열리는 날 낮부터 그 절의 안과 밖을 담은 유튜버들의 방송이 하나씩 올라왔다. 혹시 내가 걸었던 오솔길이, 내가 묵었던 객사가, 내가 한없이 쳐다보았던 겹겹의 처마와 산봉우리들이 보일세라 두 눈으로 화면을 더듬고 어루만졌다.




음악회를 찍은 유튜버들의 짤막한 방송들이 늦은 밤 하나씩 올라왔다. 청아하면서 장려하고, 떨림으로 애달프고, 애간장을 녹이며 아름다운 임영웅의 목소리가 푸른 밤하늘을 향해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라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래가 절간 구석구석, 그리고 온 산을 채웠다.




자신이 가진 대단한 패를 손에 들고 흔들며 함부로 자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용하지만 거대한 그 절과 똑같이 닮은 임영웅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산새들의 노래와 태양, 달, 구름, 비의 율동을 즐겼던 산과 사찰, 그들 품 안의 모든 생명들은 도롯도 맨들의 공연으로 또 다른 호강을 누렸으리라.




정말이지 저 남쪽 깊은 산속의 ‘장한' 절집과 그 절집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