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에서 주로 만드는 전은 빈대떡과 소고기 전, 이 두 가지이다. 여름엔 제철 만난 감자로 전을 만들고, 겨울엔 시장에 지천인 굴과 매생이로 만드는 전과 더불어 우리 집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 자글거리는 전은 주로 이 네 가지이다.
명절이나 손님상에 동그랑땡이나 호박전, 대구전, 고추전이나 깻잎 소고기 전등을 만들기도 했었다. 예전에 살던 분당 구미동 아파트 뒤 불곡산에 유독 흐드러지게 폈던 진달래꽃을 꺾어다 감자를 갈거나 찹쌀가루로 화전을 지져 먹곤 했었다. 제사나 차례음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막내며느리인 데다가, 펼쳐진 것들을 서서히 거두고, 줄이고, 버리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음식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날에 준비하는 전은 소고기전과 빈대떡으로 단순해졌다. 김장김치를 듬뿍 썰어 넣는 빈대떡은 주로 겨울에 해 먹으니 편채를 곁들인 소고기 전이 이제는 전천후 주종목이 되었다.
소고기 전에는 우둔살, 뒷다리살, 홍두깨살, 안심도 좋고 꾸리살도 많이 이용한다. 소는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있다. 동글게 감아 놓은 실꾸리처럼 생겨서 이름이 붙은 꾸리살은 바로 이 근육량이 많은 앞부분이다. 마블링이 많지 않고 살짝 질기지만 육향이 잔뜩이고 무엇보다 원래의 고기 크기가 딱 한입이어서 전으로 만들기에 좋다. 하지만 소고기 is 뭔들. 부위를 구태여 따지지 않고 고깃간에 가서 그날의 좋은 고기를 골라 들면 된다.
나는 소고기 전의 두께에 집착하는 편이다. 고깃간 매대 앞에 바짝 다가서서, 육전보다 살짝 얇게 샤부샤부용보다는 아주 살짝 두껍게 썰어달라고 부탁하고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고기 써는 기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고기전이 두꺼우면 편채를 올린 후 돌돌 말아 쌈 싸 먹기 불편하고, 너무 얇으면 구울 때 불 조절이 쉽지 않기에 내가 고수하는 것이 육전과 샤부샤부의 중간 두께이다.
소고기에 전처리를 하는 약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 좀 더 맛있는 전을 먹을 수 있다.
1. 소고기 한 장과 키친타월 두어 장을 한 켜씩 차례대로 깐다. 냉동고기일 때는 키친타월을 여러 장 겹쳐 깐다. 두세 시간 냉장고에 넣어 두고 소고기의 핏물을 확실히 뽑아낸다. 고기던 생선이던 핏물을 빼는데 나는 늘 집착하는 편이다.
2. 소주를 분무기에 넣고 핏물을 뺀 소고기에 살짝살짝 뿜는다. 소금과 후추를 솔솔 뿌린다. 고소한 고기전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에 단맛이 여실히 배여 나는 정종이나 미림은 사용하지 않는다. 소주, 소금, 후추가 고기에 배어들기를 잠시 기다린 다음 찹쌀가루를 골고루 묻힌다. 이 모든 전처리 재료가 고기에 착 감기도록 냉장고에 넣고 기다린다. 이 과정을 거치면 고기는 야들야들하면서 동시에 꼬들 거려 진다.
3. 채반에 받쳐 알끈을 제거한 계란물에 살짝 담근 소고기를 적당히 달군 프라이팬에서 한쪽면 살짝, 뒤집어서 뒷면 살짝 구워낸다. 이리저리 뒤적이지 않는다. 오래 구우면 고기가 질겨지니 프라이팬 온도는 보통의 전을 구울 때보다 약간 높이는 것이 좋다.
4. 곁들여 먹는 편채로는 무순이나 깻잎채가 좋다. 이 둘이 여의치 않거나 입맛이 당기는 다른 채소도 물론 좋다. 파채나 집에 있는 쌉싸름하고 보드라운 채소면 무엇이던 좋다.
5. 편채와 소고기 전에 적당한 소스는 다마리 간장, 연겨자, 배즙, 꿀을 적당량 섞어 만든다. 배즙이 없으면 탄산수로 대체하고 꿀의 양을 늘이면 된다. 다마리 간장이 없으면 보통의 양조간장에 꿀의 양을 늘이면 된다. 탄산수가 없다면 물을 한두 스푼 넣으면 된다.
큰아들을 가졌을 때 입덧이 끝나자마자 유독 소고기가 당겼었다. 그럴 때면 서초구 남부순환로, 예술의 전당 앞에 있는 버드나무집에서 데친 양배추쌈과 함께 어마 무시하게 많은 양의 소고기를 먹고 또 먹었었다. 소고기를 먹는 101가지 방법 중에서 소고기전과 편채는 얼마 전에 독립한 큰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