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명태 returns, "

by 클라우디아

명태, 동태, 생태, 황태, 먹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등 이름도 맛도 용도도 부자인 이 생선. "1340마리의 명태가 잡혔다."는 뉴스가 큼지막하게 뜬 날, 정릉천길을 득달같이 달려 내려가 정릉시장 생선가게에 갔다. 9천 원짜리 생태 몇 마리가 자판에 누워있기는 했으나 그들의 게슴츠레한 눈빛도 영 맘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명태의 살집이 빈약했다. 정릉시장을 염두에 두고 나온 터라 입고 나온 외투가 먼길을 가기엔 부실했지만 버스를 타고 경동시장으로 냅따 달렸다.




경동시장 단골 생선가게에서 한 마리에 7천5백 원 하는 생태 두 마리를 만 4천 원으로 신속하게 흥정을 마쳤다. 두툼한 살집에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꼬나보는 두 놈을 다듬지 않은 체 건네받았다. 생태는 집에 와서 다듬으면 좋다. 생태탕에 넣을 무, 콩나물, 미나리, 홍-청고추, 파 등을 생태와 함께 구매하기 마련이다. 이것들이 시장바구니 속에서 이리저리 비비적대며 생태의 창자 곧, 애와 알을 터트린다면 그야말로 죽 쒀서 견공께 바치는 꼴이 된다. 나는 생태를 사러 갈 때 곧잘 플라스틱 통을 들고 시장에 간다. 생선장수 아저씨가 잘 다듬어준 생태를 통에 담아 무사히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서이다. 플라스틱 통을 들고 옆에 서 있는 나를 흘낏 흘낏 치어다보는 생선장수 아저씨의 생태 다듬는 손길은 간혹 더 섬세해지기도 한다. 생태에선 애와 알이 워낙 중요하기에 통까지 들고 간 나를 별나다고 눈치 주는 이를 아직은 못 보았다.



경동시장에서 두 마리에 14,000원에 산 생태



흐르는 물에 살살 씻은 생태의 배를 조심히 가른다. 새신랑이 새신부 속곳 벗기듯 애지중지 애와 알을 떼어낸다. 생선은 큼지막하게 토막 낸다. 생태찌개의 다듬기, 끓이기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핏물 제거이다. 생태찌개나 동태찌개에서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듬뿍 넣거나 간을 세게 하는 것은 이 핏물에서 우러나온 역한 맛을 잠재우거나 없애기 위해서이다. 핏물은 생선 등뼈와 머리에 빼곡히 박혀있다. 게딱지 손질과 생선 핏물 제거에 사용하는 솔을 집어 든다. 이 솔로 핏물을 꼼꼼히 구석구석 쓸어내도 싱싱한 생선의 살집은 덩달아 쓸려가지 않는다. 생선의 핏물은 확실히 제대로 없애야 한다.



생태의 배를 가르자 드러난 애와 알



손질한 생선을 재우기 위해 채반, 소주, 소금, 분무기를 준비한다. 고기도 아닌데 생선도 재우느냐고 물어보는 지인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한다. 생선에 남아있는 나머지 잔여물이 빠지도록 채반이나 채반이 있는 통에 생선과 알을 겹치지 않게 나란히 살살 눕힌다. 소주 두어 숟가락을 분무기에 넣고 생태에 골고루 분사한다. 생선을 구태여 뒤집어서까지 소주를 뿌릴 필요는 없다. 번들번들한 생태 껍데기를 타고 생태의 반대쪽으로 소주는 자연스레 흐르기 마련이다. 소금을 한두 꼬집 살살 뿌린 후 냉장한다. 소주는 생선에 남아있는 잡내를 제거한다. 소금은 살집이 흐트러지지 않고 꼬들 거리게 해 준다.


생태 손질과 재우기 도구와 재료


채반에 누운 생태


집에서 만들기 편한 재료로 육수를 만든다. 황태대가리 육수, 멸치 다시마 육수, 혹은 그저 다시마육수도 좋다. 뒤포리 육수는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떠먹는 것이 뒤포리탕인지 생태탕인지 물음표로만 잔뜩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가. 육수가 펄펄 끓어오를 때 나박나박하게 썬 무를 넣는다. 무가 끓어서 떠오르면 남은 재료들을 편한 순서대로 투하한다. 모든 재료가 끓고 간을 보아 바로 이맛이다 싶으면 미나리를 넣고 불을 끈다. [육수 - 무 - 나머지 재료 편한 대로 - 미나리 넣고 불 끄기]가 생태탕 끓이기의 간단한 순서이다.



생태찌개 부재료 : 콩나물, 양파, 파채, 미나리, 마늘과 홍 청고추, 나박 썬 무


고춧가루의 양은 개인의 취향대로이지만 간은 특히 청장으로 맞추면 좋다. 국간장과 소금을 반반 섞어 간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으나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칠 때 나는 이 '요~물'같은 청장을 쓴다. 참치액젓, 멸치액젓 (혹은 까나리액젓), 국간장을 1:1:1 배율로 섞어 청장을 만들어 양념통에 넣어두고 사용한다. 모든 국과 모든 나물 등에 간과 더불어 감칠맛을 주는 '지니'가 바로 이 청장이다. 구하기 쉬운 이 세 가지를 단순히 섞어서 만들면 되기에 주부 레벨을 단번에 급 상승시키는 청장은 진정 요물이다.


국과 나물에 간과 더불어 감칠맛을 더해주는 청장



명태는 동해안 이북 쪽에서 주로 잡히던 생선이었고, 황해도 출신이신 시댁 부모님의 밥상을 완성시키는 주요 재료였다. 예전엔 냉장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어부의 손에 잡힌 명태가 시장에 나오기까지 겨울의 추위로 꽝꽝 언 후 동태 상태였다. 생태탕이니 생태찌개는 냉장기술이 급격히 발전된 비교적 최근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태찌개는 당신이 만드신 다른 음식들과 더불어 어머니께는 잃어버린 후 찾지 못한 고향을 생각하게 했고, 나에겐 넘치게 주신 사랑과 넘치게 남겨주시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 연세 70, 내 나이 25에 만난 고부사이는 여타의 고부가 겪는 두어 가지의 자잘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이 없지는 않았다. 모두 음식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다.




갈치조림이건 갈치구이 건 불에서 펄펄 끓거나 지글지글한 상태 그대로 상위에 올랐다. 된장찌개를 먹다 입천장을 데이는 건 다반사였다. 뜨거워야 맛이 있다는 어머니 말씀에 잠시 숟가락질에 뜸을 들이는 것은 시댁 식구들 중 나뿐이었다. 미지근하거나 따땃한 정도의 음식만 먹고살았던 나에겐 결코 쉽지 않은 온도였다. 양도 또한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음식을 그렇게 많이 했다가 남으면 버리게 되는데요."라는 말을 나는 몇 번이나 입속에서 머금다 삼키고 머금다 삼켰다. 어머니께서 만드신 음식은 많더라고 남아 버려지는 일은 없었다. 우선 많은 분량 중 상당 부분은 이웃의 몫이었다. 또한 내가 밥을 한 그릇 먹고 나면 "배가 고팠구나."라고 하시며 어머니께서 내어 주시는 한 그릇을 더 먹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끼에 대한 어머니의 양이 나의 그것과는 대단히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자 끼니를 거르고 간다든지, 어머니께 다녀오면 다음 한 끼를 거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내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머니께서 만드신 음식은 '많은' 양이 아닌 게 되었다.




말수가 유달리 적었던 어머니와의 매개체는 주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살짝 데쳐 갖은양념으로 무친 후 뜨거운 불위, 냄비 안에서 후딱 후딱 덖어먹으라고 두릅 한 상자를 보내시면, 그때는 봄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가면 찹쌀 부꾸미를 간식으로 내놓으셨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여름이 절정에 오르고 감자 맛이 최고일 때 포슬포슬하게 삶아 분이 하얗게 피어오른 감자를 어머니께서는 참 좋아하셨다. '분이 오른 삶은 감자'가 음식 솜씨 좋으신 두 형님 덕분에 막내며느리인 내가 어머니께 해드린 유일한 '음식'이었다. '네가 삶은 감자가 제일로 맛있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은 내 머릿속 회로가 설사 어떻게 엉킨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인 양념 황태구이나 황태해장국, 알탕 등은 지금도 우리 집 주요 메뉴이다. 수십 년 동안 해 먹어 왔고 이에 대한 나만의 비법도 갖게 되었다. 명태알인 명란젓은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내고 들기름과 마늘로 양념해서 먹기도 하고 명란찌개, 명란 전골, 백명란 전골 등으로 자주 먹는다. 남편은 술 한잔의 안주로 바싹하고 고소한 황태구이를 가장 즐긴다. 프라이팬을 중불로 달구어 포도씨유 몇 방울과 함께 잘게 자른 황태를 제법 오래 덖는다. 그냥 먹기도 하고 마요네즈에 청양고추 한 개를 동글게 썰어 소스로 찍어먹기도 한다.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용 황태채
황태
양념을 바르기 전 흐르는 물에 살짝 씻은 황태


'명태의 귀환', '명태가 돌아왔다.'와 같이 감격의 정서를 듬뿍 넣은 뉴스의 헤드라인을 보자마자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2006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동해안 고성 앞바다에서 1340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그동안 우리는 주로 러시아에서 잡힌 명태를 냉동, 냉장상태로 들여온 것을 먹거나, 그것을 강원도 바닷가와 고랭지역에서 말린 것을 먹었다. '용대리 황태'라 함은 러시아에서 잡아 공수해온 명태를 강원도 용대리에서 말렸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오늘 저녁 메뉴는 국산 오리지널 생태찌개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어부들이 감사하게도 치어를 보호한 덕분인지 정부가 당연하게도 가동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인지, 우리 동해안에서 우리의 명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누구 못지않게 반길 분이 어머니이실 테니.




달큼하고 부드러운 생선살은 입에서 녹을 테고, 시원하고 말끔한 국물은 호로록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 가리라.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누는 사소하거나 별거 아닌 이야기들은 잠시 우리 곁을 머무르다 방문 틈새로 사라리지라. 사소한 신경전을 벌였던 이웃과 함께 시댁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어머니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언제 그랬던가 싶게 호호 하하하며 우리는 물색없는 이웃사촌이 되리라. 야속했던 남편의 말 한마디를 반드시 따지겠다는 내 분기탱천은, 양껏 채운 위장이 소환한 깊은 잠으로 까무룩 숨이 죽어 생사를 모르게 되리라.




그 귀한 1340마리의 명태는 누구의 상에 올랐을까?








PS : 우리 집에서 만둣국을 먹은 후 술안주로 황태포를 구워주자 황태는 뭐고 명태는 뭐냐고 아들 친구가 물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몇 가지 정보를 덧붙인다.



1. '명태'를 잡아서 얼음에 채워 자연 상태로 유통되는 것이 '생태'이다. [생태탕 또는 생태찌개]

2. 명태를 꽁꽁 얼린 것이 '동태'이다. [동태탕, 동태찌개, 동태전]

3. 명태를 해풍에 바싹 말리면 '북어'가 된다. 해풍을 맞으며 말리기만 하기에 수분이 없고 살이 단단하다. 자연 상태로 건조되기에 눈알이 그대로 선명하게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엇국, 북어채 구이, 양념통 북어구이]

4. 강원도 고랭지역에서 밤에 얼고 낮에 녹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여 육풍에 말리면 '황태'가 된다. 황태는 황금색을 띠며 살이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황태해장국, 황태 양념구이, 황태채 구이]

5. 명태를 기온이 따뜻한 상태에서 마르면서 거무스름한 색을 띠는 '먹태'가 된다. 요즘 먹태는 진공상태의 큰 통에 넣은 후 따뜻한 바람으로 말리기에 눈알이 모두 빠지거나 안으로 쑥 들어가 있다. 저렴하고 수분기가 남아있어 간단한 술안주로 인기 있다. [먹태 구이]

6. '코다리'는 명태에서 알과 내장을 뺀 후 2~3일 정도 말려 꾸덕꾸덕한 반건조상태가 된 것이다. 보통 4마리씩 코를 꿰어 팔아서 코다리란 이름이 붙었다. [코다리 조림, 코다리찜, 코다리 양념구이, 코다리 조림]

7. '노가리'는 명태 새까를 잡아 해풍에 말린 것이 노가리. [노가리 구이]

8. 명태알을 소금에 절인 것이 '명란젓',

9. 명태의 창자를 절인 것이 '창난젓'이다.




[표지 사진 : 깔끔한 맛의 생태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