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by 클라우디아

친정은 먹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입는 것에 치중하는 편이었고, 시댁은 입는 것보다 먹는 것이 중요했다. "교토는 입어서 망하고 오사카는 먹어서 망한다."는 말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말하자면 그런 셈이다.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열두 폭 스란치마를 입고 화분 앞에 그림처럼 앉아 난초 이파리를 하나씩 그리고 하나씩 닦으시던 모습과 단정이 여민 입매가 우선 생각난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뜨거운 갈치조림 냄비를 상위에 올려놓으시며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와 연기 너머로 어서 먹으라고,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다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 나이 스물다섯에, 4살 위 남편과 결혼 한 해, 시어머님 연세가 70이었다. 일흔 살의 시어머니와 스물다섯의 막내며느리. 어머님께 받은 사랑은 내 혀가 아무리 길어도 다 말하지 못하고, 설사 내 글 솜씨가 대단히 현란해진다 해도 다 적지 못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장려한 20년 이야기를 쓴 호머의 손을 빌려도 어머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무한정으로 어머니께 받은 사랑의 구상적 증거는 우선 음식이었다. 황해도 출신이신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맛과 양은 물론 베푸시는 정도까지 독보적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첫 출근하던 날, 건물 1층 안내데스크의 연락을 받고 내려가 보니 어머님께서 만들어 보내신 ‘늙은 호박고지설기떡’이 와 있었다. 켜켜이 그리고 아낌없이, 콩, 밤, 완두콩, 그리고 늙은 호박고지를 넣은 찹쌀설기떡은 맛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양도 무척이나 많았다. 회사 사람들 전체가 맘껏 먹고도 남아 그 후 며칠 동안 회사 식구들의 간식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머니께서는 음식의 양을 가늠하실 때 결코 울타리 안의 집안 식구들만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동네분 들, 먼 거리에 있다 할지라도 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도 때론 범주에 넣고 준비하셨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품에 단단히 여민 음식 보따리를 안겨주시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마음과 손안에 포함되었다.




내가 속한 세대를 마지막 남은 '비합리적 세대'라고들 한다. 긍정적인 의미이건 부정적인 의미이건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또한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할 때 가까운 산에 올라가 진달래를 따와서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손님상에 내어 본 적이 있다. 음식을 만들고 있노라면 아들의 친구라든가 옆집사람이라든가 모임 친구라든가 여하튼 그 음식을 먹이고 싶은 사람들 리스트가 주르륵 흘러넘치며, 동시에 엔도르핀도 덩달아 차고 넘치고, 음식을 만드는 내 손끝에선 흥이 폭발하곤 한다. 피를 물려받지 않은 며느리인 내가 어머니의 음식 유전자를 확실히 물려받은 셈이다.





호박고기 설기떡 [출처 : 구글 이미지]



떡이면 떡, 김치면 김치, 반찬이면 반찬, 밥은 또 얼마나 맛있게 지으시는지. 간단한 김구이조차도 내가 구운 김과 어머니의 손길을 거친 김은 향기부터 달랐다. 어머니 손은 요즘 말로 ‘금손’이었다. 음식에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이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였던 어머니의 솜씨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 달에 두어 번 찾아 뵐 때면 부지런하신 어머니께선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자식들을 맞이하셨다. 게다가 솜씨 좋으신 형님이 위로 두 분 계신 터라, 나는 상을 차리고 식후 설거지와 정리 정도였다.




명절 음식도 직장에 다니던 내가 시댁에 도착하기 전에 어머님과 큰 형님께서 거의 다 만들어 놓으셨다. 이미 준비 된 만두피에 만두소를 넣어 하나씩 또 하나씩 만두를 빚으며 어머니께서 그리움으로 빚으시는 고향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이북에서는 겨울이 되면 만두를 몇 백 개씩 만들어 여러 개의 소반에 차곡히 얹어 광에 갈무리해두셨다고. 황해도 그곳의 겨울은 워낙 추워서 채반에 얹은 만두를 그냥 광에 두어도 저절로 꽝꽝 얼었다고. 그렇게 겨울 내내 만두가 떨어지는 일 없이 온 식구가 먹곤 했다고. 어머니의 고향 이야기를 들으며 만두를 빚노라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곳을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다녀와서, 그곳은 낯선 곳에서 어느 사이 내가 언젠가 돌아가고픈 고향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세월이 흐르니,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진 애통이 가라앉고 그 밑바닥에 슬픔과 그리움이 남았다. 시간이 더 흐르자, 어머니 생전에 음식 하나 제대로 여쭙지도, 배우지도 못했다는 회한이 남았다. 아쉬운 대로 손위 형님 두 분께 만두와 빈대떡, 나물 등 몇 가지를 구두로 전수받았다.




흔히, 음식에 까다로운 식구가 있으면 그 집 솥뚜껑 운전사 솜씨가 좋거나 혹은 없던 솜씨도 생긴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남편의 미각은 정확하다.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한 평가가 냉정하기는 하나 가혹하진 않고, 내가 무엇을 만들어 주어도 일단 잘 먹는다. 그가 어쩌다 한번 내리는 평가에 다른 사사로운 감정이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큰 아들은 음식에 까다롭고, 싫거나 맛없는 음식은 입에 대기는커녕 곁눈질조차 아까워한다. 음식에 대해 자신이 내리는 평가에 자신감이 있다. 그에게는 이걸 먹어봐, 저걸 한번 맛이라도 봐와 같은 애걸복걸도, 알랑방귀도, 협박도, 폭언도 먹히질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다 해보았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환호하는 ‘단짠’ 조합을 극히 싫어하는 고독한 미식가인 그는 음식을 두고 벌이는 나와의 기싸움을 은근히 즐기는 듯하다. ‘플레인 크림치즈’를 바른 ‘플레인 베이글’ 외에는 먹지 않는다. 덕분에 할라피뇨&크림치즈 베이글, 모차렐라 치즈 베이글, 초코 베이글, 어니언&허브 베이글 등도 제법 만드는 내 솜씨는 레시피 파일과 내 손아귀 어딘가에서 편히 잘 쉬며 가끔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되었다.





내 음식이 간혹 화려한 양념과 맛의 미로를 헤매다가 본진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곁가지를 쳐낸 담백함을 중요시 여기는 큰아들의 까탈스러움과 탁월한 미각 덕분이다.




뉴욕 스타일로 구운 베이글과 유기농 플레인 크림치즈



막내아들은 내가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 무엇이든 혀가 구름 속에 노니는 듯 그는 잘 먹는다. 무엇을 먹든 항상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로 맛있어요!”라고 엄지 척을 해주어 조조의 백만 대군 못지않은 든든한 배경이다. 맛에 대한 그의 평가도 정확하여 혀에 나노 단위의 눈금이라도 있는 듯 정확한 간 보기가 그의 특기이다.




오늘의 내 만두 솜씨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은 내 혀의 기억, 두 형님께 구두로 전수받은 요리법, 남편과 두 아들의 정확하거나, 냉정하거나, 에누리 없는 평가의 산물이다.




올해의 김장김치로 처음 빚은 만두




1. 만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단연코 돼지고기를 재우는 일이다. 소금 한 두 꼬집, 약간의 후추, 소주 한두 숟가락과 들기름을 넣고 돼지고기 목살 다진 것을 재운다. 들기름을 ‘이렇게 많이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콸, 콸, 콸 부어야 한다. 이것이 돼지고기 냄새가 나지 않고 나머지 재료와 조화를 이루는 비법이다. 이렇게 전 처리한 돼지고기 목살은 최소 두어 시간 이상에서 반나절 또는 하루까지 재우면 좋다.




2. 두부는 너무 꼭 짜면 안 된다. 간혹 만두용으로 물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꼭 짠 두부를 시판하는데 두부의 고소한 맛도 덜할뿐더러 나머지 재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단단한 부침용 두부를 사 와서 채반에 받치고 물을 담은 대접을 두부 위에 두 어 시간 올려두면 충분하다.



3. 김치도 너무 꼭 짜면 안 된다. 손가락 사이로 김치 국물이 흐를락 말락 할 정도로 짜야 김치의 풍미가 남는다.



4. 깨끗이 씻은 숙주는 살캉거릴 정도로 데친다. 팔팔 끓는 물에 숙주를 넣은 다음 10까지 센 후 위아래를 한번 뒤집어 주고 다시 10까지 센 후 꺼내어 채반에 그대로 두면서 식히면 잔열로 익는다. 그 정도가 적당하다. 완전히 식으면 꼭 짠다. 너무 자잘하지 않게 다진다. 혹은 손가락 반 마디만큼의 길이로 듬성듬성 썰어도 좋다.



5. 당면은 팔팔 끓는 물에 데치면 풍선 바람 빠지듯 쪼르륵 오그라든다. 만두소에 있어서 당면은 볼륨감을 주는 역할을 하므로 뜨거운 물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채반에 받쳐 물기를 뺀 후 다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6. 재료를 버무리는 순서 또한 중요하다. 김치 다진 것, 숙주 데쳐서 다진 것, 두부 짠 것, 양파 다진 것을 우선 충분히 섞는다 - 돼지고기 목살 다져서 재운 것을 더한다 - 마늘, 소금, 후추를 넣고 참기름을 ‘이렇게 많이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콸, 콸, 콸, 콸, 콸 붓고 전체를 골고루 버무린다 - 쪽파 다진 것, 부추 다진 것, 대파 다진 것, 계란 하나를 넣고 갓난아기 궁둥이 만지듯 살살 한번 후다닥 버무린 후 냉장고에서 반나절 이상을 숙성시킨다.




만두를 만들어 쟁반에 받쳐 냉동실에 넣어 꾸득꾸득해지면 꺼내어 보관통에 넣어 냉동시킨다. 처음부터 보관통에 넣으면 찰싹 달라붙어 떼기 힘들다.



누가 나에게 만두 만드는 비법을 묻는다면 ‘솜씨도 별로 없는데요, 뭘.’ 이라며 서너 번 겸손하게 사양하다가 넌지시 알려줄 꿀 팁은 이 정도이다. 내 음식을 먹어보고 만드는 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저 음식에 대한 칭찬이었지 정말 만들어 먹어 볼 생각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는 잠시 얼굴을 붉힌다.




음식에 대한 맛은 오감과 개개인의 추억의 총집합이므로 위의 팁을 차용하느냐는 각개인의 몫이다. 두 형님께서 열심히 전수해주신 비법에 나 또한 내 몫의 변주를 주었다. 만두 재료의 정확한 계량은 큰 테이블 스푼이니 작은 테이블 스푼이니 하는 순간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해질 수 있으므로 손대중으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또한 개개인의 변주를 권한다.




식초와 간장 때론 여기에 고춧가루 약간을 더해 양념장을 만들어 만두에 끼얹어 우선 만두를 몇송이 먹고 그다음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좋다.



만두 만들기


김장 김치 두 쪽 : 배추를 4 등분하여 김치를 담갔을 때

국산 돼지고기 목살 : 만원~만 5천 원어치

두부 : 시장 두부 (큰 것) 한 모반, 마트 두부 2모

쪽파 :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동전 5백 원짜리 만큼

부추 :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동전 5백 원짜리 1~2개만큼

양파 : 큰 것은 하나 또는 작은 것은 두 개

숙주 : 재래시장에서 살 때 2천 원어치, 마트에서 살 때 두 봉지

당면 :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동전 5백 원짜리만큼

계란 : 크기 상관없이 한 개

대파 : 1/2대

소금, 후추, 마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