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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Aug 04. 2021

구기동에서 5

인테리어 공사 3 덧방에 조적 벽이라....





5~6년 전 가평 아난티에서 조적 욕조를 보았을 때 내 가슴은 '웅장'해졌다, ('비대면 데이트'의 '임키'버전으로 표현하면). 무광의 '다크'하고도 '시크'한 회색 조적 샤워부스와 욕조를, 나는 그때부터 열망했다.





내 머릿속에 존재했던 조적 욕조. 그때 내 꿈은... 아주 기냥 겁이 없었구나! [출처 ; 구글 이미지]





저체온증의 나에게 욕실 바닥의 난방은 필수사항이다. 체온이 34도에서 머무르다 가끔 35도 초입에 진입하는 나에게 늦가을이나 겨울 아침의 세수나 저녁 샤워는 단단히 마음먹고 치르어야 할 행사이다. 차가운 욕실 바닥에 발을 딛는 건 나에게 결심까지나 해야 할 일이다.





바닥난방과 조적 벽이라는 내 희망사항을 들은 인테리어 사장님의 눈길에는, 욕실조차 '평범하게 가지 않고' '뭔가를' 하고 싶은 나를 향한 당황함이 가득했다.





평범한 원피스에 시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나타난 중늙은이 (사실은 노인...) 입에서 펜던트 등이니 융 스위치니, 히든 도어와 무 몰딩 같은 용어들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공사는 까다롭고 비용은 많이 드는 희망 사항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나오자 인테리어 실장님의 '방어'가 시작되었다. 내 입에서 방언처럼 터져 나오던 몇 년 묵은 '꿈'들이 시공자의 현실 앞에서 조금씩 옅어졌다.





화장실 바닥과 벽을 뜯어내지 않고 오히려 타일을  위에 덧붙이는 덧방 공사로 아늑한 느낌과 보온효과까지   있다는 설명에 욕실 바닥 난방공사는 덧방 공사와 욕실용 온열기 설치로 바뀌었다.





'두터운' 벽돌 두께 때문에 아주 아주 아주 넓은 욕실이 아니라면 조적 벽 시공 후 답답함을 느껴 이를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실장님의 거듭된 설명에 거실 욕실에는 평범한 샤워 부스를 설치하기로, 역시 나는 한발 후퇴했다.




조적 벽에 대한 열망과 질척이는 미련 때문에 안방 욕실은 포기되지 않았다. '안방 욕조는 그대로 갑시다, 조적 벽으로!',라고 외치며 견적서의 다음 사항으로 넘어가는 내 눈앞에 얼핏 '망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는 했다.






욕실 공사를 마쳤다는 소식에 결과물을 보러 득달같이 달려갔다.





안방 욕실 입구, 시공 직후 모습




안방 욕실 조적 욕조, 시공 직후 모습




덧방 공사로 두~~~~ 툼 해진 창틀




세면대조차 커서... 오늘 아침의 욕실 사진





'헉 망했구나', 덧방과 조적 욕조를 장착한 욕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더 더욱 훠얼씬 좁아져 있었다. 욕실의 다른 부분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 좁다, 좁아도 너무 좁다'라는 느낌뿐이었다. 욕실 바닥과 사방에 타일을 덧붙이고 벽돌을 가로 세로 높이로 쌓아 올려 욕조를 만들자 욕실 크기가 반이나 줄어든 듯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 후 이틀 동안 내 머릿속은 멍멍이 싸움으로 쥐가 났다.





'뜯어야지 - 아냐 더 좁은 욕실도 있잖아 - 아 그래도 너무 좁아터졌어, 몸을 움직이면 이리저리 부딪힐 거야 - 그래도 좁으니 아늑하잖아, 휑한 느낌 없이 좋잖아.’ ‘이걸 뜯어? 말어?’ 내 머릿속은 도돌이표 멍멍이 싸움으로 지진이 났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는 코로나 이후로 온천여행은 물론이고 목욕탕도 제대로 못 간다. 온천을 닮은 조적 욕조는 사치가 아니라 나에게는 필수인데.... 마음을 다잡고 다시 현장에 갔다. 주방을 기웃거리다 욕실에 가서 힐끗 한번 보고 나왔다. 베란다 타일을 괜히 만지작 거리다 욕실에 가서 괜스레 조적 벽 욕조를 쓰윽 쓰다듬어 보았다. 세면대는 왜 그리 욕심내어 큰 걸 들였는지.. 에구 정말, 내가 정말, 빠졌구나 빠졌어.





그렇게 여러 번 보다 보니 시공 전의 욕실 모습과 크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시공 후 엄청나게 좁아진 크기에 눈과 마음이 적응되었다.




인간은, 특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적응력 하나만큼은 끝내주지 않았던가! 좁아터진 욕실을 비집고 꽉 들어찬 조적 욕조에 밀크티 입욕제를 잔뜩 풀고 뜨거운 물을 받는다. 몸을 텀벙 담그니 온몸의 신경이 노골노골 풀어진다. 물속에서 졸다가 깨다가 졸다가 깜작 놀라 허둥지둥 욕조에서 나와 몸을 말린다. 냉장고에서 페일 에일 한 캔을 꺼내든다, 벌컥벌컥 벌컥. 이거 이거 이거, 이 정도면 거의 천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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