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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Jul 29. 2022

구기동에서 12

나의 스콘





요즘 스콘을 자주 굽는다. 식사용 빵으로 지속적으로 만드는 오트밀이나 견과류를 듬뿍 넣은 통밀빵과 호밀빵 다음으로 스콘을 가장 많이 만들고 있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손님을 한 번에 많이 초대하지 못하기에 서넛 또는 대여섯 분들을 한 팀으로 집들이를 하며 디저트로 만든 것이 스콘 만들기에 다시 불이 붙은 계기였다. 이사 와서 새로 사귀게 된 분들에게 신입 인사로 스콘을 구워 드리기도 했다. 내 스콘을 드신 분들로부터 '이제까지 먹어 본 스콘중 최고다. 고급스러운 맛이다. 인생 스콘이다. 돈쭐 내줄 테니 제발 좀 만들어서 팔아다오'와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베이킹 관련 카페나 블로그를 읽다 보면 스콘 만들기 실패담이 가끔 올라온다. 스콘의 속이 떡졌다, 스콘을 굽는 도중에 성형한 모양이 무너졌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스콘을 무슨 맛으로 먹냐? 퍽퍽하여 목만 막힌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께 내가 만든 스콘을 대접하고 싶다.









10년 전 나는 제과에 진심이며 정통으로 제과를 전공한 선생님으로부터 스콘 만들기를 배웠다. 그 후 베이킹 책, 유튜브, 블로그 등의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도 보면서 결국은 나만의 레시피를 갖게 되었지만, 그 선생님이 핀셋처럼 콕콕 집어 주셨던 팁들은 여전히 내 스콘 만들기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내 스콘을 드시는 분들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에서 먹어본 내 인생 최초의 스콘 덕분이다.





25년 전 나는 남편과 둘이서 영국의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이 두 도시를 목적지로 여행을 떠났다. 런던에 도착하여 반나절 동안 대영박물관을 수박 겉핥기 하듯 둘러본 후 재빨리 셰익스피어의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영국인'은 과연 '영국인'이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었고 영국 북부의 '시골마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양인이라고는 당연하게도, 남편과 나 둘 뿐이었다. 호기심에 잠깐이라도 흘깃거릴만하건만, 그들은 결코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쩌다 마주쳐도 웃는 법을 몰랐다. 싸늘하지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고 일말의 관심을 실수로라도 흘리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결코 냉담하지 않았던 눈길은 그들이 오랫동안 유지하고 숙성시킨 DNA의 힘이었다.




이따금씩 덜컥이거나 삐걱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한 폭의 정물화 같았던 기차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 어폰 역에 도착했다. '영국 날씨'는 과연 '영국 날씨'였다. 오후 4시쯤이었는데 온 대기는 잿빛이었다. 해가 떠 있는 건지 벌써 진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쇠라의 그림을 빼곡히 채운 점들처럼, 미세한 빗방울들이 질서 정연하게 한치의 빈틈도 없이 온 사방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추위는 집요했다. 모세혈관마다, 근육 사이마다 한기가 파고들었다.




길을 조금 헤매다 이메일로 예약한 B&B 도착했다. 3 4 동안 머무를 방에 안내되었다. 침구는 눈이 부시도록 하얗고 빳빳했고 청결했다. 추웠다.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고, 콧물이 당장이라도 두두둑 떨어질 듯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곱아 들었다. 이불이 아무리 두텁다 해도, 장작불을 활활 태운다 해도 해갈이 안될듯한 추위였다.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로  것이지, 편하게 단체여행이나  것이지, 철없던 대학생 때의 꿈을 좇아서 영국 하고도,  시골까지 사서 고생을 하며 왔던가 하는 마음에 여행 전체에 대한 기대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침대 시트만큼 하얀 피부에 홍로사과처럼 빨간 볼의 B&B 여주인이 트레이를 내밀었다. 티와 스콘, 버터와 마말레이드였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이   동양에서 건너온 나그네에게 건네준  스콘의 맛은 잊으래야 잊을  없다. 따뜻함을 넘어선 위로였고, 무엇보다도 얼어붙었던  혈관을 녹였고, 근육을 꿈틀거리게 했고 여행에 대한 기대를 다시 끌어올렸다.




나는 스콘을 만들 때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에서 먹었던 내 인생 첫 스콘 맛을 소환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할 일들이 떠오른다. 스콘의 주재료인 박력분, 버터, 우유나 생크림은 만들기 직전까지 냉장한다. 호두, 피칸, 건크렌베리, 건무화과, 오렌지 필, 레몬 제스트 등 부재료도 만들기 직전까지 냉장한다. 오븐에 넣기 전까지 반죽의 차가움과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냉장 심지어 냉동도 불사한다. 손바닥의 열로 반죽 속의 버터가 녹는 것을 막기 위해 스크래퍼나 밀대를 사용한다. 냉장이나 냉동으로 휴지 한 스콘 반죽을 성형할 때 저울에 올려 스콘 하나하나의 그램수를 정확히 맞추려 한다면 반죽의 온도가 올라가고 버터는 녹는다. 크기와 특히 높이가 일정해야 고르게 구워지기 때문에 성형할 때 나는 아이스크림 스쿱이나 쿠키 틀을 이용한다. 이 모든 것은 스콘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 버터가 녹는 것을 사생결단으로 막기 위해서이다.









스콘은 '빵과 과자 사이의 맛이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스콘은 스콘이다. 빵과 과자 사이의 중간맛을 염두에 두면 강력분, 중력분 그리고 박력분 사이에서 헤매게 되고 반죽 속의 버터를 처리하는 방법을 고심하다 레시피를 의심하게 된다. 영국 소설 속의 인물들이 비를 맞는 장면들, Emily Bronte의 'Wuthering Heights'에서 Catherine이, 그리고 Heathcliff가 비에 젖어 서로를 찾아 들판을 헤매고, Charlotte Bronte의 'Jane Eyre'에서 Jane과 Helen Burns가 시설에서 내어 준 빈약한 옷을 입은 체 비를 맞고 떠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Jane이 Edward Rochester를 떠난 후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낯선 마을들을 정처 없이 헤매는 장면, 사랑하는 이의 단단하고 따뜻한 품을 떠나 추위와 굶주림에 몸을 던진 Jane이 Saint John의 집 앞에서 기어코 쓰러지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이때 그들에게 내어줄 뜨거운 차와 스콘을 상상한다면, 스콘이 어느 정도 바삭해야 하는지 결정된다. 느끼하지 않은 고소함을 목표로 두게 되고, 허기를 과하지 않게 채울 정도의 우유와 설탕의 양이 정해진다. 이런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스콘의 레시피와 공정과정이며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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