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2022.04.23.토) *
*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2022.04.23.토) *
중학교 때 소설책을 출간했다는 A에게 소설책을 건네 받으며 이야기했다.
- 공부 하고 싶지 않다고 학교 밖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앉아서 글을 써 봐..
- 학교를 나가더라도, 우리 학교가 어떤지는 제대로 경험하고 나가야 하지 않겠어..???
교무실 문을 열고 나가다 B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 너무 반가워서 소리질렀다.
- 선생님!
- B!
- 선생님! 저, 피어싱 다 뺐어요!
- 진짜???
- 이거 구멍 막히면 어떻게 해요!
- 다시 뚫으면 되지!
결석 하지 말고 학교 잘 나와..
- 아..저, 병자예요 선생님..
- 오늘 얼굴 보니까 너무 좋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마치 연인을 만난 듯, 우리는 너무 반가웠고 기뻤고 뛸 듯이 좋았다. 우리 학교에서 저런 대화라니, 대화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랄 졸업생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나에게는 피어싱 따위는 진짜,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 결석만 하지 말고 학교에 나와 주었으면..
- 지각하더라도 조퇴하더라도, 피어싱을 하고 다니더라도, 학교에 잘 나와 주었으면....
- 왜 자퇴하려는 거지....그 고민을 내가 들어주면 안될까....
-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고 바뀌게 해 주고 싶어..
대부분 학교는 5월이라고 하던데 우리 학교는 4월에 교생 실습이 있다. 올해는 18명이나 되는 교생들이 왔고 그중에 음악과 교생도 2명이나 있었다. 인원은 많았지만 예년보다 조용하게 실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습이 끝나가는 이번 주 음악과 교생 선생님들이 특송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선택한 곡이 쉬운 곡이 아니어서 반주자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다.
보통 콘서트콰이어(합창단) 반주자들이 반주를 하는데 작년부터 동아리 활동이 없어서 반주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들, 음악을 잘 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전공자보다도 음악을 잘 하는 아이들로 인해서 음악선생님으로서의 기쁨이 충만했던 시절을 마음껏 누려왔던 것에 감사함과 더불어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기도 하다.
어쨋건, 교생들의 특송곡을 반주할 학생이 없다는 이야기에 내가 나서게(?) 되었는데, 개교 이래로 채플 시간에 실제 연주를 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기록을 깨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선생님들과 함께 연습한 뒤 동영상을 미리 녹화해서 보여 주었던 적은 많지만 말이다.
신기한 것은, 교생 선생님들이 반주자를 구하기 전에 악보를 보여주며 이 곡을 할 것이라고 했을 때, 내 마음이 움찔하며 무언가 움직였다는 사실..
- 저 곡, 피아노 반주해 보고 싶은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학생이 반주하는 것으로 알고 잊었었는데, 지난 주 금요일 늦은 저녁에 학생 반주자 A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 선생님... 저 이 곡 반주 못하겠어요...너무 어려워요...
- 그래도 연습해
- 공부는 언제 해요..어쩌구 저쩌구..
그 연락을 받은 나는 깜짝 놀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답했다.
- 뭐야... 악보 사진 찍어서 보내 봐..
메신저로 받은 악보를 인쇄해서 지난 주 토요일에 집에서 피아노를 쳐 보면서 생각했다.
- 쉽지는 않지만 피아노를 쾅쾅거리면서 치고 싶은데...
사실 이 과정 자체가 나에게 흥미로운 일이다. 채플 시간에 실제 반주를 했던 적도 없거니와, 교사가 반주를 했던 적도 없고, 학생이 하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진행이 되도록 했을텐데, 별 동요도 없이,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반주를 하기로 고민도 하지 않고 나 스스로 결정했으니까....
성악과 클라리넷이 어우러지는 이 곡을 교생 선생님들과 음악실에서 연습하면서 생각했다.
- 잘 치는 것을 떠나서, 틀리지나 말아야 할텐데..
- 함께 해 주신다면 잘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피아노를 치면서 흥분해서 나 혼자서 템포가 빨라지는 경우가 많고, 중요한 음을 잘못 치는 경우도 있기에 내심 쪼금 걱정했지만, 의외로 차분했고,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았다.
매주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를 하는 내가, 이번에 왜 이런 심정이었을까....
특송곡이었던 ’기름 부으심(신성우 곡)‘... 가사 중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나를 보내사 눈먼 자를 눈뜨게 하며
나를 보내사 갇힌 자를 놓이게 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젊은 시절, 이 가사 내용을 간절히 꿈꿨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고, 갇힌 자를 놓이게 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가치있는 삶일까..하고 말이다.
꿈을 먹고 살았던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난 지금, 내가 지금 수고하고 노력하는 ’꿈‘은 무엇인지,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곡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그래서 작년과 다르게 나의 눈이 아이들을 좀 더 향해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년에는 일만 보면서 앞으로 내달렸다면 올해의 내 눈에는 흔들리는 아이들이 보이고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고 방황하는 모습들이 밟힌다.
- 저 녀석은 왜 저렇게 웃고 있을까..
- 저 녀석은 왜 저렇게 가만히 있을까..
- 저 녀석은 웃고 있더니, 지금은 왜 울고 있는 걸까...
- 저 피어싱은 어떻게 읽어달라는 걸까....
- 무얼 말하고 싶은거지....
- 널 사로잡을 건 외모도 작위도 아니야
마음과 영혼이 너와 맞는 사람이어야지
네 가슴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해
그게 네가 누려야 할 진정한 사랑이야
어떤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 몇 줄….
살아가면서 수많은 만남을 갖지만, 마음과 영혼이 맞고 가슴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이미 그런 만남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비단 남녀와의 만남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수많은 만남들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불꽃이 튀는 이런 기억되는 만남들이 있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하게 될까....
어떤 만남이든, 만남 뒤에는 무언가 살아남, 회복이 있으면 좋을텐데....
이번 주에도 있었던 수많은 만남들,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만남과 부딫힘 속에서 서로에게 어떤 좋은 변화가 있었을까...
마음과 영혼이 맞고
가슴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아직도) 꿈꾸어 보며...
내가 그런 따뜻한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보며....
죽어있어 소망이 없던 것을 살아나게 하여 소망이 있게 해 주는 것이 ’부활‘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무언가 다르게 소생하고 회복되고 치료되고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얽매이던 것을 놓아버리게 하고 자유롭게 될 수 있게 한다면,
그래서 누군가 마음껏 꿈꿀 수 있게 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인생일까 하는 뜨거운 생각을
다시금 새롭게, 간절하게 내 안에 소중하게 품어본다.
음악시간에 ’할렐루야‘ 악보를 들고 열심히, 그야말로 열씸히 노래하고 있는 A와 B를 보며, 내가 얼마나 흐뭇했는지, 예뻤는지, 내가 이번 주를 나름 제대로 살아왔구나 생각했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어서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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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부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