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을 안다면... (2022.04.30.토) *

by clavecin

* 정답을 안다면... (2022.04.30.토) *


무척 쉬워서 아이들의 기분이 한껏 흥분되어 있던 첫날 시험 다음 날, 수학 시험을 치르는 2일째 아침, 학년 조회에 이렇게 썼다.


-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최선을 다해 보기를요..


섣불리,

시험지 덮고

같은 답으로 찍지 말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도,

혹,

풀어서 답이 더 틀리더라도..


같은 답으로 찍지는 말아요..

바보 같아요..


여러분은

바보,

아니니까요..



시험 전 교무실 앞 여학생 교실에 잠깐 들렀다. 아이들 몇 명이 몰려나오며 말한다.


- 선생님..몇 번을 찍을까요..

- 내가 번호 하나로 찍지 말라고 했잖아요..

- 그래도 선생님.. 몇 번을 좋아하세요..

- 나?? 3번..??

- 그럼 3번으로 찍을까요..??

- 아니, 그럼,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면서 찍어요,,

- 제가 중학교 때 그렇게 해봤는데 다 틀리던데요..

- (모두 폭소)

- 의외로 쉬울 수 있으니까, 꼭 잘 풀어봐야 해요..

- 어떻게 해요...

- 생각보다 잘 나올 수 있다니까..??


우리는 양손을 주먹 쥐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의외로 쉬울지도 모르니 잘 풀어보라며 격려했건만, 그날 수학은 많은 아이들을 울게 만들었다. 4과목 시험 중 3과목이 천국을 선사해 주어서인지 유독 더 지옥을 느끼게 만들었던 수학으로 인해 아이들이 수학 선생님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일명 째려보았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지막 날 과목도 의외로 어렵지 않아서 아이들은 수학에 대한 아픈 기억은 저 멀리 날려버린 채, 나름 가벼운 마음으로 테마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A가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문제를 풀었을 때는 20점대였는데, 번호 하나로 찍었을 때는 30점대가 나왔었다고! 이러니 그냥 쭉 일렬로 체크 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도 문제를 조금이라도 풀어보자라는 생각으로 문제를 풀다가 막히게 되면 그냥 한 번호로 찍고 엎드려 잔다고 했다.


OMR 정답지에 감독 도장을 찍다 보면 번호 하나로 쭉 마킹 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하트 모양으로, 나름 무늬를 생각하여 마킹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고민을 한 흔적이 있어서 피식 웃으며 도장을 찍었었다. 귀여운 아이들이다.



오래 전 신임 담임교사인 B 선생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 선생님.. 어떻게 하면 학급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요..


경력교사라고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는데, 그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이렇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선생님..


나는 그 해에 학급 경영을 완전히 망쳤었다. 공부는 완전 잘하는 학급이었지만, 나는 이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생기면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틀어졌고 아이들도 힘들었으며 그래서 그 해를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신임이었던 B 선생님은 첫해를 멋지게 성공적으로 끝냈었다.


나는 그때까지 해왔던 내 방식대로 그대로 했을 뿐이었는데, 그해에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었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 선생님...그냥 선생님 방식대로 해 보세요..

전에는 통했던 방법이 어떤 경우에는 통하지 않더라고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인생이 성공하고 행복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면 나는 답답하다.


- 저분은 사회생활을 전혀 해 보지 않으셨군..


그렇게 우리가 읽은대로, 알고 있는 이론대로 인생이 그대로 쉽게 풀린다면,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성공하고 행복하겠지...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그러니! 그렇게 쉽게 설.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가져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마다 정답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마치 <에어컨 사용법 매뉴얼>처럼 <인생살이 매뉴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뉴얼에 적혀 있는대로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했더니, 꼬였던 상황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매 순간 수학공부를 하지만 정작 시험 시간에는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지 못하고 결국 번호 하나로 찍어서 작은 점수라도 받는 아이들을 보며, 정답을 모르지만 그래도 백지로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칭찬해 주고 싶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인생의 매뉴얼은 모르더라도, 그래서 그때 그때마다 임시적으로 대처하면서 겨우겨우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주저앉아 있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 살아가려는 모습 자체가 인생의 정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또 어떤 경우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존재하고 있는 이 자체가 인생의 정답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잘하고 있지 못하다고 무언가를 포기하지 말고, 그냥 이 모습 이대로 살아내자! 우리의 존재 자체가 정답일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정답을 체크했다고 점수로 결과가 나오는 지금의 시험 말고, 지금 무언가 하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가 인정받는, 그런 시험이 있으면, 아이들도 행복할텐데...


2022학년도 1학기 1차 지필고사가 끝나고 일주일 동안의 테마방학이 시작되었다. 일단 시험을 끝냈으니, 시험 생각은 하지 말기를 바라고 즐거운 쉼이 있는 일주일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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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만, 가사 내용도 마음에 든다.


- 광야(廣野, 曠野) :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


광야를 누가 좋아할까 싶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가 광야가 아닐까...


그런데 텅비고 아득히 넓은 들인 이 광야에서 삶을 배울 수 있다고 하니, 절대자는 우리의 수준을 너무너무 높게 생각하시는 듯.....


- https://youtu.be/NJgPPUbMi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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