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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러스 Nov 09. 2017

챕터 2. 나로부터 시작하는 심리분석 - 2편  

02. 모든 사람의 감정에는 패턴이 있다, 감정 패턴 파악하기





모든 감정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그 감정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들은 고유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으로부터 괴로움을 얻거나,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는 경험 등을 통해 감정의 힘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런 감정의 무게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둘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상태를 확인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감정에 휘둘리면서,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고, 자신의 감정적 폭발이나, 욕구만이 앞서게되는 상태. 자신의 감정적 토로만큼 중요한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공감과 유대감을 느끼기 힘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그런 '폭발'을 일종의 카타르시스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런 폭발은 좋은 현상이 아니며, 안정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권장할만한 일이 못 된다.



감정적 폭발의 좋은 예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는 과장된 카타르시스가 있다. 미디어속에서는 그런 폭발적인 감정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몇 년 동안이나 쌓여있던 아픔이나 괴로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억눌린 감정.  새로운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극단적인 변화의 과정은 실제로 '본인이나 주변 사람에게 엄청난 자극을 선사한다. 미디어 속에서의 감정적 폭발은 사람들의 억눌린 감정적 해소의 대체제 역할을 한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미디어 속에서나마 대리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적 폭발은 평소에 그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내적인 문제에 소홀했고, 문제 해결에 있어서 무능한지를 이야기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현실에서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면, 더욱이나 큰 문제가 된다.




"감정적인 폭발이라는 건, 그만큼 쌓여있는 게 풀어지는 거니까. 좋은 의미 아닌가요?"

"음... 순간적인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과연 한두번의 폭발로 끝날 일일까요?"





실제로 대부분의 감정적 폭발이나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분노나 슬픔, 고독감에 휘둘리고 마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적 폭주 상태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감정적 폭발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된다. 게다가 그런 상태가 반복된다는 점에 있어서, 인간관계에 있어 '이런 모습을 결코 보여줄 수 없다'며 자신을 숨기거나, 스스로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감정적 폭발을 겪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표현이나 타인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매우 극단적인 상태가 되기 쉽다. 타인의 한마디나 반응 하나에 더 쉽게 상처받고, 그런 자신을 받아주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좌절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의 반복적 감정적 폭발이나 무너짐을, 타인에서 숨기거나 억누르게 된다. 그리고 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자신의 감정적 문제를 혼자서 끌어안고, 일정 주기마다 폭발을 일으키는 - 기묘한 형태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일정한 가면을 쓰며 타인을 대한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런 가면을 유지할 수는 없다.





타인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공간 안에 돌아와 괴로움을 푼다. 사회적인 활동이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사회적 가면을 쓰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런 역할적 가면은 적재적소에서 사용되어야 하고,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요구되는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가면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면을 쓰는 행위는 언제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리는 연출적인 행동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반복적으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갈망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일수록 감정적인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만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기 자신의 힘겨움이나, 갈망, 욕구 등을 억누르고 타인을 대해야 하는 습관이나 패턴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가면을 벗으려고 노력해야 하나요?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면, 그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고. 자유롭기는 힘들잖아요."

"아주 좋은 지적이에요. 분명 어떤 영역에서는 가면을 벗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꼭 필요해요."

"예를 들면 어떤 건가요?"

"혼자 하는 운동이라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유로운 방식이 일단 알기 쉬운 예일 것 같네요."





타인과의 인간관계에서 모든 것을 채우려 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더욱더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을 좋게 연출하기 위해 '좋고, 멋진 사람'의 가면을 자주 연출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과 시도들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한 방법이고. 과정에 불과하다. 그 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적 갈망이나, 억눌린 것들을 참아가며 노력했던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폭발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정적 폭주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중적이고, 폭력적인. 혹은 좋지 않은 사람으로서 인식되게 만든다. 진퇴양난, 타인 속에서 자신을 채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실패하기도 쉽고 리스크가 큰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혼자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실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 성공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 유지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 자신의 바람을 타인에게서 충분히 얻어내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위안처이자, 도피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바 있다.



우리의 좌절이나 고독감같은 감정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갈망과, 그것을 채우기 위한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며 그것에 반작용하는 자신의 내면 상태에 가깝다. 위의 이야기에서만 보더라도, 감정적인 폭발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을 채우는 일에 계속해서 실패하거나, 그것이 성공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력의 과정에서 좌절을 겪거나, 스스로 우울감에 빠지거나, 타인에게 분노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 결과치에 대해 감정이라는 형태로 반응을 하게되는 것이다. 우리는 굳이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실패와 고통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얻게된다. 그리고 이런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선입관과,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인간관계 자체를 피하거나,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채우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보다, 자신이 그런 시도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가 더 많이 들기 때문에. 기회비용. 즉, 타인에게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잃어버릴 수 있는 투자금액조차도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제가 원하는 것만을 채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도 가면을 쓰는 것일 테고요."

"네, 그렇죠. 그렇다 보니 그런 시도 자체가 괴로워지거나.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오게 되면 점차 그런 가면도 붕괴하게 돼요. 그러면서 가면을 쓰지 않은 민낯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들이 드러나게 되죠."

"어떤 부분에서는 그 역시도 좋은 현상 아닐까요? 가면을 너무 많이 눌러쓰면 안 좋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사실, 가면이 많아질수록 안 좋다 -라는 이야기는, 자기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무리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그런 가면을 벗는 행위가. 민낯을 드러내는 행위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죠."





사람들이 느끼는 고독이란 것은 이해받지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소속감이 없는 공허한 감정에 가깝다.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채워야하는 것들이 있다.
인간적인 유대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고독이나, 공허함이라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어있다. 물론, 혼자 있다는 것이 항상 고독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고, 스스로 즐겁게 해야 할 일들이나 인간관계가 있을 때. 우리는 물리적으로 혼자 있다 하더라도 고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타안에게 필요한 인간이 아니라고 느낄 때나, 사회적인 연결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충분한 유대감을 느끼지 못했을 때에는 고독감을 느끼기 쉽다. 그리고 이런 감정에 휘둘려 타인과 깊이 있는 연결을 갈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적은 사람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경우, 이런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고독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외향성을 매우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도 깊이있는 인간관계를 추구하게 되는건 마찬가지다.사람에게는  양으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속내를 드러내고 제대로 연결되었다 -라고 느끼게 할 만한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은. 내향성이나 외향성의 영역을 떠나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테마다. 자신이 인정받고,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넘어서, 인간관계 속에서 가지는 역할과 위치의 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간관계의 패턴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반복적인 패턴이나, 경향성이 나타난다.


1)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채우고 싶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2)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자신의 장점이나 대단한 점을 드러내며, 좋은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연출한다.

3)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좋은 모습을 연출하며 타인에게 개별적인 연결을 시도한다.

4) 사람들은 애초에 타인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고, 애초에 목적 자체가 자신을 채우는 것에 가깝다. 상대 역시도 자신을 채우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5) 연결 시도 과정에서, 타인이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거나, 대략적인 목적을 알더라도 타인을 채워낼 방법을 알지 못해서 좌절을 겪는다.

6)  서로의 갈망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서로의 연결점이나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이로 인해 상대나 나나, 관계에 협조적인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7)  상대를 통해 자신을 채우려는 시도가 좌절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채우지 못하는 상대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에게 실망한다.

8)  결국, 인간관계를 통해 채우려 했던 자신의 내면의 갈망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에너지는 계속해서 소모된다.

9)  인간관계에서 더 나은 방식이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 자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0)  점차 인간관계에 대해서 희망을 갖지 않게 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11)  타인에게서 문제 해결을 하게 될 거라 생각지 않다 보니. 대체품을 찾게 된다. 그리고 중독적 성향을 보인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이런 패턴을 인식하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것들을 가장 힘겨워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알고 있는 최선을 다할 뿐. 그것을 다시 한번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며, 문제를 분석하는 3 인칭적 분석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심리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자체에 대한 표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태도나, 반복적인 문제발생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상황 자체를 개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런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행동에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본질적 고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관찰과 분석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사회적 경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타인의 감정이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 타인에게 어떤 요구를 하게 되고, 또 그것에 대하는 대처 방식이나.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의문을 던져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 한번 생각해봅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토로 하나요? 스스로가 비어있고, 괴로울 때.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요청을 하게 되죠?"

"그야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감을 해주기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요? 저만해도 그렇거든요.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안 좋았다 같은 이야기에. 누군가가 곰곰이 듣고 진심으로 화답해주길 바라요."

"네. 공감이라는 건 중요하죠. 다만 그런 공감이라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그런 공감이 주어졌을 때. 그들에게 있어서 정말 그 공감이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어, 일반적으론 그렇게 깊게까지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아요. 보통 내가 그 사람의 문제나, 감정을 해결해줄 수 없으니까. 나 역시도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니까. 공감을 해주는 선에서 대부분 끝이 나게 되지 않을까요...?"





힘겨워하거나, 괴로워하는 누가의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괴로움이나 감정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섣불리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런 암묵적인 법칙 같은 것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공감의 수준은 결코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실제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야기를 듣거나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에도, 그런 접근이 굉장히 '가볍다'거나, '겉치레에 가깝다'라고 느끼게 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을 이래하려하기보다 자신이 이해받는것을 좋아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저 듣는 사람의 역할을 할 뿐이고, 일시적으로 위로와 이해, 공감의 뉘앙스를 취할 뿐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무례한' 사람이 되거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의 이미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데도 사회적인 구조나, 공감대에 의해서 암묵적인 룰에 따르며 공감하는 척을 한다. 필자는 그것이 어찌 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진짜 이해를 방해하는 하나의 장애물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타인을 위하는 척 - 가면을 쓴다. 그렇기에 상대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에티켓의 수준에 가까운, 자발적이지 않은 형식으로 - 위로하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 스스로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는 역할이나 행동이 아니다 보니, 열심히 해야할 이유가 없다. 에너지를 얻게 되기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 주어지면 겉치레는 해야 한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나 이해관계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서 채우는 것에 있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지 못한다. 그러니 항상 찾게 되는 것이 '더 편하고, 내게 유리한 관계' 뿐이다. 우울감이나 고독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혹은 애써 피하게 되는 것도 이런 기반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찾으려 하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여유 있는 사람만을 찾아 나선다. 결국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알지 못하거나, 알려하지 않고 -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 이상한 가면무도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을 들여다볼 줄 알고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은, 타인에게 제대로 필요로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기도하다






한국 사회는 무턱대고 공감을 퍼주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사회적으로나 도의적인 부분에서 '공감'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건네고. 상대에 대해서는 깊이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분석하지 않으면서 - 상대에게 공감을 받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상대의 문제는 더더욱이나 알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도 착한 사람으로서의 모습. 여유 있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습관적 태도'가 이번 이야기의 핵심.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인간관계의 패턴이고,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 끝에서 반복되는 것은 결국 '고독'의 문제이고. 인간관계의 연결의 강도에 대한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타인이나 상황 혹은 기회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우리는 애인과 가족, 친구라는 틀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의 문제나 내적인 고민들에 대해서는 몰지각하거나, 거의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 타인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파고들려 하는 자체가 피곤한 일이고,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타인에게 있어서 진지한 모습이나. 문제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경험해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적은 상태'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관계의 밀도나, 문제 해결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취약하다. 당연하게도 배우자나 연인. 직장 동료나 가족의 관계에서 주도적이기보다 성황에 대해 수동적인 경우가 많고, 반복적으로 갈등을 빚지만 문제를 해결하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모르는데다, 그런 경험도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겪고 있는 문제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더 급하다 보니, 타인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건 당연히 어렵지 않을까요?"
"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문제를 갖고 있죠. 하지만 저는 역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해서 알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타인을 통해서 그런 문제 해결을 하게 될 수도 있는건가요?”
"네, 맞아요. 정확히는 타인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 사람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돼요. 타인을 신경 쓰고 분석하는 세심한 생각이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만들고. 타인과의 연결을 단단하게 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거든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은 사회와의 연결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받는다고. 개인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개인은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고독해지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반복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파고들 뿐. 또 다른 시선이나, 대단한 문제 해결의 관점을 갖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시각을 기반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비슷한 관점을 유지한다. 그렇다보니 타인에게 있어서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사고, 타인에게 도움이 됨으로써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살고 있다. 어찌 보면 필자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된 이유도 이런 기반을 갖고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패턴을 파악하는 일 역시도 이러한 '문제 해결의 경험'을 타인을 통해 해나가는 것이. 사회적 연결과 인간관계의 강화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위한 패턴 분석과 파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타인의 문제 해결은 사실 자신의 문제 해결 너머의 또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반복적으로 문제를 겪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스스로의 상태나 타인의 상태를 함께 관찰하고, 패턴을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권장하는 것은. 그런 관찰을 통해서 타인의 갈망과, 내 갈망의 차이.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내가 '해낼 수 있을 역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권해보고 싶다. 자기 관찰 일기를 쓰면서, 자신이 문제를 겪게 되었던 이들과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그것을 다시 분석해보고, 파고들어가 보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것들이 무엇이고,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겪는 갈등에 '반복되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파악하고, 분석해보는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현실의 문제해결의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간단한 일기나, 블로그의 푸념이라도 좋다. 가능하면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보기를 권한다. 앞으로 필자가 해나갈 이야기는 이런 관찰과 분석에 대기반하여 이야기하게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자기의 상황에 적용해보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 해결이라는건 겉보기엔 아주 어려워보이지만, 실은 반복적인 관찰과, 이해, 분석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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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심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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