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주는 선물

과학과 예술 사이의 끈적함

by 삶은 예술 박기열

상상이 주는 선물



2000년대 중반, 뜬금없이 SF(공상과학)소설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미국 과학계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19세기에 출간된 소설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공상과학 소설은 말 그대로 상상 속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당장은 실현 불가능한 미래의 이야기들을 창작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19세기 당시 SF소설의 위치는 문학은커녕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그럴듯하게 꾸며내 산업혁명기를 맞이한 대중들의 반복되고 따분한 일상에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한 정도,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당시 포르노 소설과 동급 취급을 받던 장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NASA ‘Risk and Exploration’ 심포지엄 실록(2004) 표지(왼쪽)와 스미 소니언 도서관 온라인 전시(2005) ‘A Jules Verne Centennial’ 포스터(오른쪽).jpg NASA ‘Risk and Exploration’ 심포지엄 실록(2004) 표지(왼쪽)와 스미 소니언 도서관 온라인 전시(2005) ‘A Jules Verne Centennial’


그 많은 장르 중에 과학을 소재로 삼았던 이유는 과학 분야가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혁신을 거듭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덕에 그 어떤 분야보다 급진적 성장을 이루어 내고 있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새롭게 정립되고 증명되는 기술부터, 그 기술을 기반으로 먼 미래에 대한 가설까지 예측해 볼 수 있을 만큼 소재가 다양했고 그만큼 문학적 상상을 가능케 할만한 소스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그 소설들은 실현 가능성이 영(0)에 가까운 말 그대로 공허한 상상일 뿐이라는 이유로 당시엔 주류문학에 안착하지 못하고 늘 삼류 취급을 받았었다. 미국 과학계는 140년 전에 출간된 이런 삼류 소설들을 왜 재평가하려고 했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선 한 사람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는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이다.

쥘 베른과 1863년에 출간된 기구타고 5주간 초판본.jpg 쥘 베른과 1863년에 출간된 ‘기구 타고 5주간’ 초판본

우리에게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로 더 알려진 《기구(氣球)를 타고 5주간, Cinq Semaines en ballon.1863》을 쓴 작가이자 <해저 2만리>, <15 소년 표류기> 등 세계여행과 해저 탐험, 북극부터 달나라까지 모든 공간을 넘나들며 소설의 소재로 삼았던 눈부신 상상력의 소유자였고 평생 64편이라는 많은 수의 작품을 남겼을 만큼 자신의 상상을 글로 옮기는데 평생을 소비했던 성실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쥘 베른은 그의 소설을 통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과학을 상상해 이야기로 쏟아냈는데 당시에는 꿈도 못 꿀 원자력 잠수함을 이용한 해저 여행이라던가 로켓 형태의 우주선을 타고 가는 달나라 여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상상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 마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예리한 관찰과 통찰에 근거해 사실성을 반영하는 구조의 예측이었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이라는 금속성 물질의 존재가 확인된 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에 아직 어떤 용도로도 활용하지 못하던 재료를 가벼운 금속이라는 밝혀진 사실 하나만으로 소설 속 잠수함을 만드는 재료로 등장시키는 식이다.

해저2만리 초판에 삽입된 에두아르 리우(Édouard Riou)와 알퐁스 드 누빌(Alphonse de Neuville)의 삽화.jpg 해저 2만리 초판에 삽입된 에두아르 리우(Édouard Riou)와 알퐁스 드 누빌(Alphonse de Neuville)의 삽화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모험소설을 썼던 1800년대 당시는 과학이 철학에서 막 분리가 되면서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독자적인 용어를 갖게 된 시대였을 뿐인데 소설 속에 등장한 그의 공상들이 다음 세기에 대부분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연극, 영화, 동화,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수없이 각색되어 전 세계의 과학, 문화, 경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의 소설을 보고 과학자를 꿈꾸었던 한 소년은 세계 최초로 로켓을 개발했으며 1954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은 그의 소설 <해저 2만 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이름 그대로 '노틸러스'라고 지어졌다.

필자가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경주에서 APEC 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었는데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잠수함의 핵 추진 연료 사용을 비로소 승인받았다는 기사를 보며 100년 전 쥘 베른의 상상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체감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USS 노틸러스호(USS Nautilus SSN-571), 1954.jpg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USS 노틸러스호(USS Nautilus SSN-571), 1954

한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전 세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쥘 베른은 더 이상 허무맹랑한 삼류 소설가가 아니라 공상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또 미래 과학을 정확히 예측한 예언자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상력에 기반을 둔 공상과학소설이 다시 과학 발전에 자극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나게 된다.

과학지식에 기반을 두고 기술변화를 추측하고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미래 사회를 그린 쥘 베른의 소설은 상상에 근거하지만 틀에 박힌 수법에서 벗어난 예리한 관찰과 다양한 관점으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기에 혁신적인 비전 수립의 상징적 사례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또한 쥘 베른이 비록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과학자들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 사회를 그려낼 수 있었던 비결 또한 앞서 언급한 이유와 같다.


쥘베른과 노틸러스, 연필 드로잉 & AI art works by 박기열.png 쥘 베른과 노틸러스, 연필 드로잉 & AI art works by 박기열

그렇다면 쥘 베른처럼 미래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심한 관찰력과 더불어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상상력의 대가인 쥘 베른도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당시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마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고 듣고 추측해 낸 세상은 남들과 전혀 달랐다.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에서 그는 자기만의 관찰력과 지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창출해 냈고 그렇게 그려낸 미래는 남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혁신적인 지점에 닿아 있었기에, 그의 상상을 100년이 지난 후에 단순한 공상과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정확한 예측으로 재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니 우리도 지금 당장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어떤 아이디어를 배제하거나 현실을 벗어난 망상이라며 쉽게 비난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마치며,

그리스 시대에 철학자들이 높은 지위와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던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아테네를 비롯한 폴리스 사회에서 점점 약화되는 왕정과 시민 공동체 중심의 민주정치가 대립하면서 무엇이 옳고 정의로운지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신화적 세계관에서 합리적 세계관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던 대중에게 형이상학적인 화두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당시의 철학자였다.

인간이 만든 것 중 예측이 불가능한 최초의 기술이 되어버린 AI라는 문명을 맞이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놀라운 기술에 대한 반감이나 불안이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던 인간의 이데아를 규정하고 구체화했던 철학자들의 앎에 대한 탐구, 혹은 현실을 관찰하여 미래를 예측했던 쥘 베른의 문학적 상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빠르고 똑똑한 인공의 지능으로부터 엄청난 정보와 편의성을 제공받을 수는 있겠지만 인간이 가진 오랜 내면의 문제까지 기계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럴 땐 오히려 정답이 없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해주는 예술적 상상력과 그 속에서 솟아오르는 영감이 인간다운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1975년 마이크로 소프트를 설립하면서 ‘모든 가정의 모든 책상에 PC 한 대를.’이라는 비전을 세웠을 때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 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덧 개인용 컴퓨터 환경을 넘고 모바일 세상을 지나 현재 AI라는 낯선 문명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 이 움직임이 우리를 물속에 가라앉힐 허우적거림이 되어선 안 된다.


100년 전 쥘 베른이 했던 상상이 커다란 선물이 되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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