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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May 28. 2019

영웅의 탄생

영웅의 탄생     


살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란 걸 알게 된 건 창피한 일이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강한 책임감과 자부심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때에 따라 필요한 덕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머물렀던 단체나 조직을 떠나게 될 경우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하게 될 생각을 유추해보자면 ‘나 없이 잘 되나 두고 보자’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나 없이도 괜찮을까’ 라며 남겨진 공간과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 정도로 나뉠 것이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나 하나 사라져도 세상은 어제와 똑같이 잔잔하게 잘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인 한 명에 의지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경영 전략 중 하나인데 일 잘하던 핵심 멤버 하나 빠진다고 위기가 오는 회사거나 주방장 하나 관둔다고 망할 중국집이라면 언제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빈약하고 위태로운 시스템의 사업장인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꼭 ‘나’여야만 하는 지점이 명확한 분야이다.

나는 늘 그런 곳에서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 경계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다. 

누군가의 요구나 선택을 받기 전까지는 당장 쓸모도 없고 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돈으로 바꾸기도 힘든 현실을 참고 견디며 창작활동을 묵묵히 이어나간다는 일이 과연 ‘자뻑’ (자신에 대한 확신과 넘치는 자신감) 없이 가능한 일일까? 난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세상 역시 예술가의 자신감을 그릇된 인성이나 허세로 치부하지 않고 작품 일부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예술의 역할은 작가가 구현한 작품을 보고 누군가가 그 ‘어떤 것’에 영감을 얻어 자신의 삶에 적용하거나 감동하면서 정서까지 함께 정화시키는 것이니 보편적, 혹은 산술적으로 측량하거나 통계 내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 이유로 비싼 물건이 좋은 물건이라는 사회적 통념과는 다르게 비싼 작품이나 잘 팔리는 작품이더라도 그것이 상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을지언정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좋은 작품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잘 팔리는 작가도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순수성과 대중의 요구에 맞춰야 하는 상업성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예술가의 습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채워진다고 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가난한 예술가일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계속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계에서 작가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조직의 구성원이 퇴사한 후 그 일을 대체할 누군가를 다시 배치하는 것과는 다르게 가치가 높고 낮음이나 역할의 유무에 상관없이 특별하고 유일했던 어떤 하나가 그냥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풍요롭진 않아도 예술 속에 살며 고유의 가치를 찾아 헤매던 내가 대상을 넓혀 기업 구성원을 상대로 강의를 시작한 이후 다행스럽게도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줄곧 괜찮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상한 것은 예술작품을 만들 때와는 다르게 아무리 결과들이 좋아도 도통 ‘자뻑’의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작품 하나만 팔려도 기분이 으쓱해지던 나였는데 대체 칭찬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우선, 여기는 내가 살던 동네와 냄새부터 좀 다르다. 

예술계에서 작가는 특별한 사람, 관객은 그런 특별함을 찾고 아끼는 애호가 정도로 구별되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 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숨기고 있는 절대 고수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특별한 슈퍼파워를 가진 것 같지도 않고 빨간 팬티나 망토처럼 화려한 치장도 하지 않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떤 무기가 주어져도 악당을 물리치고야 마는 특별한 사람들.

이 마을 사람들이 더 특별한 것은 각자 가진 힘과 무기가 다를 뿐이지 모두가 만화보다 스릴 있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 때에는 재료 선택부터 내가 어떻게 불릴지 스스로 네이밍까지 하며 주인공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이 마을에서의 나는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한, 그래서 아직 이름조차 없는 영웅 이전의 사람들에게 알맞은 무기를 찾아주고 날개를 달아주는 조력자가 된 느낌. 

원래 배트맨이었던 내가 집사인 알프레드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쉬울까? 

그 전까지의 내 특별함은 대중들의 마음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사로잡았던 것인데 이 마을에 오고 나서는 그런 화려했던 능력들은 둔화되고 이 마을의 숨은 영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제대로 힘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에 알아보는 새로운 인지능력 같은 게 생겼다. 

그렇게 이 마을에선 반대로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도와주며 그들이 가진 힘을 온전히 세상 밖으로 꺼내 주는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영웅은 스스로가 영웅인지 모른다. 또한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견하더라도 처음에는 슈퍼히어로가 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갈등한다. 그러나 요즘 시대가 원하는 영웅은 자신이 가진 슈퍼파워로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적을 만나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힘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염력보다 강력한 기운으로 사람들을 몰려들게 해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니 괜한 걱정으로 미리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끝내 악당이 되고 마는 스토리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나 스스로 영웅이 되려고 하기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영웅이라 상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영웅을 찾아내는 첫 번째 단계이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영웅은 타인이 권한을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줄 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영웅이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귀하게 여기면서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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