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the 陶語

흙의 언어로 써내려가는 인간의 욕망

by 삶은 예술 박기열

동물의 탈을 쓴 우리.


2002년, 인간의 욕망을 동물로 형상화 한 도예작품으로 석사청구전을 했다.

내 작품은 주로 말(horse)을 형상화 한다. 하지만 이때는 본격적인 말의 형태가 오기 전이라 개, 코끼리,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오래 전에 만든 작품이라 직접적이고 어설프고 발칙하지만 각각의 작품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설명해볼까 한다.

IMG_7831.JPG 유혹자(Seducer), 조합토, 테라시즐레타, mixed media, 2002

이 작품은 이성에게 호감을 갖는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과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상처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의 사랑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로가 사랑하면서 발생되는 성적 욕망과 갈등도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그 역시 언제나 성공적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상대를 사랑하고 그러면서 일탈된 성욕을 꿈꾸는데 익숙해져 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더욱 억압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의 두 마리 말은 사랑을 구원하는 상처 입은 여성과 그것을 외면하는 남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성적욕망에 대한 상상과 집착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이유는 인간의 욕망은 성별의 차이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분위기와 권력구조가 여성이 성적 욕망을 혐오하도록 몰고 갔을 뿐이라는 내용을 언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동안의 권력구조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적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고 성의 구분 이전에 인간 모두의 동등한 문제로 성적욕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연극배우가 무대소품으로 쓰고 싶다고 가져가선 돌아오지 않은 지 20년..

IMG_7820.JPG Libido'clock


리비도란 ‘기아상태’와 유사한 것으로 기아가 영양의 본능이라면 리비도는 성적본능을 나타내는 힘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고양이로 표현된 여성과 말로 그려진 남성간의 좁은 거리에서 발생하게 되는 성적욕망의 분출 단계를 리비도로 표현하여 무의식 속에 스스로의 성 본능이 꿈틀대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말의 표면에 수없이 장식된 글씨는 복잡한 갈등의 심리적 투영이고 그 위에 다시 덮여진 색상들은 그만큼 성적욕망이 억압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형태는 고양이지만 머리와 다리부분은 인간의 손과 다리로 만들어 에로티즘에 입각한 주제 전달을 더욱 뚜렷하게 하고자 했고, 그로 인하여 보는 이의 마음 속에 내제해 있는 Libido'clock의 자명종을 울려보고자 했다.

IMG_7828.JPG Rom & Jul

종마와 얼룩말이 엉켜있는 형태는 타종 교배에 관한 에로티시즘적 고찰을 통해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욕망이 급기야 생명복제라는 비윤리적 도전을 행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질병의 극복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미명 아래 다종 교배를 위시한 유전공학에 몰두하고 있는 현대과학의 문제점을 표현하고자 했다. 가문이 다르고 근본이 달라 이루어질 수 없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제 더 이상 소설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복제되고 그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 무한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 먼 얘기가 아닌 지금,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그로 인한 다툼들이 결국은 길지 않은 자신의 삶 동안 최대한의 만족 속에서 살고자했던 인간의 작은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영원불멸할 수 있는 삶 속에서 인간은 허탈해지고 무방비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IMG_7818.JPG The body
IMG_7819.JPG The body

프로이드는 인간의 발이 남근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이 작품은 주먹형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고양이와 발의 형태를 코로 표현한 코끼리를 통해 인간의 가장 에로틱한 신체 일부를 상징하고 있다.

애무를 전담하는 인간의 손이 주먹 쥔 형태로 고양이의 얼굴을 대신하였을 때 고양이의 얼굴형태와 유사한 것을 발견하였고 손이 제공하는 에로티시즘적 심상과 발과 다리가 표현해내는 육감적인 자태만으로도 성적자극을 충분히 담당해낸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월드컵 기간 이후로 축구선수들의 움직이는 발과 다리 근육의 떨림은 새로운 성애적 모티브가 되고 있다. 미의 대상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설정하고 시각과 청각만을 사용한다. 그러나 축구경기에서는 참여적 미학을 경험하게 된다. 포르노를 볼 때 흥분하듯 축구경기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발길질을 하고 몸을 이리저리 뒹굴면서 근육의 흥분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발의 에로티시즘을 일찌감치 터득한 사람들은 제화업자들이었다. 적절한 노출이 목적인 여성의 구두와 어지간해서는 맨살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의 구두는 보는 것만으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여성의 발은 하이힐 위에서 관능적으로 빛나고 남자의 발은 힘 있고 잘 기능함을 증명할 때 가장 주목받는다.

IMG_7822.JPG Did I do that?

인간의 욕망엔 늘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권력, 그리고 스스로의 억압 때문에라도 아직 성은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심리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것이 음성적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그릇된 정보로 키워나간 성적 상상력은 급기야 인간의 성적욕망을 구속시키고 만다. 이러한 상황은 원치 않는 임신과 반복되는 낙태 등 잔인하고 불법적인 의료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과 인격을, 더 나아가서는 인생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혼모의 증가와 낙태는 결혼이란 제도에 반하는 습관적 무책임의 악순환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성적욕망의 실현만큼이나 억제가 아닌 책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image02.png Tentigo_ 조합토, 테라시즐레타, 저화도 유약, 2002

라틴어의 Tentigo는 긴장, 욕망, 발정, 발기 등의 뜻이 있다.

성충동 가운데서 관찰충동과 노출욕구의 목표는 에로스를 강조하는 육체부분, 특히 성기를 관찰하거나 노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충동은 오늘날 거의 통상적으로 주어져있는 교육조건 아래에서는 아주 순식간에 억압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만다.

어린이는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성기도 관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관찰욕구와 관찰금지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 어린이는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이러한 억압의 범위와 정도에 따라서 두려움 및 수치심 혹은 음탕한 마음이 강하게 발전한다.

두려운 마음과 수치심, 음탕한 마음은 통상 병존하며 이를 통해 예전의 갈등 대신에 어떤 새로운 갈등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이 계속 발전하게 되어 노출 욕구를 억압함으로서 애정생활을 해치고 신경증 증세를 나타내거나, 도착증 내지는 노출증이 나타나는 폐해를 부르기도 한다. 이유가 불분명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억압은 인간의 기쁨을 축소시키고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많은 결과물을 양산한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억압된 욕구와 해소된 욕구 사이의 미묘한 심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IMG_7821.JPG 무기력(Enervation)


욕망이 억제되면서부터 엄습해오는 인간의 무기력은 삶의 기쁨을 강탈당한 것이니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개들의 형태와 표정들은 무기력에 동반되는 나른함과 무의지의 표현이다.

퇴행이 심각하거나 정상적인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인간 심리현상은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는 발달시기에 머무는 ‘고착’현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크게 절망하여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새롭게 계획하고 도전하려는 의지도 함께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모품적인 용도 그 이상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어 삶의 의미를 재확인해야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animal1347321.jpg My side

종족이 존재하는 한 서로의 편을 나누는 행태는 소멸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편과 상대편을 나누고 견제하며 염탐한다. 이것 역시 스스로를 억압하는 인간의 무기력한 심성 중 하나일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 사이의 공생관계가 진정 어느 누구에게도 넘침과 모자람 없는 평등한 관계일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한 이 작품의 내용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처를 주는, 혹은 상처를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왜곡된 사랑에 중점을 두고 제작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말이 여자로, 새가 남자의 성기로 상징화 되어 서로의 고통에 인내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진정한 억압의 시작임을 알리고 있다.


IMG_7827.JPG Tanatos

인간의 거친 자아 속에는 삶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인 ‘Libido’와 죽음에 대한 욕망 ‘Tanatos’가 존재한다.

그 본능은 죽음과 생명의 두 길을 동시에 드러낸다.

우리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거친 자기표현을 이기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기주의이다. 인간행위의 모든 근원이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명명하는 것은 단지 그 욕망을 좀 더 세련되게 그리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전자들은 생존에서 살아남으려고 한다. 그리고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생명력이 강한 유전자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에 가장 적합한 유전자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살아남기 위해 죽는다. 살아남기 위하여 삶과 죽음이 동시에 진행된다. 우리의 몸들은 삶과 똑같이 죽음을 사랑한다. Sex가 분리를 의미하는 Seco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포 하나가 분리를 통하여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겪으며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죽음을 전제하고 있듯이 섹슈얼리티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으려는 노력일지 모른다.

image01.png

인간의 내적욕망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동물이라는 친근하고 익숙한 당의(糖衣)를 입혔지만 아직도 기발한 발상과 다양한 방식에 대한 시도에서는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지금의 자책이 다음 작품의 방향에 신선하고 진지한 접근을 허용했으면 한다. (2002년 논문 발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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