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박기열 첫번째 개인전 'ERO사항' 관찰기
H’ero 히어로? 그의 에로?
박기열의 작품은 재밌다. 확~ 작품 앞으로 당겨다 놓는 무언가가 있다. 야해서? 꽤나 육감적인 ‘말’의 모습 때문에? 그가 다루는 ‘ero’는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욕망 금기시된 어떤 것에 대해 사람들이 솔직해지기 바라는 소박하고도 친절한 마음이다. 그는 ‘야한 사람’이 아니다. 가볍게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그런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박기열의 STEP
어릴 적부터 말을 유독 좋아했다. 말에게서 풍기는 묘하게 섹슈얼한 느낌을 꼬마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그저 말의 형태와 힘차게 내달리는 기상 속에 감춰진 겁이 많고 소심한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그 자신과도 무척이나 닮은 말.
그랬던 박기열은 그 후로 ‘말’을 잠시 잊어버린다. 끊는 열정으로 이것 저것 무척이나 다양한 관심의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밴드도 했다. 학부 시절 그의 작업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실험적이고 이채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는 흙으로 작업한 조형물들을 사진으로 찍어 베네통 광고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유리관을 사서 학교 보건소장님께 들고가 주기적으로 반년간 피를 뽑아 모은 것을 조형물과 사진을 접목해 함께 설치했다. 대학원에 와서는 영웅 시리즈를 작업하게 된다. 베트맨의 이중성과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맨’들의 에로틱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망칙한 표정, 자세들을 담아 티포트를 만든다. 그러던 그는 사진을 놓고 작품을 설치하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지겨워졌고, 곧 말에 대한 애정을 되살린다. 도예를 전공하면서 충실히 과정을 지켜야만 이루어지는 작업들이 다소 지겨워졌던 모양인지 손재주가 뛰어난 그는, 조물 조물 아주 즐겁게, 말들을 뚝딱 만들어 낸다. 말을 만들고 사진과 함께 그 안에 인간의 애로사항을 담아 보여주는 것이 즐거운 박기열은, 그래도 도자기가 제일 좋다고 ‘고백’한다.
‘도자기가 제일 좋다.’
잠시 그와 현재의 공예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공예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현대 미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공예는 지켜나가야 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는 작업들입니다. 그러나 보니 어딘가 점잖고 대안공간으로 발걸음 하는 사람들도 공예인은 거의 없지요… 쑥스러움 타는 작가들이 많아요.” 도예 작업의 경우 그도 그럴 것이 유약이 발라지는 차이에 따라 색감과 느낌이 절대적으로 다르다. 요변이 생기기 때문에 현대미술 작가들처럼 본인의 강한 의지로 작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것이 작업에 걸림돌이 된다고도 생각했지만 지금 그는 이러한 공예적 특성이 강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박기열은 ‘그냥 만들었다’고 한다. 순간 떠오른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말하자면 필(Feel)받았을 때 얼른 만들어두는 것이다. 느낌대로 순식간에 만들어내던 ‘말’,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조잡한 만짐’으로 시작한 그 작업을 이제는 마무리에도 좀 신경을 쓰고 정교하게 정리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가마 앞에 앉아 인내하고 재료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받아들여진다고. 또, 싫지 않다는 박기열. 전시장에 있는 말의 표정이 아주 재밌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런 표정을 내기 위한 특별한 모티브는 없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그 표정을 짓고 있더라구요.” 그는 작품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린다.
근데 왜 에로?
박기열은 섹슈얼리즘, 에로티시즘 이런 류의 경향에 대해 지지할 것 까지야 없지만 어느 정도 동의는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성에 대해 개방적이거나 쉬운 것은 아니다. 영감을 얻는 쪽도 경험이 아닌 주로 패션사진이다. (예전에 ‘프랑스 포토’라는 잡지에서 에로틱하면서도 ‘야한’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감춰진 에너지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비약하거나 질책함 없이 금기시된 욕망에 대해 솔직해지기 위해 작업한다고 한다.
이번 h’Ero 박기열전에서는 작품 하나하나가 또렷이 부각되기 보다는 작품이 호흡하는 공간 자체를 보여주고자 신경 썼다고 한다. 어두운 지하 클럽이라는 눅눅한 공간(오로지 라이브 음악만을 감상하는 곳)을 굳이 선택하여 그 공간 속에 그가 사랑해마지 않는 말들을 세우고 앉히고 눕혀 함께 음악 듣고 사람구경하고 전시장(클럽)을 즐길 수 있게끔 배려해주었다. 말들에 대한 사랑이 정말 지극하지 않은가.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진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도자기와 사진을 함께 보여주는 작업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는 이번전시의 작업들을 통해 다음으로 진보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고 한다. 퍼포먼스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아 질문을 던져보았으나 쇼적인 것에는 관심 없다고 바로 대꾸한다. 유명세에는 별 관심 없다는 그. 그냥 관심 없다 말했으면 내숭인가 했을 텐데 차근차근 풀어내는 그의 말 속에는 “미술계, 공예계… 이 바닥에서 이슈가 되어봤자 그 후에는 뭔가가 없습니다. 제약 없이 계속 달라지고 싶어요.” 뭐 하나로 유명해지고 퍼포먼스 같은 걸로 각인 되어버리면 계속 그걸 기대할지 모른다고, 요구하는 기준들을 맞춰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그의 뼈대 있는 이야기다. 작업을 일흔 살까지 한다고 했을 때 그 자신에게 계속 달릴 수 있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는 반듯하면서 살짝이 겸손한 그의 생각들과 전시장의 도발적이며 묘한 작품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를 무척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게 한다.
글: 최혜정 기자 (월간크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