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1차전. 연장 10회 말 양키스의 여섯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네스터 코르테스가 던진 공은 단 두 개였습니다.
쇼헤이 오타니를 상대로 던진 첫 번째 공의 결과는 좌익수쪽 파울 플라이. 그리고 무키 베츠를 고의사구로 걸러 만들어진 2사 만루에서 코르테스는 프레디 프리먼을 상대합니다.
프리먼에게 던진 이날 경기 코르테스의 두 번째 공 92.4마일 패스트볼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바로 그 유명한 역대 월드시리즈 최초의 끝내기 만루홈런이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극적인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다저스를 승리로 이끈 프리먼에게 향했습니다. 그때 코르테스는 분루를 삼키며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와 양키스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단 2구만에 허무하게 끝나버린 한 판이었습니다. 코르테스의 입장에서 약간은 억울할 만도 합니다. 그날 경기 등판이 정규시즌 막판 당했던 왼쪽 팔꿈치 부상 이후 약 한 달 만의 등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코르테스의 2024 포스트시즌 첫 등판 경기가 월드시리즈 1차전이 된 것이었습니다.
코르테스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등판이기는 하나 분명 무리수가 따른 등판이기도 했습니다. 한 달여간 부상으로 실전 경기에서 투구하지 못 한 투수를 연장 10회 말 한 점 차 1사 1,2루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올렸으니까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된 양키스 감독 애런 분의 선택에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1.2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치기도 했지만 1차전 패배로 넘어간 기세를 반전시킬 더 이상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픈 월드시리즈의 기억을 뒤로하고 코르테스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 LA 다저스를 상대했습니다. 이번에는 LA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라이벌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유니폼을 입고 말이죠.
사실 이날 경기 전까지 코르테스의 올 시즌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난 시즌 후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 되어 새 시즌을 맞이했지만 단 두 경기 등판에 그쳤습니다.
이번에도 코르테스를 괴롭힌 건 팔꿈치 부상이었습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올 시즌에만 벌써 두 번째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겁니다.
직전 등판이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1회에만 홈런 3방으로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습니다. 이날 경기 전까지의 시즌 성적은 1승 2패, 평균자책점 5.87.
그랬던 코르테스가 LA 다저스를 상대로 시즌 최고의 투구를 펼칠지 누가 알았을까요?
코르테스는 6회 초 1사 이후 미겔 로하스에게 안타를 허용할 때까지 16명의 타자를 상대로 퍼펙트 행진을 펼치며 다저스 타선을 꽁꽁 묶었습니다. 6회까지 볼넷 없이 안타 단 한 개만 허용하는 6이닝 무실점 투구였습니다.
월드시리즈 이후 다시 만난 프레디 프리먼과의 두 번의 승부에서도 완승을 거뒀습니다. 2회 초 첫 승부에서는 중견수 뜬공, 그리고 5회 초 두 번째 승부에서는 우익수 직선타로 프리먼을 돌려세웠습니다.
이제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코르테스 입장에서는 최고의 복수전이 되었습니다. 코르테스의 호투에 힘입어 다저스를 5-1로 꺾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1경기 차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가 되었습니다.
지난 파드레스 홈 3연전을 싹쓸이하며 한숨 돌리는가 했던 다저스는 다시 지구 2위로 추락하며 올 시즌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지구 라이벌 다저스를 위기에 빠뜨리는 제대로 된 한 방을 코르테스가 날린 셈입니다.
월드시리즈의 기억은 코르테스에게 뼈아프게 사무쳤지만, 이번 호투로 지난 기억을 비로소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의 패자가 돌고 돌아 오늘의 승자가 되는 것. 그게 또 스포츠가 주는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