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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지 Dec 03. 2021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나는 싸우는 것도 불편했고, 투쟁도 최대한 피해왔다. 그저 착해서 그래온 게 아니라 싸우는 데 필요한 내면의 힘 (불편한 공기를 참는 것 등)과 자기 언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육아를 시작한 지 만 3년. 아이들이 아빠랑 잘 놀다가도 잠잘 때면 나를 찾는데 그럴 때 배우자는 슬쩍 안방을 벗어나 컴퓨터 방으로 가 본인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아이들이 평화롭게 잠들어주면 너무 감사한데 그럴 리가.. 두 아이가 동시에 울고불고 잠투정을 할 때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이 와중에 정리되지 않은 거실과 남은 집안일들이 눈에 밟혀 마음을 짓누른다.


남편이 아이를 돌볼 때 나는 집안일을 하는데, 내가 아이를 돌볼 땐 남편은 본인 할 일을 하는 것.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해 난 여전히 배우자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하니 당신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아이들 재울 때 당신이 할 일이 없더라도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투쟁이 불편한 이유 하나. 뭔가 이런 말을 하는 나 스스로가 이기적인 기분이 든다. 내가 힘들다고 해서 할 일이 딱히 없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느낌이랄까. 혼자 힘든게 억울한걸까. 나도 내 속을 잘 모르겠으나 부글부글 한 건 알겠다. 그래서 그냥 불쑥불쑥 화를 내게 된다. '아, 이것 좀 치우라고!' 그럼 또 치우는 남편이다.. 시키면 한다.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함..) 집안일이라는 게 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어지러움 속에 자기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애들 장난감 정리함에 넣어줘. 소파 위에 있는 물건들 치워줘.'


하지만 애들을 재우면서 매번 그런 지시?를 하기는 어렵다. 내 입은 7개월 된 둘째 귀에 대고 '쉬-'소리를 내야 하고 손은 첫째의 몸부림을 잠재워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알아서 정리 좀 해주지. 꼭 말을 해야 아나.. 하는 아쉬움이 들고 그 아쉬움은 아이들이 잠들지 않고 잠투정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노로 이어진다.


투쟁이 불편한 이유 둘. 그렇게 자라왔다. 집안일에 대한 책임을 여자가 오롯이 지는. 그런 가정과 사회에서 자라왔다. 무의식 속에 이게 맞고 이걸 깨뜨리는 건 뭔가 오바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말을 해야 상대도 안다는 거 너무 잘 알겠는데 어색한 옷을 입는 느낌이다. 나의 말이 의도와 달리 잘못 나와 상대를 더 자극하진 않을지, 마음의 상처가 되진 않을지, 질려 하진 않을지 등의 이상한 걱정도 있고.


엄마는 맞벌이로 일하면서도 집안일을 오롯이 혼자 하셨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본인이 하셨고 함께 하면 한 번에 끝날 일인데도 본인이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버리셨다. 그럴 때 나도 아빠도 각자 자기 할 일을 했다. 집안일이 가족의 일이 아니라 엄마의 일이 된 셈이었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라는 은유 작가의 말에 무릎을 쳤다. 이제 와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육아와 살림은 이벤트가 아니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엄마 생활은 끝나지 않았으니 난 종종 외로웠다. 양육의 기쁨과 양육의 고통은 희비의 쌍곡선처럼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불행했다. 


내려놓고 살라는 말, 포기하고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엄마도 그러한 것 같다. 그런데 난 그게 안된다. 가족이라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공동의 책임감을 갖고 함께 지내는 공간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집에 있을 때 나도 집안일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걸 내려놓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내 할 일을 할 때도 많다. 하지만 가족 누군가 (대부분 엄마) 자신의 일이 아닌 가족을 위한 집안일을 하고 있다면 다른 구성원 역시 함께 집안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물걸레질을 한다든지, 물건을 정리한다든지. 누군가 아이를 재우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널브러진 거실을 정리한다든지 말이다.


모성이라는 말 아래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무'지위에, 다들 그렇게 살아왔다는 유교적 관습 때문에 가족 구성원 간 배려심 없이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집안일하고 있으니까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집안일을 해라'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사는 공간에 대한 책임은 공동의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이 곧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은 아닐까. 


말로 하기 힘들었던 걸 글로 쓰니 한결 낫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남편에 대해 이것 저것 불평 불만을 적곤 했는데 다행히 이걸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재밌게 봐주는 남편이다. 이번 글도 언젠가는 보겠지..하며 이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지려 한다.




머뭇거리는 생이여, 늦었다고 생각할 때 재빨리 악행을 저질러라.



10년 뒤, 20년 뒤 폭발하지 말고 지금 저지르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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