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DS 공채의 기억
나는 컴퓨터공학 학사, 석사를 마치고 LG-EDS(현 LG-CNS)에 입사를 하면서 사회인으로서 개발자 경력을 시작했다. 입사 동기가 없었기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공채들과 동기처럼 지냈었는데, 그때 LG-EDS의 공채들은 전공 무관으로 채용을 했다.
신입 공채의 경우 입사 후 첫 1년은 12개월 중에 거의 10개월은 교육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석사여서 일부 교육만 받고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때는 좋았지만 시간이 흐리고 나니 그런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 참 아쉽게 느껴진다.
기억에 남는 교육들이 많다. 그룹사 공통 교육, 계열사 교육 등은 사회인으로서 기본을 배우기에 좋았다. 이때 받은 교육이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포털 등 다양한 회사에서 적응하고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외에 전공무관으로 채용을 했기 때문에 개발과 관련된 교육도 다양하게 있었다.
1. Unix, C, Oracle 등을 이용한 기본 프로그래밍 교육 1개월
2. 분석, 설계 등을 포함한 고급(?) 프로그래밍 교육 2개월
3. 각종 벤더에서 제공하는 교육
- 다양한 운영체제(IBM AIX, HP UX, Sun Solaris 등)
- 다양한 데이터베이스(Oracle, DB2,...)
- 미들웨어, 모델링 툴 등
이 중 1,2번 교육(과정 이름이 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의 경우는 내가 근무하던 부평의 연구 조직 건물에서 진행이 되었다. 전국에 발령을 받은 신입 직원들이 모여서 교육을 받았다. 이때 회사는 숙소를 제공했는데, 교육을 받고 출퇴근을 해도 됐지만, 과제가 많아서 거의 대부분의 숙소에서 출퇴근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교육 중에는 비전공자에게는 버거운 교육도 있어서, 탈락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unix, c programming 등을 배울 때 나는 대부분 아는 것이어서 쉬웠지만 비전공자 중에는 많이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었다.
왜 비전공자를 채용해서 이렇게 힘들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LG-EDS는 타 그룹사의 SI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공공 프로젝트, 그룹 사 내의 다양한 계열사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 개선, 유지보수하는 회사였다. 계열사는 건설, 금융, 통신, 정유, 화학, 반도체 등 다양했다. 전산, 컴공과 출신들이 개발은 초기에 조금 더 잘할 수 있지만 다양한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했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의 전공자들을 모집했었다. 각 분야를 전공한 다양성이 그 시대의 SI, SM을 주 업무로 다뤘던 LG-EDS에 필요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일하면 편하다. 하지만 성과라는 측면에서는 엄청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나와 다른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동료들과 일하면 동질성보다 다양함이 많아서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서부는 땅이 넓어서 집이 낮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웃의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기기 쉬워서 다양성이 발달했다.
이와 반대로 미동부는 땅이 비싸서 집들이 고층이 많았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이웃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다양성이 부족했다.
이 차이가 미서부의 스타트업이 발전한 이유 중 하나이다.
나와 유사한 사람들과 일하면 쉽게 의견이 일치되고 행동에서도 차이점이 거의 없기에 편안하다. 이러한 일치가 성과를 이뤘던 시기가 있었다. 소수의 천재들이 방향, 실행 안을 정하면 다수의 일반인들이 노동력을 제공해서 성과를 이뤘던 시기이다. 이때의 국민 소득은 3만 불 미만이었다고 한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선 지금은 이러한 노력(열심히)으로는 남다른 성과를 이루기 어렵고, 높아진 급여로 인해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은 소수의 전문성에 기대하기보다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다양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학부 때의 경험이긴 하지만 해당 영역을 학습한 경험, 텀 프로젝트를 동료들과 수행한 경험이 사회에서도 유사한 지식을 배우고, 과제를 실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텀 프로젝트 중에 2학년 때 C언어로 텍스트 기반 운영체제(MS-DOS)에서 비디오 대여 시스템을 구현했던 경험, 3학년 때 B+인가 B* 트리를 구현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특히 3학년 때의 과제는 팀을 이뤄서 밤을 새워가며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의 경험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업무 관련된 암담한 문제를 만났을 때 대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학습한 것, 경험한 것들이 실무에서 문제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도움이 된 것이다.
야구 선수들이 연습을 할 때는 다양한 환경을 설정하고 반복 연습을 해서 몸에 익히도록 한다. 그리고 시합 때는 의식하지 않고 몸에서 나오는 대로 플레이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서 공부하고 경험한 것들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향후 사용하지도 않을 것 같은 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었다. 또 나름 잘하는 분야이기는 했으나 수학을 배울 때 미적분을 어디다 쓰려고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어느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미적분을 배우는 이유는 실제로 활용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향후 네가 미적분과 유사한 뭔가를 배울 때 도움이 되기 위한 것도 있다.
전공과목을 배웠던 경험이 지금 그와 유사한 지식을 학습할 때 도움이 되고, 어렵고, 다양한 구성원과 수행했던 텀 프로젝트의 경험이 지금 구성원들과 과제를 진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당장 도움이 안 되더라도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구성원들이 함께 서로를 존중하며 일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
Get Your Hands Dirty on Clean Architecture 에서 "The Domain is King, Experience is Queen"이라고 설명한 것이 기억이 난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습관은 결정을 자동화해서 의사결정에 시간을 투여하지 않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사자가 있다면 생각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처럼...
이 말은 어쩌면 습관이 되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경험을 습관으로 만들면 좋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와 유사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동료와 일하면 편하지만 혁신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나와는 다른 다양한 지식, 경험을 가진 동료들과 일하면 서로 동의, 합의하여 나아가기는 어렵지만 혁신적 변화를 통한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와 다른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내가 잘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을 잘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분이 개발은 전공과 무관하다. 컴공과 졸업하지 않아도 java, spring-boot, jpa 등으로 Rest API 만드는 것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다만 본인이 공부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이 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학습과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전공해야 한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없이는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컴공 등 소수 전공 분야 외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혁신적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이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부족한 것을 동료에게 배우서 도움을 받고, 또 내가 기여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을 도와주면서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를 힘들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