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쓰기 모임은 없을까?

내향인이 만드는 모임

by 김지현

남은 삶은 퇴사하여 내가 가진 재능으로 밥벌이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밖은 지옥이야’라는 식의 말은 내 의지를 꺾기엔 부족했다. 어차피 지옥은 충분히 맛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하는 이들, 만류하는 이들이 각각 절반쯤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은 한 줌 정도였다. 어쨌든 호기롭게 16년 6개월 재직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프리랜서라는 빛 좋은 이름의 백수가 되었다.


통장엔 퇴직금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돈 걱정 말고 너덜너덜해진 마음부터 추스르자 생각하며 널널하게 몇 달을 보냈다. 생활비의 씀씀이는 퇴직 전과 비슷했다. 이대로 가다간 유일한 방패막인 퇴직금도 바닥을 보일게 뻔했다.


다급해진 마음에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를 뒤져가며 중년의 나이대에도 근무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중엔 스타벅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바생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보고 바로 지원했지만 20대의 지원자들이 차고 넘쳤다. 나였어도 20대를 채용했을 것이다.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평생을 따박따박 월급만 받아오던 삶에서 벗어나니 그럴 수밖에. 베짱이의 몸에 개미의 마음이 깃들었다. ‘이 돈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하며 이곳저곳 기웃대다가 생각했다.


‘내가 이러려고 직장을 그만두었나?’


그만둔 이유는 17849가지 정도쯤 되었지만 그중 가장 큰 조각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확실히 정해진 길도, 마련한 계획도 없었다. 막연히 글 쓰는 것에 재주가 있고, 거기서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기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 블로그는 20년째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글을 포스팅한다. 이런 것들을 토대로 ‘뭐라도 하며 먹고 살 수 있겠지’하는 막연한 기대. 그렇다. 수요자보다 공급자가 더 많은 글쓰기 세계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느슨하게 보내는 몇 달 동안 머릿속은 분주했다.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일단 해봐야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을 텐데 실패를 회피하고 싶어 시작도 못했다. 그중 떠오른 일 하나가 ‘모임’이다. 우선 사람들을 모으자. 거기에서 무언가 해보자. 블로그를 오랫동안 해왔으니 온라인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아예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내가 상당히 내향적이라는 점이었다. 온라인상에서의 글은 거칠고도 과감하며 솔직하게 써왔다. 그러한 내 글에 재미를 느껴 읽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제의 나는? 말발이 글발을 앞서지 못해 정말 친한 사이 아니면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한다. 이런 내가 사람들을 모아 뭘 하겠다고. 어이없기도 하고 무책임하게도 느껴졌다.


먼저, 무엇을 주제로 모임을 만들 것인가 생각해야 했다. 가장 흔한 것으로는 각종 ‘챌린지 모임’이 있다. 한창 유행했던 미라클 모닝 챌린지, 필사 챌린지, 1일 1 뭐 뭐 하기 챌린지 등. 물론 동기부여에 이만한 것이 없지만 앞으로도 지속이 가능하며 수익이 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운영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인증하는 것을 관리하는 것 외에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매일 지속되는 챌린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왔기에 시작도 전에 몸이 쪼그라들었다.


그다음으로 떠올린 건 ‘독서 모임’이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보아도 무료, 유료 모임을 포함해 지역 모임, 출판사 휘하의 북클럽 등 다양했다.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임의 특성상 반드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모임이나 온라인상의 줌 모임을 열어야만 한다. 책에 등장한 소재로 가벼운 토론이 이어지게 된다면 운영자인 내가 중재자를 맡기도 해야 한다. 운영자이자 MC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면 해당 책과 상관없는 수다 모임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는 책을 좋아할 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만남을 즐기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글쓰기 모임’이다. 일단 내가 글쓰는 것에 어려움이 없고, 심리적 부담감이 덜했다. 게다가 다른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 일반적인 글쓰기 모임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고 싶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분석한 결과, 대부분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1. 회원들은 일주일에 주어진 주제 하나로 한 편의 글을 쓴다.

2. 쓴 글을 기간 내에 정해진 플랫폼(카페, 밴드 등)에 업로드한다.

3. 서로의 글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댓글을 쓰기도 한다.

4. 일주일에 한 번, 또는 이주일에 한 번 정해진 만남을 갖는다.(오프 모임, 줌 등)

5. 만남에서는 서로의 글에 대한 합평을 하거나 낭독을 한다.

6. 운영자가 권위 있는 작가의 경우라면, 마지막에 각자의 글에 대해 총평을 하기도 한다.

내가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도 이와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합평이 기다리는 만남의 시간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칭찬일 수도, 비판일 수도 있는 피드백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유창한 글쓰기’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려면 내가 운영하기 편해야 한다. 그렇다면 합평을 위한 대면하는 만남은 없어야 했다. 오프라인 모임이 없는 모임이야 많지만 줌과 같은 온라인에서도 만나지 않는다고? 이것은 생각보다 파격적이었다. 만나지 않고서는 글에 대한 피드백이 어렵기 때문이다. 만남이 없다면 한날한시에 모여 진행하는 합평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모임 운영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대면하지 않는 모임, 글로만 소통하는 모임’ 두 가지 아이디어를 못 박아 놓고 모임을 구성해 보기로 했다. 가만있자, 여기에 내가 잘하는 것, 쉽게 할 수 있는 것, 남들은 어려워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수월한 것을 더하면 좋을 텐데.


긴 고민 끝에 떠올렸다. 교직에서 아이들 일기장에 길고 긴 피드백을 써주던 내 모습. 고작 세 줄을 써온 아이에게도 나는 공책 한 바닥 가득 답장을 써주기도 했다. 일기의 내용에 공감해 주고, 질문을 던지며 하고 싶었던 말도 썼기에 답장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료 선생님들은 ‘대체 이걸 날마다 어떻게 해주냐’며 놀라워하셨지만 나에게는 큰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펜을 움직이면 됐기 때문이다. 가식적인 문장 없이,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것처럼 펜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걸 글쓰기 모임에 적용하면 어떨까? 운영자인 내가 선생님이 일기장에 답장 써주듯 개인별로 1:1 피드백을 하는 것이다. 말 센스가 부족한 나는 생각을 글로 나타내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모임에 스무 명, 서른 명이 들어와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한 반에 40명의 담임이던 시절도 있었는걸. 타인의 글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모임의 회원들은 공감과 응원을 받으면서 글쓰기에 수월히 접근하게 된다.


그렇다면 1:1 이메일 서비스로 글쓰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러 사람이 읽는다는 가정하에 쓴 글은 한두 명이 보는 글과 확실히 다르다. 그렇기에 회원들이 서로의 글을 읽으며 댓글로 소통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생각에만 그치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금세 바닥으로 침잠하고 말 것이다. 엉성하고 자그마한 울타리가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