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글쓰기 모임 1
무엇보다 이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떤 내용도 정해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모임이지만 이름이 참신하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을 뒤져가며 다른 글쓰기 모임들의 이름을 살펴보았다. ‘00 글방’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투박하면서도 글쓰기라는 특성이 쉽게 드러났다. ‘00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모임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대부분 회원들의 글을 모아 마지막에 책으로 출판해 주는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것 같았다. 가장 많은 이름은 ‘00 하는 글쓰기’였다. 이름만 보아도 무엇을 하는 모임인지 알 수 있었다. ‘글쓰기’ 앞에 붙은 수식어는 해당 모임만의 특성(감정 표현, 자아 찾기, 필사하기 등)을 나타내는 단어들로 이루어졌다. 조금 길지만 사람들의 접근이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무엇으로 이름을 만들까. 자꾸만 그럴듯한 이름을 지으려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는 자신을 찾는 여정도 포함되니 ‘사유하는 글쓰기’는 어떨까? 아냐, 회원 간 글로 이어져 소통한다는 뜻으로 ‘이음 글방’으로 지을까? 아, 보자마자 ‘샤~하면서도 빵!’하는 느낌의 이름 어디 없을까.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동생과 통화하게 되었다. 원래 고민의 해답은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눈에 더 잘 띄는 법. 동생은 내가 미리 지어놓은 몇 개의 모임 이름을 듣다가 갑자기 떠올랐다며 이 단어를 내뱉었다.
“나이쓰 어때? 나이쓰.”
이게 무슨 개똥 굴러가는 소리야. 이 모임은 대면이 없는 내향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런데 어린애들이 주먹을 하늘로 날리며 ‘나이쑤~’하며 방방 뛰는, 대문자 E를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를 모임명으로 하라고? 조금은 어이가 없었지만 모임명에 대한 설명은 계속되었다.
“약자로 만드는 거야. 언니는 자아 성찰을 잘하잖아. 아마 모임에서도 그런 성격이 묻어날 것 같아. 그러니 ‘나를 이끄는 글쓰기’의 약자, ‘나. 이. 쓰.’ 어떨까?"
산뜻한 발상이었지만 이 단어가 조금 꺼려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퇴사한 직장에서 사용하던 행정정보시스템의 이름이 ‘나이스’였기 때문이다. 일이 처리하기 위해 로그인, 모두 마무리한 뒤 로그아웃. 그렇게 하길 16년 6개월이었다. 어떻게 반길 수 있을까!
하지만 단어가 주는 가벼운 느낌과 단순함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단어이기에 한 번 들으면 기억하기 쉬운 점도 좋았다. 게다가... 딱히 마땅한 대안도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나이쓰’를 뛰어넘을 만한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글쓰기 모임명은 동생이 추천한 ‘나이쓰’로 정해졌다. 일단 이름이 있어야 나머지 일들도 가닥이 잡힐 것 같았다. 나이쓰, 나이쓰! 입으로 읊을 때마다 퇴사한 직장이 생각나 미간이 구겨졌지만 물러설 수 없다!
이제 모임의 운영 방식과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 계획한 대로 이곳은 오프 모임도, 줌 모임도 없다. 참여한 회원들과 운영자인 나는 서로 온라인상에서만 소통한다. 그에 알맞은 플랫폼도 선택해야 했다. 글은 쓰는 사람에 따라 분량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쉽게 휘발되면 다시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니 네이버 카페를 일종의 저장 창고로 한다. 글을 쓸 때에만, 그리고 다른 회원들이 쓴 글을 보며 반응할 때에만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임이 운영되는 도중에 궁금한 점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안내하는 사항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네이버 카페 게시판에 올리면 회원들이나 나나 신속한 확인이 힘들다. 따라서 즉각적인 소통을 위한 채널도 필요했다. 자유롭게 왔다가 나갈 수 있는(한 달만 참여 후 나가기도 하니)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활용하기로 한다. 사적인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도 일반 채팅방처럼 이용할 수 있으니 편할 것 같았다.
카페와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본 적은 없었다. 여태 남이 만들어 놓은 것에만 들어가 활동했을 뿐. 이것도 손대보고, 저것도 손대다 몽땅 다 날리기도 하며 자잘한 시련을 겪었다. 회원이 오로지 나, 한 명인 카페와 채팅방을 개설해 놓으니 그럴듯했다. 물론 끝도 없이 허둥댔다. 카페에 삽입한 예쁜 이미지는 한쪽이 잘려 있었고, 채팅방에 자동으로 설정한 오픈 채팅봇은 헛소리를 했다. 조금씩 손을 보면 나아지겠지. 회원들로 북적일 공간을 기대한다.
회원들이 쓴 글을 어떻게 하느냐도 고민이 되었다. 보통은 서로 돌려보며 모여 합평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든 모임에서 합평은 없다. 운영자인 내가 해당 글에 1대 1로 공감과 애정 가득한 피드백을 드릴 예정이다. 문제는, 내가 권위 있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온오프라인에 싸질러 놓은 글이 많긴 했지만 책 한 권 내어본 적 없다. 그런 내가 함부로 다른 사람의 글에 피드백을 달아도 되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심각해졌다. 과연 이 모임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가. 글쓰기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곳인가, 아니면 글을 쉽게 쓸 수 있도록 돕는 곳인가.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했다. 글 실력을 높이는 방법은 시중에 관련된 강의도, 책도 많이 있다. 하지만 백지를 놓고 무얼 쓸지 막막한 사람들이 첫 문장을 쉽게 쓸 수 있도록 돕는 ‘무언가’는 희소했다. 이 모임이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문장 교열과 첨삭이 아닌, 글에 대한 공감과 격려, 관찰을 통한 자기 이해를 피드백으로 제공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학생들의 일기장을 첨삭해 주던 내가 자신 있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모임에 참여 후 글을 몇 편 써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일주일 또는 이주일에 한 편을 쓰는 방법이 있으며 챌린지 형식을 띠게 하여 매일 쓰는 방법도 있다. 내가 모든 회원들의 글을 피드백해주어야 하니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정하기로 했다. 회원이 몇 명이 될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우선 평이하게 일주일 한 편을 쓰는 것을 기준으로 잡았다.
모임명부터 구성까지 개요를 짜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툰 것 투성이었다. 사람들이 나이쓰를 통해 글쓰기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내 진심이 글을 통해 닿기를 작은 마음으로 바랐다. 한편으로 ‘망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구름처럼 밀려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망하면 어쩌긴. 다시 해봐야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