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 생일이 다가오면 우리 엄마가 늘상 하시는 말씀이다. 사실 손끝이 야물지는 못해 음식에는 영 소질이 없는 우리 엄마지만, 마음만은 여느 엄마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나는 소갈비찜보다는 매콤한 김치찜이나 양념된 돼지갈비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체 엄마의 기억 속의 ‘나’는 왜 소갈비찜을 좋아하는 딸인 걸까? 매년 들어오던 멘트지만, 이번 생일에는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엄마의 기억에 들어가 볼 순 없으니, 내 기억에서 그 답을 찾아봐야겠다.
소갈비찜이 떠오르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내가 일고, 여덟 살 무렵의 명절날이다.
어린 날의 명절에 주로 기억나는 건 사촌 동생들과 함께 놀던 것과, 밥을 먹을 때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있던 것 두 가지 정도다.
밥때가 되면 거실에 펴 놓은 밥상머리에서 나는 엄마의 무릎가에 바싹 붙어 앉아 배가 고프다 칭얼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곁에서 올려다본 엄마의 표정은 대개 좋지 않았다. 왜 엄마의 표정이 안 좋았는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엄마의 얼굴을 보고 더는 배고프다 찡얼댈 수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조용히 엄마 곁에 앉아 있노라면, 엄마는 밥상 한가운데에 있는 소갈비찜의 양념국물을 쌀밥에 찹찹 비벼서 내 손에 쥐어 주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한 손으로는 엄마가 준 하얀 밥그릇을 잡고서 내 입에는 다소 큰 숟가락으로 양념 밥을 열심히 퍼먹었다.
명절날이라 여러 반찬 그릇들이 한 상 가득이었으나, 나는 늘 김치나 다른 반찬 없이 그 기름진 갈비 양념 밥만을 떠먹고는 했다. 느끼하고 물릴 법도 한데 오히려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그 물리는 느글느글한 맛이었다. 밥그릇을 안고 크게 한 술 떠 볼이 빵빵해지도록 먹을 때면, 갈비 양념의 기름진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던 혀의 기억이 아주 선명하다.
찰지고 고소한 흰쌀밥과 갈비양념에 밴 기름 맛.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소갈비찜에 대한 가장 첫 번째 기억이다.
소갈비찜은 늘 우리 집 명절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그때마다 내가 잘 먹어서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셨나?’ 싶었다가,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툭 하고 굴러 나왔다.
때는 내가 20대 초반 즈음의 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오기로 한 손님과 준비한 고기의 양이 맞질 않아서 며칠을 내리 가족들이 소갈비찜만 먹었던 적이 있었다. 아빠와 오빠는 세 끼 연속으로 갈비가 나오자 속이 느끼한 지 더 먹질 못했는데, 나는 삼일을 내리 양념 국물까지 싹싹 맛있게 긁어먹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엄마는 식탁 옆에 서서 접시에 갈비를 더 채워주시며 느끼하지도 않으냐고 물으셨다. 그런 엄마의 물음에 나는 고기를 집어먹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었다.
“너무 맛있기만 한데요. 어릴 땐 명절 때마다 엄마가 갈비 양념 국물에 밥만 비벼주고 고기는 많이 못 먹었었는데, 이렇게 실컷 먹으니까 좋아요. 며칠이고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기억을 되짚어보자니 철딱서니 없는 대답이 아닐 수 없다. 내 말에 엄마는 “너가 밥에 갈비양념 비벼먹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라고 하셨고, 나는 엉거주춤 서 있는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지도 않은 채 이어서 쐐기를 박는 대답을 하고야 만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늘 그렇게만 줬으니까요. 밥에 비빈 것도 맛있지만, 고기가 더 맛있죠, 사실.”
아아,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내 생일이 돌아올 때면 우리 엄마가 소갈비찜, 소갈비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신 것은.
그런데 이 기억들을 더듬어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저 어릴 적 명절날 엄마가 밥에 양념만 비벼주셨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삼촌들이 다 먹고 일어난 상에 밥만 다시 떠서 차린, 먹다 남은 상. 엄마가 한참 음식을 나르다 밥 한 술 뜨려 앉으면 이제야 숟가락을 든 숙모들, 여사촌들이 밥상 앞을 꽉 채워 앉았었다. 군데군데 빈 반찬 그릇들과 이미 소갈비는 거의 없는, 사태살만 몇 점 남은 갈비 그릇 앞에서 엄마는 지친 얼굴로 어린 딸에게 양념국물만 떠서 비벼주셨던 것이라는 걸 철이 들고 나서야 알겠다.
이제는 오래 지나버린 가물가물한 기억일 뿐이지만, 다 큰 나이의 딸이 사실 갈비를 좋아했었다는 생각에 엄마는 소갈비찜을 해 주실 때마다 늘 단골 멘트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기 뼈에 붙은 게 진짜 갈빗살이야. 이게 맛있어. 뼈 없는 건 사태라고, 갈비가 비싸니까 같이 사서 넣는 거야. 이건 좀 맛이 들하지. 그러니까 갈비만 골라먹어, 우리 딸.”
엄마 당신도 이유를 모르는, 이 오래된 기억들에서 기인한 소갈비찜 생일상. 엄마는 생일상을 차려주고도 “산 양념으로 해서 미안하다”, “더 자주 못해줘서 미안하다”, 늘 해주고도 엄마는 항상 미안해하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매년 생일상을 받을 사람이 뒤바뀐 것 같다. 생일자가 먹는 미역국도 사실 그 날 자신을 낳아준 이가 먹던 음식이 아닌가. 태어난 자만 축하받는 생일은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낳아준 자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엄마는 생일을 맞은 자식을 위해 매년 미역국을 끓이신다.
무언가 뒤바뀐 엄마의 미안한 세월은 이미 식어버린 음식처럼 때가 지나버렸다. 그렇지만 엄마와 내가 함께할 여남은 세월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제 내 생일상 위 소갈비찜은 기억 속에 남겨두고, 내년부터는 감사함을 제대로 기억하는 시간들로 채워나갈 새로운 생일상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