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었으며, 당신에게는 처음 맞는 추위와 고통이었다. 그렇게 당신의 세상이 열렸다.
당신이 누워서 바둥거리기만 해도, 그저 앞니가 하나 나기만 해도 당신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 찼다. 두 발로 디디고 서서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을 때에도 당신은 그저 세상이 궁금했다.
걷기 시작하자 당신은 이내 뛰고 싶어 졌다.
뛰기 시작하자 당신은 넘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넘어질 때면 어김없이 큰 손이 다가와 일으켜 안아주었다.
그랬기에 당신은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당신은 일으켜 세워주던 손이 더 이상 크지 않음을 알았다.
당신은 넘어짐이 아프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당신은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신을 잡아주던 큰 손이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 당신을 잡아 일으켜주지 못하는 그 손이 얄궂었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더라도 당신의 세상이 타인에 의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점차 당신의 세상을 채워주던 사랑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당신은 삶을 고통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당신의 삶에 다른 이의 세상이 들어왔다.
한 명, 두 명…, 그들은 각자 다른 형태였지만, 함께 할 때면 각자의 세상이 겹쳐졌다. 당신은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점차 알아갔다. 그렇게 만남으로 인해 서로의 세상이 넓어질수록 시간은 쌓여갔다.
당신은 당신을 닮은 작은 손을 만나게 되었다.
그 손은 너무도 작고 소중해 넘어질 새라, 상처 입을 새라, 당신은 늘 달려가 안아 일으켜주었다. 당신의 세상은 그 작은 손으로 가득 찼다. 작은 손으로 가득한 당신의 세상은 행복했고, 그 행복의 크기만큼 고통이 함께 했다.
작은 손은 어느새 자라 당신을 등지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작은 등을 바라보며 당신은 더 이상 손을 뻗어도 그 아이가 닿지 않음을 느꼈다.
당신은 당신을 안아주던 그 손이 생각이 났다.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던 그 손은 작아지지 않았다. 다만 당신의 뒤에 저 멀리 서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은 아이의 등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고서야 당신의 뒤에 늘 서있던 그들이 그리워졌다. 뒤로 돌아 달려가고 싶어 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손에 닿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가늘게 말라있던 그 손은 이제 당신의 곁에 없다.
그제야 당신은 당신의 세상이 고통으로만 가득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삶의 파도에서 허우적댈 때면 언제고 예전처럼 일으켜 세워주려 기다리는 이들이 뒤에 있었음을, 당신은 떠나보내고야 알았다.
이제 당신이 서 있는 곳이 가장 뒤가 되었다. 당신은 아이가 혹여 뒤 돌아볼 새라, 이제 더는 돌아볼 곳 없이 그렇게 뒤를 지켰다.
당신의 세상이 황혼으로 물들 무렵, 당신은 문득 다시 궁금해졌다.
아주 오래전에 고민하다 잊어버렸던 ‘삶의 이유’에 대해서.
세상이 물인지 불인 지도 몰랐을 땐, 당신은 세상에 치여 허우적대기 바빴고, 어느덧 저물어가는 시간에 선 당신은 이제는 지나쳐온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을 지나쳐 보내고 있다.
돌아본 당신의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그 고통 사이에 빛이 가득했음을 안다. 또한 고통은 때론 행복의 이면이었으며, 고통은 때론 그 너머의 희열이었다는 것도 안다.
삶의 다채로움을, 당신은 당신 세상의 끝자락에서야 선명히 보았다. 늘 존재의 이유를 궁금해하고, 늘 무언가를 꿈꾸며 내일을 기다리던 모든 하루하루가 당신의 세상이었음을. 삶의 존재 자체가 그 답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