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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Nov 21. 2021

애증의 필름 카메라

굳이 왜냐고 물으신다면

잠깐의 소나기가 왔다 그쳤던 터라 이제 막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 주황빛 하늘에 평소에 보기 힘든 쌍무지개가 함께 선명하게 떠 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휴대폰으로 여러 장을 담아보지만 눈으로 봤던 풍경에 훨씬 못 미치는 모습이다. 예전이라면 필름 카메라를 들었겠지만 지금 내 어깨엔 카메라가 없었기에, 이 아까운 장면은 아쉽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미세한 티끌까지 모두 잡아낼 법한 첨예한 화질의 사진은 사실적이지만 그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워 냉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록 순간의 정확한 기록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마치 꿈결에서 본듯한 장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필름 카메라만의 표현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우연히 따스한 느낌을 주는 사진을 발견한 뒤 그 사진이 당시에 너도 나도 갖고 있던 DSLR이 아닌 '미놀타'라는 기종의 단종된 지 오래인 필름 카메라로 촬영되었다는 것도 알아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런저런 것들로 시간 낭비할 새 없이 빨리 카메라를 손에 넣고자 하는 일념으로 발품마저 팔지 않고 중고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상품을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했다.


필름 카메라는 비효율 적이며 불편하고 번거롭다. 일단 찍고 난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다. 방금 찍은 친구의 눈이 깜박였는지, 수평이 기울었는지, 수전증 때문에 흔들리게 찍혔는지 직접 현상을 하기 전까지는 알 길이 없다. 꼭 담고 싶었던 순간이 엉망으로 찍힌 것을 며칠 후, 길게는 여러 달 후 발견하게 되면 그 당시의 나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니까 잘 찍었어야지!). 정말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라면 연거푸 셔터를 눌러 여러 장을 찍어놓아야 비로소 불안함을 줄일 수 있었고 현상소에 맡긴 필름의 결과물을 이번에는 한 롤에 몇 장이나 건질 수 있을까, 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기다리곤 했다.


사용자의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육중한 바디는 어깨를 뻐근하게 만든다. 24-36컷만 촬영 가능한 필름은 다 쓸 때마다 계속 바꿔 끼워줘야 하며 제한된 컷 수 때문에 한 컷 한 컷을 신중하게 찍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쓸모를 다한 필름을 주렁주렁 현상소까지 가지고 가서 현상을 맡겨야 모든 할 일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면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라느니 아날로그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효율적이고 편한 게 좋은 사람이다. 아직도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는 이유는 오로지 그놈의 '사진'이 예쁘기 때문이며 유료 보정 어플도 시도해보고 라이트룸으로 직접 사진을 만져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고유의 느낌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콤팩트한 사이즈의 카메라로도, 심지어 핸드폰으로도 똑같은 결과물이 나온다면 일찌감치 내 미놀타는 장롱 속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이렇게 점차 불만만 커지고 필름 카메라에 미련을 버릴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는 처지이지만, 처음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고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새로운 피사체로 보였던 때를 기억한다. 매년 찾아갔던 시골 할머니의 집 주변도 여기저기 찍고, 늘 베란다로 내려다보던 초등학교의 운동장과 뒤뜰에 빗물이 가득 차 거울처럼 반영된 풍경도 첨벙첨벙 젖은 발로 돌아다니며 찍었다.



그 이후로도 여행을 다니는 곳곳마다 필름 사진으로 부지런히 담았고 이따금씩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에 실망을 반복하기를 여러 번, 필름 카메라를 챙기는 횟수는 조금씩 줄었다. 처음 시작한 때가 2009년부터이니 10년도 더 된 지금, 열정이 시들해진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만 어쩌면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올 게 없는 삶에 접어들며 필름 카메라의 역할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하게 찍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 가끔씩 불쑥불쑥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날 거실에서 툴툴 거리는 소리가 들려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았는데, 동생이 쓸 일이 없는 카메라를 팔아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몇 년 전 나를 따라 똑같은 기종으로 카메라를 샀는데, 막상 사놓고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탓에 게으르게 쓰느라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상처가 난 내 것에 비해 완전히 새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것은 고장 투성이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차, 동생의 카메라를 사서 조금 더 사진을 찍고 싶어 헐레벌떡 거실로 나와 만류하고 내가 사버리기로 했다. 필름 카메라가 아니면 더 이상 기억 속으로만 희미하게 남을 장면들을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도록 간직할 수가 없는데, 아직은 그 소중함을 놓아버릴 때가 아니기 때문에. 비록 36컷 필름 한 통을 두 계절이 지나도록 다 쓰지 못해 현상도 못하는 답답한 지금이어도, 느리지만 조금씩 언젠가는 애정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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