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박사과정생이 수료하면 이렇게 됨#2

by 연정

몇 달 전, 사회과학 박사과정생이 수료하면 뭘 하는지 첫 번째 글을 썼다. 나머지 이야기를 금방 쓰려고 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넘쳐나고 내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 말은 즉슨 사회과학 박사 수료 후에 마음껏 책을 읽는다 이 말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이 마치 유식한 척, 고상한 척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려서 말할 때 머쓱하다. 그리고 왠지 "취미는 독서"라는 게 너무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책을 좋아하니까. 머쓱하게 진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책을 좋아해서 대학원에 갔지만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을 수없이 읽어야 했다. Chat GPT도 없고 구글번역도 똥같던 시절에 원서를 구해가며 읽어야 하니 한가하게 고전문학이나 읽을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종강하고 여유가 생기자마자 소설을 읽었다. 물론 방학의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정말로 이번 방학에 읽지 않으면 내 삶을 비관하게 되고야 말 것 같은 소설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사 수료 후에는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대학의 연구원으로 잠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사무실에서 책을 읽어도 연구를 하나보다- 하고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기에 아주 당당하게, 정말 마음껏 책을 읽고 있다.


물론 코스웍 중에 읽는 책의 개수보다 훨씬 적게 책을 읽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열댓 권의 책이 전부 내가 원해서, 내가 골라서 읽은 책이라는 점이다! 올해 읽은 책 전 권이 감탄하고, 눈물 찔끔 흘려가며 읽은 책이라는 게 얼마나 큰 만족감을 주는지.



논문도 한 편 썼다. 워낙에는 2024년 12월에 투고한 논문인데 비상계엄 당일에 국회에서 밤을 새우고, 내내 탄핵집회를 다니느라 말아먹은 그 논문을 드디어 완성했다. 논문을 게재하느라 돈을 많이 썼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과계열 대학원생 친구들이 기함을 한다. 투고비와 게재료를 직접 내야 하는 거냐며. 그렇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투고비를 주는 학과와 연구실은 거의 없다.



그리고 논문을 쓰면서 새로운 결심을 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기로. 박사과정 중에는 한 학기, 한 학기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지도교수님과의 문제로 학위논문 작성을 포기했다. 논문을 작성하는 기회비용이 아까웠고, 그 시간에 내가 얼마를 벌 수 있을 것인가 셈을 해보니 굳이 박사학위가 필요하지 않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마음은 갈대 같다고 했던가.(그런 말 없음) 갑자기 박사학위를 취득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우리 부모님 연배의 연구원님과 점심식사 중이었다. 식당을 가득 메운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부럽다고 하시기에, 연구원님이 제 나이로 돌아가면 뭘 하실 거냐고 여쭈었다. 그분은 "현실과 타협 안 하고 공부 계속할 거예요."라고 숨도 안 쉬고 단호하게 말했다. 머리가 딩- 하고 울렸다. 20년 뒤의 내 모습일 것 같다가 심지어는 미래의 내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 박사학위를 따느라 시간을 쓰고 돈을 못 벌어서 생기는 후회는 가역적이고 보상이 가능하지만 박사학위를 포기한 후회는 비가역적이고 더 크리티컬 하겠구나.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바로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썼다.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싶다고. 언제 졸업을 하는 게 목표라고. 그러니까 도와달라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교수님은 기쁘게 날 맞이 하셨다. 교수님 방에서 같이 음료를 나눠마시며 깔깔 웃는 날이 오다니. 척척박사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싶었다. 하늘의 뜻에 힘입어 열심히 학위논문 주제를 구체화하고 있다. 학위논문 쓰는 내내 다시 또 가난과 고통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괴롭지만 20년 뒤 후회의 비할 괴로움이 아니겠지.



아무튼 사회과학 박사과정생은 수료 후에 책을 마음껏 읽고 졸업을 준비한다. ??? 코스웍이랑 다름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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