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박사수료생(노느라)
박사수료생이 되다
2025년 2월, 수료증명서가 발급됐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말로만 듣던 박사수료가 된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박사수료하기 전 논자시를 완료해 둘 생각이었다. (논문자격시험-논문 2개 게재)
박사 1년 차 때는 인생 첫 형사소송을 하며 휘몰아치는 일상에 휴학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견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4개의 페이퍼를 쓰고 수영대회도 나갔다.) 박사 2년 차에 어느 정도 사건을 마무리하고 정신을 챙겼다.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고 학회 발표도 했다. 두 번째 논문을 게재하나 싶었는데, 계엄령 후 시위다니고 뉴스 팔로업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내 논문 성격과 맞지 않는 저널을 고른 탓에 게재에 실패했다.
당연히 게재될 것이라 믿었던 논문이 리젝되고 잠시 상심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아꼈던 주제의 논문이고 꼭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수료 첫 학기는 이 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일단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푹 쉬는 것으로.
휴학 한 번 없이 학부를 졸업하고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 퇴사하기도 전에 대학원에 입학했으니 정말로 쉬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우선 첫 학기는 쉬면서 논문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나 ‘쉬면서’에 너무 방점을 뒀는지 너무 신나게 쉬어버렸다. 여행도 세 번이나 다녀오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났다. 그 만남이 문제였다.
대문자 J의 계획 변경
그 만남 때문에(덕분에?) 해외 취업이라는 내 중기 목표를 바꾸는 계기가 생겼다. 너무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하게 됐다. 작년 이맘쯤, 해외로 가기로 결정한 후 가족들과도 진지하게 상의하고 면접도 보면서(떨어졌지만) 계획을 정말로 구체화하고 있었다. 계획을 실현도 하기 전 갑자기 중단해 버렸다.
한국에 남는 게 맞을지, 내 분야가 한국에서 전망이 있을지, 내가 한국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이것 때문에 한국에 있기로 결정한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어찌 됐든 지금 나는 선택을 했고 내 선택을 믿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은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로 했다. 1~2년 정도만 일할 수 있는 곳, 6~7월 정도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곳, 내 연구분야에도 잘 맞으면서 한국에서의 커리어 맵에 도움이 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해외나갈 기회를 남겨는 두기로 했다.
위 조건에 맞는 여러 후보가 있었다.
1. 국제기구 한국지사: 해외 취업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연봉은 높지 않고 직주거리가 매우 큰 곳(왕복 3.5시간)
2. 정출연: 한국 커리어 맵에 도움이 되고 연봉이 나쁘지 않지만 성장이 크게 안 되고 직주거리가 매우 큰 곳(왕복 3.5시간)
3. 시립 기관: 매우 가깝지만(편도 20분) 성장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곳
4. 대학 연구직: 적당히 가까우면서 성장에 도움이 되고 해외/한국 커리어 매핑에 적절한 곳, 하지만 연봉이 작음
대략 이 정도로 추려졌다. 각각 일하는 시기나 지원 일정은 달랐기 때문에 동시에 고민한 것은 아니다. 결정을 마치고 돌아보니 몇 가지 후보 중에 지금의 자리를 골랐구나 하고 정리가 됐다.
당연히 가장 마지막 후보를 선택했다. 박사수료로도 받아주는 연구직이 많이 없지만, 내 경력으로 충분히 지원이 가능할 거 같았고 자신 있는 분야였다. 연봉이 지금 자리보다 훨씬 높은 정출연은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 선택하기 꺼려졌다. 당장의 그 돈이 지금은 커 보이지만 앞으로 남은 50년을 생각할 때 그 돈은 결코 큰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연구직으로 일한 지 세 달 차다. 하고 싶었던 연구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배우는 것도 많다.
동시에 리젝됐던 논문을 다시 방향을 살짝 바꿔서 쓰고 있다. 곧 투고할 예정.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박사수료 후 실컷 놀고, 사람들도 만나고, 취업을 했다.
박사수료생이 사라지는 전공
인건비도, 투고비 지원도 없이 열악하게 홀로 고군분투하는 사회과학 분야 박사과정생들. 그들이 수료하면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선배들이 수료 후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수료해보니 불안이 무색하게 박사수료해도 할 거 많고 놀 거 참 많다.
취업을 처음 결정할 때는 한국에 남아 커리어를 쌓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일을 하다 또! 뜻밖의 결정을 하게 됐다. (진로 고민은 몇 살 돼야 끝나는 건지..)
그 결정은 다음 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