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사랑해야 할 수 있는 말인지
어떤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쓰고 싶은 말이 목끝까지 차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새해를 보냈다.
새해가 되면서 작은 방을 새로 꾸미고 짐을 정리했다. 이 집에 산 시간만큼 쌓인 짐들을 솎아내고 정리했다. 그 중 5년 간 받은 편지들을 정리하면서 뭉클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따뜻한 편지를 받았다니, 이 친구가 나한테 이만큼이나 편지를 자주 써줬다니, 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편지만이 아니라 고마운 마음을 잘 정리해서 고이 보관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26년에는 나도 더 많은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눠야지.
어제는 20살 때부터 가까웠던 언니를 만났다. 여느 이십대 초반이 그렇듯 나 역시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았던 때였다. 그때의 고민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가 했던 말과 그 따뜻했던 손, 표정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지금 나는, 내가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의 언니보다도 다섯 살이 더 많다. 지금보니 언니도 어렸지만은 그래도 언니 눈에 나는 더 어렸고 그냥 애기였을테다. 스물 일곱, 여덟살에게 스물 한, 두 살의 고민이 얼마나 사사롭게 느껴졌을지 이제는 잘 안다. 그래서 언니한테 더 고맙다. 언니는 한 번도 나의 고민을 어린 여자애의 귀여운 투정 정도로 치부하지 않았으니까.
어제 만난 건 갑작스럽게 들은, 안 좋은 소식을 위로하는 자리였는데 사실 위로를 받고온 건 언제나 그랬듯 내쪽이었다. 언니는 돌아가는 나를 꼭 안고 (정말 문자 그대로 꼭 안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철들지마. 내가 너한테만 하는 말이야." 작년 생일, 언니의 축하 카톡에도 있던 말이다. "철 들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돌아오는 길에도, 쇼파에 앉아 혼자 와인을 마시면서도, 잠들면서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얼마나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수 있는 말일까. 나도 예닐곱살 어린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데, 그 친구들을 정말 사랑하면서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맘이다. 어떤 마음인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왜인지 생각만 하면 눈이 뜨거워진다.
부끄럽지만 가끔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들이 나를 애기 취급해줄 때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분이 좋다. 아 이 친구한테는 가끔 내가 생떼를 써도 되겠구나 싶은 자신만만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상적 퇴행 같은 건가? 극도로 발달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면 퇴행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고도의 신뢰 같은 것. 고도의 신뢰를 주는 친구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이 나를 사랑한다.
나를 이해할 수 없이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