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얘기 그만하고 싶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뭐냐면

by 연정

26년 2월, 모든 방송사의 뉴스마다 식당 테이블마다 들려오던 이야기는 코스피였다. 코스피 7,000 시대가 코앞에 왔다며 들떠있던 뉴스가 마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설레어하는 분위기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26년 3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코스피가 다시 급락하기 시작했다. 식당 테이블에선 주식이 얼마 손해라느니, 진작 팔았어야 한다느니, 아니 그럴 때 꾹 참고 물타기를 해야 된다느니 이야기로 이어졌다.


잠자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아무리 먼 나라라지만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는데, 한 나라의 지도자가 죽었는데 경제적 손실만을 걱정하다니. 아무렇지 않게 유가 얘기, 주식 얘기만 하는 목소리들을 엿들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아서 이게 정상인 것인지, 내가 이상한 건지 의심도 들기 시작했다.

(알리 하메네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인권을 탄압하고 언론과 권력을 통제하는 데 지지할 리가 없다. 다만 생명권이 의심의 여지없이 절대적 인권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가 타국의 군사적 행위로 죽었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주식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

지도자의 사망이든, 전쟁이든,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벗기 시작했든 사람들에게 유가와 주식이 더 중요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사회적 인간으로 잘 기능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주식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니까.


이제는 근로소득만으로는 돈을 모을 수가 없다고, 국민연금은 이미 모자라고, 주택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어디의 매물이 어떻더라고 얘기를 모두가 매일같이 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마치 투자 안 하고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은 비합리적이고 우둔한 사람처럼 이야기하며 이렇게 우둔한 사람의 말로는 무척이나 비참할 것이라고 불안까지 준다.


정말 투자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바보인 걸까?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의 시대

웬디 브라운(2015)은 이런 상황을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이란 시장 원리를 사회 모든 영역의 판단 기준으로 확장하는 사고 체계를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만들어지는 이성과 규범에 맞춰 생각하고, 교육하고, 아예 존재하도록 된 것이다.


브라운이 보기에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인간은 정치적 존재나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식해야 하는 인적 자본이 된다. 인적 자본의 형태와 활동은 금융 자본, 투자 자본과 연동된다. 우리가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경제적 논리로 재구성된 것이다.


브라운은 예시로 2013년 오바마의 연두교서를 가져온다. 오바마의 연설은 사회 정의의 실현, 환경 보호를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정리한다. 그의 연설을 보면 경제 성장이 민주국가의 의무보다 우선하게 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브라운은 이 연설에 충격받아하며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민주주의를 해체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2026년의 나에게는 그 연설이 당연하게 읽힌다. 이미 모든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니까.



민주주의 실현 같은 '한가한' 얘기를 하고 싶어

민주, 존엄, 성평등, 인권, 상생과 같은 가치들도 전부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원이 되었다. 예컨대 ESG 정책의 내용은 평등한 거버넌스를 만들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투자를 늘리는 것 즉 경제적 이윤 확대다.

"그게 아니라 조직 내 권력관계를 성찰하고, 지구를 보호하고"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 지금 주식이 얼마나 떨어졌는데 같은 이야기가 곧바로 돌아오는 것이다. 즉 내가 "지금 먹고살기 바쁜데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진짜로 주식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이 먹고살기 바쁠까? 절대 빈곤율이 이렇게나 낮은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말할 때 돌아오는 대답이 "먹고 살기 바쁘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이 빠지는 대답이다. 이렇게나 치사한 핑계가 없다.


나는 6면이 다 막혀 있는 곳에 살고, 하루 세끼 굶지 않을 수 있다면(던, 2009) 계속해서 '한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떻게 이 망해가는 지구를 살릴지, 어떻게 더 많은 나라의 여성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많은 굶주리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는 영원히 비합리적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난 정말로 바보인 게 맞을 게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합리성 따위 영원히 모르고 싶다. 난 계속 설명하기도 어렵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그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 사랑, 존엄, 돌봄, 자유 같은 것들 말이다.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의 시대에 한가한 이야기들을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한다.



참고문헌

Brown, W. (2015). Undoing the demos: Neoliberalism's stealth revolution.

Dawn, M. J. (2009). In the beginning, God: Creation, culture, and the spiritual life. InterVa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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