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 볼레로, Bolero, 4분의 3박자, 스페인 춤곡, 발레
모리스 라벨의 Bolero
리듬과 멜로디, 분위기가 뇌쇄(惱殺)적인 음악이다.
퍼커션(Percussion)으로 시작하면서 반복되는 리듬은 '중독(中毒)성'이 강하다. 글도 아닌데 점강법(漸降法)을 채용하여 곡 후반에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플룻으로 멜로디를 가볍게 시작한다. 듣는 이가 자연스레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같은 멜로디를 받아 이국적인 음색으로 귀를 유혹한다. 바순이 바통을 받아 독특한 저음의 음색으로 약간 변칙으로 연주한다. 여기부터는 하프도 합세하여 다른 현악기들과 함께 피치카토로 반주를 은은하게 깔아준다.
다시 클라리넷이 받아 고음으로 멜로디를 연결한 후, 이윽고 오보가 가늘고 긴 리드에서 몽환적인 가녀린 음색을 뽑아낸다. 이때다 싶어 드디어 모든 파트의 현악기가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플룻이 다시 멜로디를 이으며 트럼펫, 호른 등 관악기가 반주로 슬슬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테너 색소폰이 굵은 통에서 나는 소리로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바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현악기는 여전히 피치카토로 자제하면서 화려한 등장을 준비하고 있다.
테너 색소폰이 물러나니 난데없이 소프라노 색소폰이 나도 끼워달라고 고음으로 치고 들어온다. 오르간도 높은 옥타브로 따라오면서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달구려 준비하고 있다. 힘이 넘치는 금관악기들이 음색을 내세우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마치 무도장 중앙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느낌이다. 이때 트롬본이 느리게 슬러로 연주하며 듣는 이를 분위기로 끌어들일 채비를 한다.
목관악기들도 질세라 일제히 관을 울린다. 밑에서 테너 색소폰이 쫙 바쳐준다. 드디어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주도한다. 부드럽지만 밀고 당기는 듯 현란한 활 짓이 느껴질 정도다. 반복이 끝나자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온다. 아직은 음색을 감추고 있지만, 한 옥타브 높은 음계로 오케스트라를 정복할 태세다. 드디어 모든 파트가 각각의 연주로 이끌면서 트럼펫이 위에서 날카롭게 분위기를 달군다. 여전히 퍼커션은 리듬을 주도하고 있다.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에 잠시 단조로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어떠한 암시라도 줄 것 같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튜바 같은 저음 악기의 붐붐 사운드는 더 커져만 간다.
드디어 막혔던 봇물이 터진 것처럼 강렬한 리듬으로 모든 악기가 최고치 음을 내며 급히 마무리된다.
감동이 밀려온다.
은은하고 잔잔하게 시작해서 후반부에 열정을 발산하게 만드는 곡이다.
아마 고등학교 3학년 때이던가, 대학 1학년 때 처음 접한 곡이다. 지금 들어도 그때 느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시작한 건지 아닌 건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떨림도 울림도 아주 작다.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열정이 느껴지는 건 라벨이 스페인 바스크족 출신인 어머니의 감성을 이어받아 그런 건지도 모른다.
▶ 볼레로 감상은 여기서 https://youtu.be/E9PiL5icw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