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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00자 생각

1200자 단상(20250310) - 봄내음

봄 봄기운 봄내음 공원 산책 북풍한설 겨울바람 흰눈

by 브레인튜너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러 집 근처 공원으로 나섰다.




공원으로 가면서 손에는 헬스 장갑을 꼈다. 별로 춥지 않았지만, 손이 시릴 것 같았다. 건널목을 지나는데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청년을 봤다. 순간 4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짝지에게 말했다.


"대학 2학년 때였나, 봄이 되었는데도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서 남색 오리털 파카 입고 다녔다. 버스 안에서 얼마나 더웠던지..."

"그런 자기를 남들은 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알았다는 게 웃픈 얘기지."


당시 부모 모두 병으로 일도 못 했다. 벌이가 없어서 살던 집을 떠나 이사하고 남은 돈으로 학비며 생활비에 부모님 병 치료비로 충당했으니 뻔한 생활이었다. 겨울에 몸을 데워주던 파카는 그거 하나였는데, 그다음 해 겨울, 모처에서 도둑맞았다.




공원에 들어섰다. 조금 걷다 보니 '봄기운'이 느껴졌다. 공원 둘레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층 가벼워 보였다. 까치는 나무 위에서 깍깍 울어댔다. 멧비둘기는 따사로운 햇볕을 쬐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있다가 강아지가 다가가니 서두르며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공원 둘레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공원 안에 있는 운동장에서도 반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꼭 그래야 한다는 법칙도 없는데 그리한다. 공교롭게도 민족 최고의 오락(?)인 '고스톱'의 방향과 일치한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한동네에서 살고 있다. 산곡동山谷洞, 말 그대로 산골짜기 마을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북풍한설北風寒雪을 자연스레 느끼고 보면서 자랐다. 지금은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였다. 겨울바람은 건물 사이에서 이상 강풍으로 바뀌고, 뽀드득한 눈은 염화칼슘과 자동차 분진에 섞여 순백의 미美 충분히 누리지 못할 정도다.


청소년 시절, 동네에서 느꼈던 봄기운은 이제 없다. 나무숲이 있는 공원이나 가까운 동산에나 가야 '봄 내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다'는 옛 시인의 말이 무색하다 싶다. 오감五感으로 기억하는 추억거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니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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