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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00자 생각

1200자 단상(20250311) - 미생

미생 완생 웹툰 TV드라마 윤태호작가 자기객관화

by 브레인튜너

인생은 未生?




윤태호 작가는 장그래를 비롯한 여러 인물을 그리며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의 현실을 보여줬다. 장그래는 나의 사회 초년생 모습을, 김대명, 오상식, 김부련은 회사 조직에서 몸부림쳤던 때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미생이 TV 드라마로 나왔을 때,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인물의 특성, 대사, 내용의 디테일 등 뭐 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드라마는 원작 만화보다 더 감정을 헤집어버렸다.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 해 설날 연휴 때 몰아서 본 기억이 난다.


회사는 떠난 지 10년이 되는데도 가끔은 꿈에 나타나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의 마지막 세대의 회한悔恨이 남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중반부터 50이 되기 바로 전까지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공력功力에 자부심이 남았거나...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後悔해서 그럴 거다.




어제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오랜만에 동네 행정복지센터 3층에 있는 꿈나무도서관에 들렀다. 문학 서가를 둘러보던 그때, 미생 10~14세트를 발견했다. 마음이 착잡하고 머리도 복잡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다섯 권을 다 봤다. 각 인물은 자기만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해석했다. 하지만 작가는 예전의 1권부터 그랬듯이 에피소드마다 등장인물을 객관화하는 클리셰를 활용했다. 설명도 길지 않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특정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등장인물 간에 상호 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장그래 씨! 어디서 동정질이야? 한 가정의 가장한테. 누가 누굴 동정하고 있어?"




그동안 내 인생을 항상 주관적으로만 생각했다. 가치관, 신념, 철학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인정한다. 육신이 쇠하는 것처럼 정신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들을 다 털어버려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미생이든 완생이든 얽매이지 않고, 내 인생을 덤덤하게, 자유롭게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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