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음이다. 이랬던 때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얗고 텅 빈 공간. 그림자도 지지 않는 이 사각형의 안에서
이 안은 진공 상태와 같다.
겨우 없어지지 않을 만큼의 존재만 남아있다.
앞도 뒤도 옆도 위도 없는 공간에서.
육체의 감각은 더 이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을 느끼지 않았다.
다 해진 귀퉁이의 자신과 말라죽어버린 시간의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고,
당신은 그것이 삶의 증거인지 죽음의 증거인지 알 수가 없다.
아주 작은 틈이 있다면 그곳으로 기어가겠다.
빛이라는 것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화분, 버려진 허물, 남겨진 철근 콘크리트, 멈춰버린 시계에 부딪혀
난반사된 빛은 모이지 못하고 허망하게 흐트러져, 무엇이 세상이고 무엇이 길이었는지 잃어버린다.
길은 언제 다시 생기는가. 억지로 남겨놓은 흔적과 가야 할 길을 아는 선명함은 다른 것이다.
여전히 바닥이 없다. 천장이 없고, 앞은 무한하기에 있다고 정의하기 어렵다. 옆도 그렇다.
희미하게나마 존재만이 남았으니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