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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Apr 19. 2016

인소: 질문 금지

세상에는 답이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오늘 어땠어?”  

   

집에 돌아온 남편은 나의 물음에 대꾸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 늘어난 반팔에 사각팬티만 걸친 채로 나와 소파에 앉으며 “똑같지 뭐. 별일 없었어.”


그 뒤로 저녁은? 먹었어. 빨리 씻어, 이것만 보고. 안 잘 거야? 먼저 자. 따위에 교복같이 정해진 대화로 이루어진 결혼 생활을 7년째 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나처럼 남편도 아이도 없이 자기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즐기러 온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자 조용히 책을 보고 있기도 하고, 브런치를 즐기는 여자도 있다.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서 자기 자신 이외에 온갖 가족의 험담을 늘어놓는 무리들도 있으며,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창가는 이미 나 같은 아줌마족으로 만원이라 인적 드문 카페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지금부터 딱 두 시간의 자유가 허락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보물 같은 시간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만이 오롯이 내가 나에게 원래의 ‘나’ 임을 인정해 주는 시간이니까.

어떤 날은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책을 빌려 보거나 어떤 날은 또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잠시 앉아있다 보면 금세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오곤 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익숙한 듯 나는 기계처럼 일어나 컵을 다시 반납하고 안녕히 계세요 라고 함과 동시에 문을 밀고 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줌마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에 대한 원망이나, 도대체 나의 인생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에 대한 물음이나, 나는 더 이상 여자의 매력은 없는 걸까 라는 자책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쏟아져 나오는 여자들 무리를 보며 나만 이렇게 사는 걸까 라는 비교 따위도 하지 않았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무념무상과 무의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예전처럼 더 이상 나를 구원하기 위해 매달리지 않았다.


 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늪지대에 잠겨있는 듯 숨이 막혀왔다. 입으로 코로 눈으로 귀로 내 모든 오감의 구멍 속으로 검은 뻘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답이 없는 물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보면, 아이는 나의 다리에 매달려 얼굴이 엉망인 채로 울고 있었고, 집안은 원죄의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처럼 쓰레기장으로 변해있었다.


일 년 전부터 집에 돌아온 남편은 늘 피곤해했고, 그 어떤 상태를 보여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묵묵히 다음 날 자신의 일을 하러 갔다. 어쩌면 남편도 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이 아닌 무의식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도 문을 밀고 들어오고, 옷을 벗고, TV를 보고, 씻고, 잠이 드는 순서에 따라 어떤 물음도 없는 늪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아무도 날 구원해 줄 사람은 없었다.     


“오늘 어땠어?”

섹스가 끝나고 난 후 남편은 휴지로 대충 닦으며 묻는다. 나는 아무 대꾸 없이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온 후 이불속에 들어가며 “좋았어.”

그 뒤로 우리는 아무런 대화 없이 잠을 잔다. 돌돌돌 돌돌. 지난여름 마트에서 아이가 갖고 싶다던 햄스터 한 마리가 거실에서 정신없이 챗 바퀴를 돈다. 살 때는 몰랐지만 햄스터는 야행성이라 밤이 되면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돌돌돌 돌돌. 미친 듯이 쳇바퀴 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돌돌돌 돌돌. 나는 옆으로 이불을 돌돌돌 돌돌 말아 누었다. 미칠 듯이 잠이 안 오는 어느 밤 , 가끔은 왜 챗바퀴를 그렇게 미친 듯이 돌리는 거니? 하고 물어보고 싶다. 그럼 아마 이렇게 대답하겠지.    

  

저는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아서요. 봐요. 여긴 너무 좁잖아요. 누구라도 그럴걸요?     


연애 시절, 나도 남편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존재했다. 존재했던 것 같다. 우리는 같이 하는 것과 혼자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상의했다. 가령 예를 들면, 나는 커피숍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남편은 매주 한 번 자전거 클라이밍을 한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날로 정해두고 그 날만큼은 철저하게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결혼을 한 후에도 철저하게 지켜졌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후로 나는 한 달에 한 번도 혼자만의 하루를 보낼 수 없었다. 아이는 너무 어려 24시간 나의 손이 필요했고 남편 역시 남편대로 휴일엔 아이와 시간을 보내거나 내가 혼자 할 수 없었던 일을 도와야 했다. 아이 때문에 혼자 마트 가는 일이 불가능해지고 남편이 쉬는 날 몰아서 장을 봐야 했다. 남편은 아이의 애교에 늘 피곤한 내색 없이 아이를 이뻐했다. 나 역시 힘들긴 하지만 아이 때문에 웃는 날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이가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


남편은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두 달에 한 번은 클라이밍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은 커피점에 가는 자유를 누렸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게 뭐라고. 부모가 된 후로, 그 전에는 당연시되던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내가 정말 그래도 될까?라는 마음의 짐으로 바뀌곤 했다.


결혼하기 전,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쿨한 부부가 될 거라고 착각했었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가 결정하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 삶을 계속 누려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오히려 더 사소한 사람들이었다.    

  

그래. 웬일인지 나는 결혼 한 후로 너무나도 사소한 인간이 되어갔다. 창틀에 먼지보다 더 더 작은 생각을 가진 질문 기계 같은 인간 말이다. 남편이 왜 양말을 침대 밑에 숨겨두는지, 칫솔은 왜 변기 위에 올려져 있는지, 집에 오면 왜 TV만 보고 있는지, 퇴근 후에 왜 씻지 않고 그냥 자려고 하는지 등 나는 모든 남편의 행동에 <왜>라는 단어가 붙어 버렸고, 그것은 너무나도 사소하고 사적인 것에 까지 파고들었다.      


왜왜왜 왜 왜!      


매 순간 수많은 왜들로 나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남편의 습관을 부정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그러는 넌 <왜> 그러냐며 못 견뎌했다. 문제를 만드는 건 나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런 남편의 <왜>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몸서리치게 외로웠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일에서 큰 일까지 뚜껑이 전혀 맞지 않는 반찬통 같은 결혼 생활을 해나갔다. 결국 서로의 감정은 벌어진 틈새로 우루 룩 다 쏟아져버리고 매일 덜그럭 덜그럭 거리는 불협의 소리가 늘 집안 틈새 깊숙히 울려 퍼졌다.      


결혼 1년 만에 나는 아이를 임신한 후로 더욱 예민해져서 매일 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어떤 날은 남편을 원망했고 어떤 날은 나를 원망했다. 어떤 날은 지나간 계절이 죽도록 미웠고, 어떤 날은 앞으로 다가 올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울고 또 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어느 날부터 굳게 입을 닫아버렸다. 사람 무시할 거면 왜 같이 사냐는 악다구니를 뱉어내던 나는 더 큰 소리로 울었고, 그 뒤로 남편은 고장 난 프린터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뱉어 냈다.


그나마 내가 위안을 받았던 건 임신한 지 8개월쯤 됐을 때였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다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또 어떤 친구는 반복을 견디지 못 해 결국 다시 혼자의 삶으로 돌아간 친구도 여럿 있었다. 비슷한 친구를 보며 또는 나보다 더 못 한 친구를 보며 나는 위안을 받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누군가의 비극은 누군가에겐 희극이었다. 우리는 남의 불행 위에 행복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든 누군가 내 위에 행복을 짓기만 하면 내 행복은 불행으로 바뀌었다.  

   

나는 아이를 출산하고 3살까지 나는 끝이 뾰족한 날카로운 송곳처럼 예민하게 살았던 것 같다. 아이는 너무 연약했고, 많이 울었고, 자꾸 아팠다. 그러다 아이가 말을 하고 애교가 늘어갈 무렵부터 나의 끝도 점차 무뎌졌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푹 빠져버렸다.


세상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제일 예쁜 것 같았고 나는 남편에게 부리던 사소한 관심들을 아이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무엇보다 내 아이가 우선이었고 다른 결정들은 뒤로 밀려났다. 남편 역시 아이가 아빠를 따르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자 일찍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우리의 삶도 안정 괘도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행복하면 오히려 숨어있는 불안감을 불러 내려하는 게 인간이다. 이 완벽한 하모니 속에 혹시 어딘가 빈 구석은 없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웃을 수 있을까? 모든 게 잘 되고 있는 데 왜 마음이 허전한 건지? 작은 행복에도 분명 어딘가 틈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메우고 싶어 늘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지금 안개가 너무 심해서 오늘 출발 못 할 것 같아. 내일 일찍 갈게. 먼저 자.”     


늦은 밤, 남편은 대관령으로 클라이밍을 간 뒤 오늘 돌아오지 못 한다는 전화를 했다. 나는 조심히 오라고 했지만 왠지 불안했다. 언제부턴가 남편이 외박하는 횟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잠깐 동안 설마?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에이, 내가 미쳤지. 별 생각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얼굴을 살피면 늘 같은 패턴에 같은 얼굴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었고 내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별 다른 사항은 없었다. 하지만 외박이 잦아지는 남편을 반가워할 부인이 어디 있을까. 나는 더 이상 외박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좋아서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돌돌돌 돌돌. 전화를 끊자 거실에서 햄스터가 열심히 챗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햄스터야, 햄스터야. 매일 같은 짓을 하면 더 미칠 것 같지 않니?     


*


“오늘 어땠어?”     


다음 날, 점심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늘어난 티셔츠와 사각팬티를 걸친 채 나와 소파에 벌렁 누우며 “재밌었어.”

아이는 낮잠이 깨자마자 아빠를 찾아댔고 남편은 아이와 잘 놀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와 남편을 위해 간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끈덕지게 숨어있는 불안한 마음은 그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기폭제처럼 늘 내 마음에 스위치로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스위치란 녀석은 언젠가는 누르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겨울 아침이었다.     


남편은 새벽에 짐을 챙겨 클라이밍을 하러 대전으로 떠났다. 나는 아이를 낮잠 재워두고 뜨거운 물을 올려 커피물을 끓였다. 집안에 퍼지는 알싸한 커피 향이 머릿속을 개운하게 깨웠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깬 것은 방에서 울리는 남편의 전화벨이었다. 어?라는 생각과 남편이 핸드폰을 두고 가서 확인하려고 전화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대전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전화기는 침대 밑에서 충전기에 꽂힌 채로 불을 반짝거렸다. 나는 아이가 깰 까 봐 냉큼 집어 들어 전화를 받았다. 이름이 찍히지 않은 번호였다.

    

“여보세요.”

“... 어? 저... 김중석 씨 핸드폰 아닌가요?”     


처음 듣는 여자의 앳된 음성이었다. 너무도 맑은 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심장까지 들어왔다.      


“아, 핸드폰을 두고 갔는 데 누구세요?”

“저...”     


그녀는 이상한 말들을 풀어 놓았다. 한참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나를 협박하기도 했다. 나는 미친 여자가 아닐까 하고 전화가 끊어진 뒤에도 잠시 동안 머리가 멍했다.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남편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내 파일에 들어가 동영상 폴더를 열었다. 뭐지... 수십 개의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나랑 사진도 잘 안 찍으려고 하는 사람인데 설마...


나는 영상을 하나 클릭해 열어보았다.


헉!     


이상한 소리, 너무나 흔들리는 카메라, 찢어질 듯한 소음들... 무슨...? 킬킬 거리며 간간이 들려오는 목소리... 남편의 목소리... 익숙한 남편의 목소리.    


쿵쿵 쿵쿵 심장이 제멋대로 마구 날뛰었다. 호흡이 가빠져 나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뭐지? 뭐지?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는 고장 난 컴퓨터처럼 아무것도 화면으로 출력해 내지 못 하고 버벅거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른 영상도 틀어보았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다른 것도, 또 다른 것도... 핸드폰에 저장된 수십 개의 파일이 모두 비슷한 영상이었다. 이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그때,     


“엄마, 뭐 해?”     


으아악!!!!!!!!!!!!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털썩 뒤로 나가 자빠졌다. 남편 얼굴을 한 아이는 눈도 채 뜨지 못 한 채 아빠가 선물해준 자신의 토끼 인형의 귀를 한 손에 꼭 비틀어 쥐고 문 앞에 서있었다.      


“아, 놀래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왜 벌써 일어났어? 자자. 응? 다시 자자.”

“엄마 나 배고파.”

“응응, 잠깐만 기다려.”      


나는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처음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두었다.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면 어떻게 될까? 그 여자의 말은 진짜인가? 그 여자의 말을 믿을 이유가 뭐야! 이 영상들은 도대체 다 뭐지? 그냥 어디서 받아 놓은 자료들이 아닐까? 아니야. 분명 남편 목소리야.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 애기는? 그냥 모르는 척 할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아냈다면 어떻게 될까? 진짜 그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모른 척하는 게 좋을까? 어차피 전화를 걸은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텐데. 아니야. 모를지도 몰라. 아니야. 시간문제야. 아, 모르겠어...       


“아 뜨거워!”     


생각에 우물에 빠져 허우적 대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을 되었다. 금세 벌겋게 부어오르는 손가락을 재빨리 싱크대로 가져가 찬 물에 받쳤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분노가 일었다. 당신 도대체 누구니? 김중석 내 남편 맞니? 10년 동안 내가 알던 남자 맞는 거니? 갑자기 눈 앞이 흐려지면서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울음 놀란 아이가 멍하게 날 보고 서있었다. 아니야 엄마 아무일도 아니야.

너무 뜨거웠고, 가슴 한쪽이 아팠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삐리릭.

그때 신경질 적으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눈물을 훔쳐 닦았다. 쿵쾅쿵쾅 느슨해졌던 호흡이 다시 살아나 부산하게 가빠졌고 아이는     


“아빠다. 아빠 아아”      


하며 식탁에서 현관으로 뽀로로 달려 나갔다. 여보, 어딨어? 여보 혹시 내 핸드폰 못 봤어? 나는 주방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 불쑥 찬 기운을 내며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섰다.     


“여보 왜 대답을 안해? 어?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있었어? "

"아, 아니, 후라이팬에 손을 디어서."

"아빠 아빠, 엄마 엉엉 울었어."


남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 많이 다쳤어? 어디 좀 봐봐."


다가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감추며 뒷 걸음질 쳤다.


"아니, 아니야. 조금 놀래서 그래."


남편은 날 쳐다봤다.


"내 핸드폰 못 봤어?"


남편은 내 눈을 살폈다. 나는 심장이 떨려 나도 모르게,

 

“어? 어.. 어... 아까 애 낮잠 자는 데 벨 소리 울리길래... 방에...”     


순간, 남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아 식탁 의자를 짚었다. 나는 의연한 척하고 싶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그 전화 받았어?"


남편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우리를 멀뚱이 쳐다봤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숨이 막혔다.


"다 들었구나? 이거, 원 쪽팔려서.”          


남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들었다는 거지? 뭘 말이야? 그거 당신이야? 그거 진짜야? 하지만 나는 되묻지 못 했다. 내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게 직감처럼 느껴졌다. 집안의 모든 공기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멈추고, 거대한 압력이 나를 짓누른다. 돌돌돌 돌돌. 거실에는 미친 듯이 살기 위해 달리는 햄스터 한 마리 그리고,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 한 낯선 남자의 눈빛... 아...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없었다.


 세상에는 답이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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