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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an 06. 2019

만약

"만약 너가 강릉으로만 가지 않았다면 난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너와 똑같이 생긴 아이 둘과 함께 강릉으로 왔어. 나는 지난밤 숙취가 풀리지 않아 부랴부랴 나와서 조금 부끄러웠지. 몇 시간을 달려 온 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때 내가 너의 곁에만 있었다면 넌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었어.


그 말은 왠지 듣기 좋기도 하고 마음이 캄캄해지기도 했어.

누구보다 너에게 그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고 한 게 나였으니까. 그 정도 사람이면 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 결혼하는 게 좋겠다고.


오늘 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지.

너의 가장 중대한 인생의 결정에 내가 너무 큰 영향을 끼친 거 같아서 말이지. 알아. 내가 만약 너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내가 일산으로 가지 않고, 내가 강릉으로 오지 않고, 조금만 더, 만약 조금만 더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더라면. 


너에게 아직은 이르다고, 꽃다운 청춘을 같이 보내자고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넌 아마 내 말을 들었겠지. 너에게 난 그런 존재였고, 나에게 넌 그런 존재였으니까.


"결혼하면 사랑이 지겨워지거나 그렇지 않니?"


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너는 가족은 지겨워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 끄덕끄덕. 너의 말을 들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어. 그래. 넌 그런 사람이야. 넌 언제나 한결같이 마음을 퍼주는 사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이해하는 사람, 겁쟁이 쫄보면서 대범한 척 남부터 챙겨주던 사람.


너의 결혼식날 이층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널 보다 나는 울어버렸어. 그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야. 너는 급하게 결혼했고, 내 빈자리를 누군가로 채워야 했고, 홀로 어른이 되었지.


난 아직 여기 이 자리에 있는데 말이야.


너랑 똑같이 생긴 아이를 보니까 왜 이렇게 이쁜지. 

또 왜 이렇게 순하니. 


결혼 전 함께 갔었던 부산에 다시 가고 싶다던 너와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너, 그 두 마음을 가진 너가 학부모가 되어 내 앞에 앉아 있었어. 나는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그냥 계속 아이랑 같이 내려오라고, 내가 아이들 다 봐줄 테니 걱정 말고 그냥 오라고, 이런 말 밖에 해줄 수가 없었어.


혹시 너 그때 사진 갖고 있어?


우리가 찍은 사진은 지난 집 컴퓨터에 버려두고 왔다고, 이사 들어오는 아저씨에게 3만 원에 팔았다는 소리를 실없이 하며, 혹시 내게 우리 두 사람의 사진이 있냐고 물었지. 글쎄. 그러게. 난 팔아먹은 적도 없는데.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은 모두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선택이란 참 무섭고 어려운 일이야.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너무 많아. 

보고 싶었고 잊고 살았고 다시 보니 간절해지는 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지.

마음처럼 쉽지가 않네.


@클레멘타인



연안으로


연안으로 가 봅시다 연안으로 밀려오는 너를 보러 나는

연안으로 건너가 봅니다 너를 마주한 나를 만나러 연안으로

나를 흘러가 봅니다 네게 잠들기 직전이라고 말해 주러



그런 내게 너는 물을 밀고 땅을 밀었다고 합니다 밀다가 

놓쳤다고 합니다 밀려오는 중에 갈 곳을 잃었다고 합니다 나

는 그런 네게 사이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멀어져서


너무 멀어져 버렸다고 그러니 나를 흘러가라고 말합니다

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안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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