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서 무엇이 될 것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언제라도 대답할 만한 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다. '꿈'을 묻는다고 하지만 그런 질문은 한결같이 '장래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직업군을 묻는 것이었다.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은 결국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며(밥벌이를 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던 거다. 그래서 반에 몇 명은 시류에 따라 판사, 변호사, 의사 그리고 꿈을 크게 가진 초등시절의 친구들은 대통령도 있었던 거다. 대통령이었던 장래희망은 중고등을 지나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누군가의 꿈은 9급 공무원이 되기도 했다
며칠 전 몰아보기로 봤던 OCN의 '타임즈'라는 타임 루프 드라마에서 현재의 여주인공인 대통령 후보자의 딸은 통신장애가 일어난 어느 날, 5년 전의 기자와 연결된다. 그리고 측근에 의해 살해되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막아달라고 간청한다. 20대의 또는 30대의 나에게 전화로 연결되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미리 알려줄 수 있다면 어떨까. 조금 더 여유롭게 살라고, 다른 결정을 해보라고 조언해 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의 어리석은 생각과 결정들을 바꿀 기회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타임 루프 영화와 드라마들, 영화 '프리퀀시'나 드라마 '시그널'과 마찬가지로 '타임즈'에서도 비극적인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행복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상하지 못하는 파급효과로 인해 상황은 더 나빠지고 악화된다. 우리는 세계의 일면밖에 알 수 없고 사건과 상황을 둘러싼 인과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장래희망을 아무도 묻지 않는 나이가 됐다. 그런 나이의 내가 미래의 인생을 스케치하려 한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전화를 건다. 80세가 된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을까. 아니 현재의 나는 80의 나에게 무엇이 궁금할까. 더 늙으면 어떤 기분이니. 편안해졌니? 세상의 지혜를 환히 알게 되었니? 80의 나에게 기대할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노인을 지혜롭다고 존경하지 않는 시대 아닌가.
어쩌면 지금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더 많이 웃어. 책을 보는 대신에 길을 더 많이 걸어 다녀. 더 바보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돼. 어떤 결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너의 인생을 살기만 한다면.
나의 앞으로의 인생 스케치는 미래의 나에게 주는 그 조언을 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