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름 Oct 05. 2019

주홍글씨 낙인, 떨쳐버린 여자

게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마흔 살 하원의원 레빈과 스무 살 인턴 아비바는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때 알츠하이머를 앓던 할머니가 운전하던 차가 두 사람이 탄 차를 박는다. 차는 찌그러지고 할머니는 죽은 것 같고 아마 곧 두 사람은 병원으로 실려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차 안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누구이며, 또 어떤 관계인지. 손목이 조금 삔 레빈이 목이 조금 다친 아비바에게 차 안에서 말한다.


"미안해, 아비바."


아비바가 뭐가 미안하냐고 묻자 레빈은 이렇게 대답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마흔 살 유부남 하원의원과 스무 살 대학생 인턴 아비바의 불륜은 지역 사회를 강타했다. 그런데, 슬프게도 예상 가능하듯, 지역 사회의 너저분한 관심은 전망있던 정치인 레빈은 가볍게 비껴가고 먼저 레빈을 유혹했을 게 분명한 아비바에게만 쏠린다. 아마 레빈은 알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불륜이 세상에 알려지면 이 세상이 자신과 아비바를 어떤 식으로 극명하게 '차별'할지를.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던 것이겠지.


개브리얼 제빈이 쓴 <비바, 제인> 속 세상은 불공평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여자와 남자를 향한 세상의 이중잣대는 너무나 뻔해서 입 밖으로 끙 소리가 나올 정도다. 레빈의 정치 생활은 끄떡없었다. 그는 마치 지나가다 돌부리에 넘어져 무릎 조금 깨진 것 정도로 스캔들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상처는 금방 아물었고 차차 아무도 그의 매끈한 정장 바지 속 흐릿한 흉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매력 있고 능력 있는 정치인이었으며, 이후로도 10선 의원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아비바는 아니었다. 거대한 파도가 한 순간에 덮치더니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녀는 흠뻑 젖은 몸으로 덜덜 떨며 세상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수군댈 뿐, 아무도 다가가 그녀 어깨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하원 의원 사무소에서도 쫓겨나고, 학교에서도 휴학을 종용당했으며, 겨우 졸업을 했는데도 아무 곳에도 취직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확실히 '레빈 게이트'가 아니라 '아비바 게이트'였다.


사건이 벌어지고 15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비바에게는 잊혀진 권리가 없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비바는 여전히 '그 때의 그 불륜 여자애'였고,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레빈의 불륜과 아비바의 불륜은 다른 식으로 해석된 채 남아 있었다. 아비바의 엄마 레이철이 데이트 어플을 통해 만난 노년의 남성 또한 그때의 그 사건을 이런 식으로 떠벌렸다(물론 레이철이 아비바의 엄마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 여자애는 완전 모니카 르윈스키였어요. 그 여자애는 하원의원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했죠. 내 보기에 그 여자앤 권력과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달려든 거예요. 아니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행실이 단정치 못하고 몸매는 좀 많이 풍만하지만 얼굴은 예쁘장한 그런 여자들 있잖아요."


"진짜 수치였어요. 레빈은 입지가 탄탄한 하원의원이었거든요. (중략) 그 여자애만 아니었다면 레빈은 첫 번째 유대계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는데."


세상에 알려진 건 이것뿐이었다.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쉽게 단정했다. 분명 아비바가 레빈을 유혹했을 거야. 마치 그녀가 그와 사랑에 빠지기 전부터 세상은 답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던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증거가 있었냐고? 물론, 없었다. 만약 증거라면 아비바의 큰 가슴, 예쁘장한 얼굴 정도. 그렇게 아비바는 하루아침에 ‘꽃뱀’으로 전락했다. 세간의 관심이 어린 꽃뱀에게 쏠려 있는 사이, 레빈은 스리슬쩍 뒤로 빠져 점잖은 태도로 흐름을 관망하다가 자신이 지금껏 누려오던 일상 속으로 다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두 남녀는 같은 실수를 했다. 어리석은 실수였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선 같은 처지였다. 그런데 이제 처지가 달라졌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어떤 실수는 여자에겐 주홍글씨가 되어 그녀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같은 실수도 남자에겐 그저 '한 번의 실수'가 된다. 세상은 여자의 실수엔 유독 더 가혹하다. 쉽게 여자를 모욕하고 흉본다. 하지만 남자의 실수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때론 세상이 남자 대신 그의 실수를 덮어주려고까지 한다. 그의 창창한 앞날을 걱정해주고, 그의 능력과 재능을 과대평가해주며, 그가 가장이라는 사실을 염려해준다. 


성추문에 휘말린 여자에겐 더없이 가혹한 잣대가 가해진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빌미가 된다. 그녀의 몸매, 태도, 말투, 눈빛 하나하나가 세상의 무자비한 시선에 걸려든다. 슬럿 셰이밍(여성의 옷차림이나 품행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낙인을 찍는 성차별 프레임 중 하나)이다. 그래서 레이철은 열이 받는다. 뭐 이런 개떡 같은 세상이 다 있나. 15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딸애의 실수. 딸애는 15년간 충분히 괴로웠다. 그런데도 세상은 딸애에게 여전히 잔인하다. 화가 난 그녀는 첫 데이트에서 자신의 딸을 모욕한 허풍쟁이 남자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레빈은 성인 남자이자 선출직 공무원이고 내 딸은 사랑에 빠진 철부지였는데, 레빈은 결국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내 딸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군. 뭐야, 그리고 십오 년이 지났는데, 어째서 그 애가 또 다른 꼰대의 농담거리가 돼야 하는 거지?"


시장 선거에 출마해보는 게 어때?


<비바, 제인>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지적이고 재치 있다. 무겁게 끌어갈 수 있는 주제를 위트와 지루하지 않은 구성과 화끈한 태도로 능숙하게 돌파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여전히 무겁다. 낙인찍힌 여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과연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지, 과거의 실수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결론은 분명하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 또한 자신의 몸에 새겨진 낙인을 지워버릴 수 있고, 과거를 넘어서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며, 그 누구의 인생에도 새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소설은 말한다.


몇 개월에 걸친 미디어의 추적과 대중의 집요한 관심 후에도 아비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이애미를 벗어나 취직하려 해도 인터넷 세상 속에서 아비바의 이름은 추문에 휘말린 '걸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어서려면 과거의 모든 것과 결연할 수밖에 없겠다고. 그녀는 새로운 장소인 메인 주에서 새로운 이름인 제인 영으로 새로운 삶인 행사 기획자의 삶을 시작한다. 살아가기 위해선 아비바란 이름도, 정치인이란 꿈도, 따뜻한 가족의 사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경력도, 결혼 생활도, 대중의 관심도 모두 지킬 수 있던 레빈과는 달리.  


행사 기획자로서의 삶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사랑스러운 딸 루비와 단출하고 씩씩한 삶을 살아갔다. 사람들은 제인 영을 신뢰했다. 그녀는 단단하고, 자신 만만하고, 틈 없어 보이면서도 유연하고, 또 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모건 부인이 제인을 좋아했다. 동네의 절반과 언론사를 소유한 최고 부자 모건 부인. 그녀의 눈에 제인은 행사 기획자로만 남아 있을 인재가 아니었다. 모건 부인은 제인에게 제안한다. 제인, 시장 선거에 출마해보는 게 어때?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모건 부인이다. 모건 부인은 연기자로 치자면 분량 적은 씬스틸러다. 그녀가 나온 모든 장면이 좋았다. 모건 부인은 현실에선 쉽게 보기 힘든 '어른'이다. 사안을 정확히 보면서 현명하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늙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안다. 젊고 능력 있는 인물을 뒷받침해주고, 그 결실엔 욕심부리지 않기.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인물만 나오면 왠지 안심이 되곤 하는데, 모건 부인이 딱 그런 인물이다. 그녀라면 모든 알고, 모든 해결할 것 같다.


만약 이 소설이 기존의 흔한 로맨스 소설이었다면, 아마 모건 부인이 맡은 역할은 남자 주인공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의 여자 주인공을 구원해줄 영 앤 리치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 대가로 제인 영은 그에게 반해야 할 것이고, 또 그를 사랑하게 되겠지. 자신을 뒤에서건 앞에서건 도와준 남자를, 자신보다 어느 면에서든 우월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 역시 우리 여자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역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모건 부인의 우월함은 그녀 자신의 매력 자본으로 이용되지 않는다. 부인은 자신이 갖추고 있는 우월한 힘으로 여성 간의 연대를 이끌어낸다. 모건 부인은 제인의 손을 잡아준다. 제인 영의 분별 있는 태도, 정확한 일처리가 마음에 든다. 지지해주고 싶다. 이 젊은 여자를 훨훨 날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제인의 등을 가볍게 떠민다. 뒤에서 말한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그러니 너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보라고.


어쩌면 모건 부인은 제인의 과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준 최초의 타인일지도 모른다. 모건 부인은 아마 알았을 것이다. 제인 영이 아비바로서 겪은 모든 일을. 여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모든 부조리를. 모건 부인은 가부장적 시스템 내에서 여성의 삶이 어떤 식으로 깎아내려져 왔는지, 어떤 식으로 쉽고 가볍게 취급되어 왔는지 아는 여성이다. 여성과 연대하는 여성은 시스템을 이해하는 여성이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힘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과거의 어느 순간, 세상을 다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다시 찾을 수도 있다. 내 손을 꼭 잡아주는 그 사람만 있다면. 모건 부인의 지지에 힘입은 제인 영은 시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어린 시절의 꿈을, 자신의 능력을 지켜내기로 한다. 그녀는 다시금 과거의 일들 때문에 손가락질 받아야 할지도 모르고, 또 수많은 지저분한 질문들에 답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인 영은 이겨낼 수 있다고 느낀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던 스무 살의 어린애가 아니다. 도망치기만 했던 어린애가 아니다. 제인 영은 딸에게 말한다.


"난 그때 일이 부끄럽지 않아, 더 이상은."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하다


소설을 읽을 때면 유독 어떤 대목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 대목 안 읽은 사람 없게 해 주세요, 하고 외치고 싶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대목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대목이다. 제인 영이 투표 날 자기 자신에게 투표하기 전, 지난밤 꿈 내용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어젯밤 당신의 꿈에 아비바 그로스먼이 나왔다. 꿈에서 그녀는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가슴을 활짝 편다. 정장 재킷의 단추를 여민다. 머리칼을 단정히 쓸어 넘긴다.

당신은 투표지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고, 선택한다.


꿈속에서 아비바는 달라져 있었다. 제인 영이 과거의 어느 순간에 어쩔 수 없이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사라져야 했고, 지워져야 했던 아비바가 아니다. 아비바는 강해져 있었다.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아니,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한다. 추문에 휘말린 여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제인 영 또한 과거의 자기 자신을 수치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꿈속 아비바는 이제 사람들의 시선 따윈 두렵지 않다. 아니, 두렵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있었다. 타인의 발을 걸어 넘어 뜨리려는 사람들, 넘어진 사람의 고통 어린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 사람들, 내가 겪지 못한 삶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들, 일상의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대신 타인의 삶을 판단하는 데 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늘 있었고, 그 사람들은 또 언제고 아비바에게 덤벼들지 모른다. 그러니 그녀는 이들을 두려워하느라 그녀의 하나뿐인 인생을 포기할 필요 없는 것이다. 발이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는 것, 꿈속 아비바가 제인 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제인 영, 계속 가, 너의 길을, 너가 가고 싶은 길을.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당연히 울었고(나는 소설을 읽으며 거의 늘 우는데, 1소설 2울음이 평균이다) 마치 내 친구를 응원하듯 제인 영을 응원했다. 그녀가 과거를 깨끗이 넘어서기를, 더는 과거가 그녀의 앞길을 막지 않기를. 그리고 이 응원은 나를 향한 응원이기도, 이 세상 수많은 제인 영을 향한 응원이기도 했다. 세상의 이중잣대가 우리의 심장을 겨누더라도 주저앉지 말기를. 당당히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강인한 힘으로 이중잣대를 꺾어버리기를. 우리 모두 그럴 수 있기를.


제인은 이제 그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다시금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됐다. 과거의 잔상에 끌려다니는 그녀가 아니라, 주홍글씨가 새겨진 그녀가 아니라, 영특하고 재능 있고 멋진 자기 자신으로서의 그녀가 됐다. 그녀는 아비바로 불리던 과거, 제인 영으로 불리는 현재를 뛰어넘어, 이젠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됐다. 서투르고 미숙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층 성숙하고 무르익은 어른이 된 여자. 이제 그 여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당당히 '비바!'(잘한다!)하고 외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성별 차이 없이.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수많은 제인 영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도 있다. 손을 내민 우리는 그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라고, 나 역시 실수투성이 인간일 뿐이라고, 실수한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실수를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그리고 이 말은, 우리가 실수했을 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해줬으면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이전 04화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