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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Dec 30. 2021

돈룩업-트럼프 시대를 관통한 미국의 블랙코미디

애덤 멕케이는 미국의 자본과 정치 권력의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재앙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언급이 많이 되는 빅쇼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미국의 금융 자본 카르텔을 지목하여 탐욕에 찌든 금융 자본주의 사회 미국의 만낯을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마이클 무어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미국사회의 민낯을 폭로한다면 애덤 멕케이는 영화의 형식을 빌어 같은 일을 한다.      



빅쇼트가 금융위기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미국 사회의 문제를 폭로하였다면, 돈룩업은 혜성의 지구 충돌이라는 가상의 사건이 배경이지만 실제로는 얼마전 미국이 겪었던(지금도 어느정도 겪고 있는) 리더쉽의 위기와 이로인한 심각한 정치적 분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혜성의 지구 충돌 소재의 영화는 미국에서 1998년에만 두 개의 작품이 동시에 나왔다. 아마겟돈과 딥임팩트. 영화의 포인트와 사건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미국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전지구적 위기에 가장 선제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미국이고 이들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며, 미국인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구는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블록버스터를 통해 자국 영웅주의를 전세계에 전파하는 미국의 문화 전략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당시 글로벌 리더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던 미국이 가진 자신감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로부터 약 23년이 지난 후 나온 또 다른 혜성 출동 재난 영화인 돈룩업은 이 전지구적 재난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의 모습을 앞선 두 영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백악관에 앉아있는 리더는 위기에 적극 대응하기는 커녕 이를 통해 지지율을 높일 생각만 하고 빅테크 기업의 수장은 오로지 돈벌 궁리만 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의 정치 권력과 자본권력을 상징하는 이 두 인물들의 천박함이 어떻게 전세계를 파멸로 몰고가는지를 아주 유쾌한 터치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지적하는 것은 미국의 미디어 산업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미디어 시스템을 가진 미국의 미디어 시스템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다. 시청률을 쫓느라 자극적인 내용을 주요 아이템으로 선정하고 심각한 내용도 희화시키는 쇼비즈니스 중심의 미디어 체제를 가진 곳이 미국이다. 미국의 쇼비즈니스 시스템의 천박함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영화들이 지적해왔지만 이 영화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거대한 재난 가능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도구로 오락성이 듬뿍 가미된 교양 프로그램이 선택되고 정부의 방침을 홍보하기 위해 희화화된 공익 광고를 동원한다. 리더는 자신의 오판을 진실로 믿게하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미디어를 동원해 쇼를 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정치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해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우매한 대중은 선동하는 자들의 의견에 동조한다.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전세계는 미국 사회의 우매함을 똑똑히 목도했다. 차별과 혐오를 동력으로 개인의 욕심과 분노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지지율을 얻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트럼프는 증명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제 사회의 리더가 아닌 국제 사회의 문제아로 스스로 전락했다. 비합리가 합리로 둔갑하고 합리가 비합리로 치부되는 상황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인 돈 룩 업(Don’t look up)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많은 이들이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 당시 시대를 함축하는 단어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곡 "just look up"은 슈퍼파워 미국이 우매한 대중과 무능한 리더로 인해 망가져버린 상황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아리아나 그란데의 멋진 보컬로 만들어진 이곡은 풍자와 해학의 가득한 가사로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 노래는 서로 반목하는 국민들과 이로 인해 추락하고 있는 미국을 한탄하고(We knew no bounds, Fell at the speed of sound. Ridin' against all odds, but soon against ourselves.), 제발 합리적인 사람들의 말을 믿으라고 경고(Listen to the goddamn qualified scientists.)한다. 이 노래의 압권은 노골적으로 망했다고 주장한 부분이다(We really fucked it up, fucked it up this time). 영화에서의 상황은 그것이 혜성 때문이지만, 결국 그런 상황을 만든것은 무능한 리더와 우매한 미국의 대중들 때문인것이다.



영화에 풍자와 해학을 가득 담으려다보니 사실 과장이 적지 않지만 현실에서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에 이 정도의 과장은 눈감아주고 싶게 만든다. 내가 박장대소를 하며 이 영화를 보게 된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그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곧 새로운 리더를 뽑는 큰 일을 앞두고 있다. 이 큰 이벤트를 둘러싸고 코미디 같은 일이 뉴스를 통해 계속 전달되고 있다. 그래서 남의 나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상황들이 단순히 남의 얘기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수년뒤 우리도 이 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 현실의 좌절을 해소하려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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