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네마 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물장어 Jan 25. 2023

정이-사이버펑크를 가장한 가족 신파극

설 연휴 공개된 ‘정이’가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OTT 글로벌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24일 기준으로 조사국가인 89개 국가 중 총 46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중에는 전 세계에서 SF를 가장 잘 만드는 국가인 미국도 포함되어 있다. 공개되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인데 이 정도로 전 세계적인 큰 인기를 얻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자료: flixpatrol.com

‘정이’는 흥행할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몇 안되는 사이버펑크 장르 영화라는 점, 연니버스라 부르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진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처음으로 월드스타라 부르던 故 강수연의 유작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 중 나는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사이버펑크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사이버펑크는 과학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사회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제들을 통해 정치적, 철학적 메시지를 깊이 있게 다룬다. 대표적으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등이 이러한 장르의 걸작들이라 할 수 있다. 


정이는 위의 두 걸작이 다루던 소재를 차용해 만들어졌다. AI가 고도로 발전된 시대, 인간의 뇌를 복제해 의체에 탑재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복제인간을 다루었고 공각기동대는 전자화된 뇌와 의체 등을 통해 철학적인 물음을 던졌는데 정이는 이 두 영화가 다룬 설정을 융합해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뇌를 복제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그대로 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상호 감독은 이런 설정을 통해 이렇게 복제한 뇌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개체가 과연 원주인과 같은 인격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상호 감독은 “인간성이라는 것이 인간만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지만 영화는 질문만 던지고 제대로 된 고민을 풀어놓지도 않는다. 이미 우리가 많이 보아온 작품들 속에서 여러번 반복된 질문이긴 하지만 감독 나름의 고민을 깊이있게 풀어낼 수 있었을텐데 연상호 감독은 이를 가족의 이야기로 축소시켜 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신파는 좋은 소재가 갑자기 흔하디흔한 한국적 가족 이야기로 전락해 버리게 만들었다. 부산행과 반도와 같은 좀비영화에도 신파를 등장시켜 큰 비판을 들었던 연상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파를 넣어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SF영화를 주말 드라마로 만들어 버렸다. ‘지옥’에서 종교와 믿음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준 연상호가 온데간데 없어진 것 같았다.



영화의 또 다른 문제는 모든 배경 설명을 대사로 처리해버린다는 것이다. 복제의 등급을 나누어 인격을 자본이 결정하는 비정한 사회를 의사의 대사 몇마디로 표현해버리고, 전설적인 전투 용병 ‘윤정이’의 비범함도 연구소장 김상훈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말 몇마디로 설명해버린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상당히 짧은데 이를 여러 에피소드들을 충실히 넣어서 설명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쉬운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연상호가 만드는 사이버펑크라는 점에서 참 많은 기대를 했던 작품인데 깊이 있는 사유보다는 너무 쉬운길을 택하며 대중에 영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적으로도 이해하기도 쉽고 감정적으로도 보편적인 감정을 다뤄 대중성은 어느정도 충족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이버펑크에서 의례 기대하는 좀 더 철학적인 질문과 해답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이제 외형적으로는 꽤 그럴듯한 SF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는다. ‘정이’속 미래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영화에서 보았던 그 어떤 작품들보다 진일보한 그래픽을 보여준다. 재작년 공개되었던 승리호부터 정이까지 이어지는 이 작품들은 우리 영화의 스펙트럼을 계속해서 넓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발전한 기술 덕에 우리 영화도 과거 헐리웃에서 보던 것처럼 그 외형은 잘 만들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적 고민들은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서는 단지 신체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들여져 있는 정신이 중요하듯이, 영화가 영화답기 위해서는 화려한 볼거리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들여져 있는 이야기의 깊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부디 다음번 시도에서는 보고나서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SF를 보고 싶다. 




P.S.: 내년 3월에 봉준호 감독이 복제인간 이야기를 다른 '미키17'이 개봉 예정이다. 워너브러더스가 무려 1억 5천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대작이다. 헐리웃 자본으로 헐리웃 배우들이 캐스팅 된 사실상 미국 작품이지만 한국의 걸출한 감독인 봉준호와 음악감독 정재일 등 한국 제작진도 다수 참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기대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퍼스트 슬램덩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