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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Mar 07. 2023

나는 신이다 - 넷플릭스로 간 PD 수첩

'나는 신이다'는 '피지컬 100'에 이어 MBC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두 번째 작품이다. '피지컬 100'은 MBC가 지상파라는 제약이 많은 플랫폼을 벗어났을때 얼마나 흥미로운 예능물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나는 신이다'는 MBC가 축적해놓은 폭로 저널리즘 제작 능력이 OTT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MBC의 박성제 前 사장은 MBC를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라고 재정의한 바 있다. '피지컬 100'과 '나는 신이다'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 아래 새로운 무대에서 MBC의 새로운 비전을 실체화한 콘텐츠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 폭로 저널리즘


이 작품은 국내 폭로 저널리즘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PD수첩의 제작진들이 만들었다. 김기덕 성폭행 사건 편을 만든 조성현 PD가 감독을, 광우병 소고기 사건 편을 만든 김보슬 PD가 CP를 맡았다. 이들은 그간 PD 수첩을 제작하며 축적한 폭로 저널리즘의 노하우를 이 작품에서 훨씬 자유롭게 펼쳐놓았다. 사이비 종교를 이끄는 일그러진 영웅들의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은 수많은 증언자와 증거들을 통해 촘촘히 이루어졌다. 오랜기간 동안 MBC PD 수첩팀이 모아놓은 관련 자료들과 추가로 확보한 자료들은 부한 근거들로 작동하며, 사이비 종교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치는데 큰 역할을 한다.


MBC의 내로라 하는 다큐멘터리 PD들은 OTT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심의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넷플릭스에서 사이비 종교의 교주의 추한 모습들은 가감없이 보여졌다. 교주들이 행하던 성폭행과 살인 등의 끔찍하고 선정적인 사건들은 때로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때로는 재연 화면을 통해, 때로는 실제 존재하는 증거자료를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이를 통해 사이비 종교의 기괴함, 추악함, 잔인함 등이 차고 넘치게 표현되었다. 이는 그 끔찍한 사건들의 실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였다. 영상을 보는 내내 공분하게 되고 감정들이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음란하고 잔인한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나는 신이다’는 지금까지 지상파에서 봤던 어떤 PD 저널리즘 프로그램들 보다 훨씬 영화적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폭로 저널리즘 프로그램에서도 PD 저널리즘은 기자 저널리즘과 달리 PD들이 만들다 보니 원래부터 영상 연출에 더욱 강점이 있다. 그래서 시청자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켜 폭로의 기능을 극대화한다. ‘나는 신이다’는 이러한 PD 저널리즘의 강점에서 더 나아가 영화적인 연출들도 상당히 많이 가미되었다. 증인들이 진술할 때의 화면 연출과 구도, 자주 등장하는 재연 장면 등은 꽤나 멋진 미장셴을 통해 '연출'되었다. 또한, 첫 사건인 JMS 사건에서는 두 명의 영웅(메이플, 김도형 교수)들의 삶과 행동들을 아주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 진술자의 경우에도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극적이라 이게 지금 사실을 폭로하고 있는 것인지 허구를 사실처럼 말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순간들도 있었다. 이처럼 영화적 연출은 시청자의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어 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저널리즘 프로그램으로서 신뢰성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오랜기간 취재해서 구성한 이 사건들이 진실이 아니라 허구로 보일수도 있게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사회적 파급력


과거 지상파가 사회적 여론을 주도하던 시절 MBC의 간판 PD 저널리즘 프로그램 ‘PD 수첩’은 사회적으로 큰 파급을 낳는 사건들을 보도하며 시대의 어젠다를 설정하고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 검사와 스폰서, 장자연 사건, 김기덕·조재현 성폭력 사건 등등은 방영 이후 엄청난 사회적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는 지상파가 사회적 공기로서 사회적 여론을 주도하고 공론장으로서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신이다.’는 ‘PD 수첩’의 문제의식이 인터넷 미디어인 넷플릭스를 통해 구현된 작품이다. 인터넷 미디어가 기존 방송이 누리던 공론장의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폭로 저널리즘의 영역까지 들어온 것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다. '나는 신이다'는 첫 공개일에 넷플릭스 시리즈 6위로 출발해 다음날부터 1위에 올라서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만민중앙교회는 넷플릭스에서 영상이 공개된 이후댓글을 막아놓았다. 관련 기사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으며, 검찰총장은 정명석 교주에 대해 엄정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슈가 서서히 확산 되고 있는데 과연 그 파급이 얼만큼의 크기로 일어날지가 궁금하다. 이는 국내 최대 OTT 가입자를 자랑하는 넷플릭스가 엔터테인적인 측면 뿐 아니라 여론 형성과 아젠다 셋팅에도 어느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간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를 바라보던 우리의 관점을 흔들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새로운 형태의 'PD 수첩'을 내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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