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으로 사유하고 밈으로 소통하는 세대의 시뮬라르크 어쩌구
코로나 아웃브레이크 이후 그냥저냥 살아가던 어느 날, 인터넷 뉴스를 읽다가 스크롤을 내리니 간만에 봐서인지 유난히도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댓글들이 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중에 몇 개만 꼽아보자면 이런 식이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무신론자이며 모든 종교를 싫어한다).
진짜 이러면 안되는데 ㅋㅋㅋ 예수쟁이들 ㅈㄴ 한심하네 ㅋㅋㅋㅋ
2020.05.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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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이래놓고 , 클럽이나 노래방 주점이랑 비교를 하더군요........ 지들 스스로 자기 수준이 어떤 급인지 말하는거죠......... 즉 개신교 교회 = 노래방 = 주점 = 클럽
2020.05.3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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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님 지옥갑니다 교회를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2020.05.3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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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22:05
문죄앙 부덩선거덮으려 완전애쓴다 ㅋㅋㅋㅋ빨갱이
2020.05.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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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회가 다 그런건 아닙니마
2020.05.3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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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우선은 기사 댓글 몇 개만 더 보도록 하자.
이건 그로부터 약 1주일 후에 발견한 기사의 댓글이다.
중국인이 왜 우리 동포냐?동포란 말 뜻도 모르고 사용하는 기레기수준하곤ㅉㅉㅉ
2020.06.08. 17: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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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 막으라 할때는 듣지도 않더니 결국 이렇게 됐죠?빡머가리 문재앙
2020.06.08. 17: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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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포가 뭐냐? 조선족이지 ㅋㅋㅋ 세상의 어느 동포가 동포를 살인하고 강간하고 사기치고 강도짓 하고 있냐? 동포는 고려인이나 재미 한국인등 중국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이지 ;;; 내가 태어나서 착한 중국인은 봤어도 착한 조선족은 본적이 없다 ㅋㅋㅋㅋㅋ
2020.06.08. 17: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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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금지라도 해야지.. 대체 진정이 안되네. 교회나 다단계 모두 모여서 떠드는데 방역수칙 안지켰을테니.. 에휴... 고생하는 의료진들이 무슨 죄냐..
2020.06.08. 17: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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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는 지,.,랄
2020.06.08. 17: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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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고리를 짜려고 하지 마라, 이태원 클럽 1번은 어디서 감염 됐을까? 그건 찾아내지도 못했으면서, 왜 자꾸 고리를 엮는 거지? 이미 지역감염은 진행되어 있는 상태였다. 테스트 가격을 낮추고, 대폭 테스트 수를 늘여야 한다, 특정 감염자와 연관 있냐 없냐를 따지며 테스트를 하는 것 자체가 빈틈을 만드는 거다.
2020.06.08. 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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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근평(시진핑) 한국 방문 하고 돌아 갈때 다가지고 가라고 하면 되겠네.
2020.06.08. 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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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짱깨랑 조선족 좀 내보내라...
2020.06.08. 17: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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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은 한국에서 동포가 중국에서 소수민족이고 한국하고 중국하고 스포츠 게임하면 중국응원한다...한국에서 미세먼지 중국에서 온다고 하면 무슨 소리하냐고 성질낸다...이런 것들이 동포라고 하나 당연히 중국 조선족이라고 불러야지
그러니까... 이 찐의 기운이 느껴지시나요? 이걸 읽는 순간 나는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약간의 진정성을 함유한 패러디인지 아니면 정말 실제로 실제하는 누군가가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인지. 너무도 정석적인 패턴을 따르고 있는 나머지 대체 어느 쪽에서 어느 쪽을 흉내낸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중국동포는 지,.,랄"님과 "습근평(시진핑)"님은 제외한다. 이들의 진정성은 복제도 의심도 불가능하다.) 진심으로 화를 내고 진심으로 비꼬는 것 같긴 한데... 왜 굳이 인터넷 기사 댓글의 정석을 따라 가며 화를 내는 거지?
문제는 하나 더 있다. 분노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댓글을 쓴 누구도 기사를 읽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이 기사는 대림동 상권이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확진자 수 0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중국동포'에 대한 낙인화 탓에 무너지고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댓글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하게도 정형화된 말투와 정형화된 비꼼의 구조대로 혐오를 쏟아내고 설교하고 지시한다.
댓글창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너무도 많은 것들이 오버랩되며 스쳐 지나갔다. 트위터에서 보던 어린 트위터리안들의 애국보수 말투 패러디, 한창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라떼는 말이야", 웹소설─특히 인방물에 자주 나오는 한없이 실제에 가까운 인터넷 댓글창 재현, 기타 등등. 어째서 이런 '애국보수 말투,' '깨시민 말투,' '인셀 말투' 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공유되는 패턴이 생겨버리고 만 걸까? 사람들은 어째서 이 패턴대로 화를 내고 비난을 하는 걸까? 이렇게 분노했을 때 그 분노가 통한 경험이 있어서일까? 이것이 이 세대 가운데서는 용납 가능한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걸까. 소설가 김영하가 어느 방송에선가 이야기했듯, 우리 세대가 한국어로 세분화할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을 "짜증나"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리고 있듯이 이들도 이런 패턴으로 모든 분노와 설움과 기쁨을 표현하도록 굳어지고 만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평소 "너무"와 "진짜"를 쓰지 않고서는 나의 벅찬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듯이, 이 사람들도 감정을 표현하는 길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버린 것일까. 그래서 종래는 그 방향대로 사고하고 말게 된 것일까.
너무도 현실적인 재현과 너무도 재현같은 현실 가운데서 현실이 자꾸만 현실감을 잃는다.
Proust gave modern writing its epic. By a radical reversal, instead of putting his life into his novel, as is so often maintained, he made of his very life a work for which his own book was the model; so that it is clear to us that Charlus does not imitate Montesquiou but that Montesquiou-in his anecdotal, historical reality-is no more than a seconary fragment, derived from Charlus.
-Roland Barthes, The Death of the Author
프루스트는 소설이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소설을 모방하도록 만들었다, 고 롤랑 바르트는 썼다. 그렇다면 이건 밈으로 재구성된 시대인 걸까.
트위터에서 그런 글을 봤다. 젊은 남자들이 밈meme의 숙주 수준으로 밈을 통해서 생각하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글을 보면 거기서 키워드 하나만 뽑아다 그 키워드에 대응하는 밈만을 주구장창 사용하니 어느 게시글을 봐도 댓글이 "가슴이 웅장해진다" 또는 "조용필 오르가즘 추신수" "ㄹㅇㅋㅋ" 정도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논쟁을 할 때도 논리를 이해하고 해당 논거에 맞는 반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화된 대로 "응~ 아니야~ 뷔페미니즘ㅋㅋ 어쩌구저쩌구하쥬?ㅋㅋㅋ" 정도의 반응을 하며 그 승리의 밈을 쏟아낸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였다.
정확한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남자들, 나와 내 아래 또래의 남자들이 유난히 심각하며 여성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다 뿐이지 밈 하나가 유행하면 온갖 댓글창이 그 밈의 패러디로 도배된다. 이를테면 "ㅇㅇ재질 ㅁㅊ다" 같은 (주로 주접에 해당하는) 말들. (그런데 이건 이미 유행이 지나간 밈이던가요?)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로운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고.
인스타에 도는 유행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피사의 사탑은 꼭 아이스크림 콘에 담아 사진 찍기, 에펠탑에서는 Lauv의 Paris in the Rain을 배경음악으로 깔아 스토리에 올리기, 콜로세움 앞에서는 야트막한 언덕 나무둥치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인증샷 찍기, 베를린 장벽에 가면 "형제의 키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할슈타트에서는 선착장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쭉 걸어가면 포토스팟이 나오니 그곳에서 셀카 찍기, 여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찍고 저기에 가면 이걸 먹고 여기에 가면 저걸 하기... 그런 걸 낭만으로 부르는 건 어쩐지 자존심 상한다. 낭만이 어쩜 이렇게 인스턴트야.
판에 박힌 것이더라도 한강 둔치에서의 치맥, 런던 여행 중 펍에서 만난 한국인과의 반가운 한 잔, 스페인 광장에서 먹는 젤라또, 새벽 한 시에 바라보는 화이트 에펠 역시 내가 온전히 소유하는 나의 추억이 될 수도 있을 법한데, 그게 영 어렵다. 특히나 그런 곳에서 사진까지 찍어버린다면, 쾅. 게임 오버. 그 순간 모든 것이 경험이 아닌 전시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적어도 나에게는.
"문학을 부수는 문학"에 공지영의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한강변에 나가 강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죄스러운 시절이었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 316p
책장을 넘기다 이 대목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맥락과 무관하게 온전히 이 문장 하나만으로 돌이킬 수 없이 슬퍼졌다. 내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한강변에 앉아서 흐르는 강물이 아름답다고, 늦은 오후의 햇빛이 부서져 반짝이는 것이 찬란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그게 온전한 나의 감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때의 아름다움과 지금의 아름다움이 그렇게까지 다른 것은 아닐 테지만, 단순히 세월과 조경의 변화를 떠나 나는 그냥 그럴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감상은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으로 남기 어렵다. #한강 은 이미 4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걸어 공유하는 장소이므로.
공지영이 하필 이 광경을 청춘의 상징으로 언급했던 만큼, 아마 그 시절에도 한강 둔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은 어느 정도 관습화된 낭만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강 치맥(혹은 한강 라면)만큼 전국민이 공유하는 정서는 아니었을 것이며, 서울에 왔다면 누구나 당연히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증샷에 해시태그가 달려 값싸게 팔려나가는 아름다움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움이란 개념조차 관습이라 한들, 그 관습마저 이토록 판에 박힌 패턴이 되어버리니 내가 그것을 온전히 소유한단 착각조차 하기 쉽지 않다.
이유 없이도 자주 센치해지던 1학년 늦여름, 혼자 서울 거리를 헤매다 늦은 밤 맥주 한 캔을 사들고 한강변으로 갔다. 가만히 앉아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싶었을 뿐인데 2c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앉은 인파를 발견한 순간 울고 싶어졌다. 아냐, 나는 이만큼 많은 사람들과 이 순간을, 이 곳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 나의 슬픔이 미디어를 모방하는 꼴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전시되고 유행되는 이 인구 과잉의 서울에선 그 어떤 순간도 장소도 나만이 온전히 소유한다고 마음 편히 착각할 수 없다. 이미 수백 수천만의 누군가가 먼저 차지해버린 낭만. 모든 사적인 삶이 전시되는 시대에 나의 진심마저도 무언가의 재현이 되어버린다는 것.
실상 따지고 보면 언어부터가 과거의 밈과 축적된 관습의 총합이지만, 또한 내 행동양식에 묻어난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토록 천편일률적으로 찌들어버린 밈을 읽는 게 더이상 즐겁지 않다. 모든 것이 공유되고 모든 것이 인증되는 시대에 온전히 나만의 낭만을 찾아내는 일은 지난하고, 슬프다.
벌써부터 이런 꼰대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는 것 역시 슬프다.
이런 글은 역시 냉소의 해시태그를 달아 마무리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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