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조용했을 거라고 카뮈가 말했다.
뮌헨에서 오전 11시 반쯤 플릭스버스를 타고, 휑한 잘츠부르크 남역(Salzburg Süd)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반. 뮌헨과 가깝다는 말은 들었지만 암만 그래도 국경을 넘는 건데 예상보다 더 빠르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방에 태극기 마크를 단 한국인 커플이 몇 보였다. 바로 옆에서 한국어가 들리길래 필사적으로 다른 곳을 보며 모른 척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한국에서부터 쓰던 백팩에 노란리본을 그대로 달고 있었으니 봤다면 바로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았을 거고, 알아도 굳이 내게 말을 걸지 않았겠지만, 혼자 첫 유럽 여행을 하는 중이던 나는 그 '혼자임'을 유지하고 싶어 나름 절박했다.
버스표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기계 앞에 우르르 몰려가 줄을 섰다. 현금을 넣을 수 없었던가, 기기가 고장났나, 그래서 다들 헤매느라고 실제로 표를 제대로 산 사람은 몇 없는 와중에 시간만 무작정 지나갔다. 나는 줄 맨 끝에 서서 뒤늦게 오스트리아의 DB(Deutche Bahn, 대중교통 표까지 살 수 있는 독일의 레츠코레일 같은 앱)격인 OBB를 깔아 모바일 티켓을 사려 했지만, (아마도 기숙사에 두고 온 공폰쪽으로 본인인증 알림이 가서) 실패. 결국 버스기사한테 얼마 남지 않은 현금을 내고 탔다.
잘츠부르크 교통권은 시간제 자유이용권이다. 2유로 가량을 내고 한번 티켓을 사면 한 시간 동안 횟수 제한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버스에 들어서면 어딘가에 있는 기기의 입에 표를 들이밀고 시간이 찍힌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개시한 후부터만 표로서의 가치를 가지며, 불시검문에서 표가 없거나 개시되지 않은 것을 들킬 경우 표 가격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 수 있으니 주의. 4유로를 내면 24시간동안 이용이 가능하니(이번에 글을 쓰며 검색해봤다) 암만 생각해도 24시간권을 사는 쪽이 이득이다. 하지만 멍청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1회권을 사버렸고...
ISIC 국제학생증은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데, 대표적으로는 플릭스버스 예매 시 10-15% 할인, N26 계좌 개설 시 20유로 제공 (이건 이미 프로모션 끝났음), 호텔스닷컴 및 마이닝거호텔 등의 호스텔/예약업체에서 10-15% 할인 또는 적립, 기타 등등이 있다. (ISIC 앱을 깔면 지역별 혜택을 확인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에선 도미토리 1박 10유로 내외의 저렴한 가격과 깔끔한 시설, 그리고 ISIC가 제공하는 10% 할인에 혹해 마이닝거 호스텔을 숙소로 골랐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3시. 각 지점마다 방침이 다르지만, 마이닝거 호스텔 잘츠부르크점에선 3유로 가량의 사용료였던가 보증금을 내야 수건 이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추가를 하고 수건을 받아 방에 갔더니 침대 위에 이미 무료 수건이 놓여 있어 허탈했다. 본래 예약한 것도 약간 더 저렴한 6인실이었는데, 배정받은 건 4인실이라 이득은 이득인데 좀 억울한 기분. 또 잘츠부르크엔 '잘츠부르크 카드'라고 정해진 일수 동안 교통편 무제한 이용 가능, 몇몇 시설 무료 입장 가능, 특정 몇몇 시설 할인가에 이용 가능한 관광 카드가 있는데, 가격이 25유로 가까이 하며 대개 그만큼의 혜택을 챙길 만큼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못하기에 사지 않는 편이 낫지만... 역시 멍청한 나는 체크인을 하던 중 로비에서 설명을 듣고 그것도 바로 구입해버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호구네.
짐을 풀어놓고 미라벨 궁으로 향했다. 날이 흐렸지만 오스트리아답게 화려한 정원은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한국인이 역시나 많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비껴가느라 힘들었다. 한 바퀴 둘러본 후 바로 옆의 모차르트 생가(Mozart-Wohnhaus)에 들어갔다. 입장은 잘츠부르크 카드가 있으니 무료지만 오디오 가이드는 5유로였던가 6유로. 한국어가이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볼거리라곤 모차르트가 청소년기에 직접 썼다는 바이올린 정도가 다였고, 나머지는 그가 쓰고 남은 영수증과 작곡 기록 같은 자잘한 기록들. 모차르트 덕후였다면 행복했겠으나 클래식엔 막연한 호감 정도 가진 게 다인 나로서는 그냥 설명을 들으며 그렇군... 휑하군... 하고 생각하며 시간을 떼우다 나올 수밖에.
잘츠부르크 시내에 다니는 버스들은 허공에 연결된 전깃줄 같은 전선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달린다. (대체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잘차흐 강을 통과해 시가지에 들어서자 나름 예쁜 거리가 쭉 이어진다. 모차르크가 태어난 집(Mozart's Birthplace) 앞에 관광객이 늘어서 있는데 생가에서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으므로 이 집은 통과. 배가 고파져 젤라또 하나를 사먹으며 거리를 구경하다가 버거리스타라는 이름의 가격 나쁘지 않은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겨우 자리를 잡고 세트메뉴를 시켜 먹고 있었더니 앞자리에 예쁜 무늬의 숄을 걸친 할머니가 앉아도 되겠느냐 묻는다.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그는 독일어밖에, 나는 영어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둘 다 청해는 어느 정도 되니, 서로 할 말만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선지 신기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가 독일어로 물으면 내가 영어로 답했고 내가 영어로 물으면 그가 독일어로 답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신기해했고, 본인은 터키에선가 이주해 와서 여기에 가족들과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딸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입은 패턴 화려한 가디건이 마음에 드셨는지 몇 번 칭찬했다. 내가 감자튀김이 남을 것 같다고 권하자 배가 고프셨는지 맛있게 드신다. 버거를 해치우고 일어서자 그가 만나서 반가웠다며 손을 내밀기에 악수하고 헤어졌다. 음. 좀 배낭여행 추억썰의 정석인데.
6시가 가까운 시각. 옆의 기념품 가게에서 바이올린 모양의 마그넷 겸 병따개를 사고, 돔 크바르티에 잘츠부르크와 레지던스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안에 들어갔더니 직원이 5분 후에 폐장한다고 안내해줬다. 그렇군... 돌아 나와서 성 마리아 상이 있는 돔플라츠를 서성거리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바로 맞은편의 성당 탑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이어진 레지던스 광장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계셨다. 역시 음악의 도시.
하지만 이쯤에서 카뮈의 글도 읽어주어야 한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만 없어도 조용할 것이다. 한데 가끔 잘차흐 강 위에는 지옥에 빠지는 돈 후안의 오만스러운 아우성이 흐른다.
검색해보니 근처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논베르크 수녀원(Stift Nonnberg)의 묘역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렇다면야, 하고 기운 좋게 계단을 올랐는데 생각보다 길이 가파르고 계단도 끝이 없었다. 점점 높아지는 길을 따라 주위 건물 테라스에 내놓은 화분과 의자 따위를 구경할 수 있었다. 빙빙 돌아 올라가니 나온 고요한 수도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지만 잘 관리된 비석은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대개 고액기부자의 묘겠지.)
수도원에서 내려오자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 제대로 본 것도 없는데 다음 날 잘츠부르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억울해져 깜깜한 카푸치너 언덕길을 잠시 올랐다. 강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만큼 으스스했는데, 막상 걷다 보니 얼마 오르지 않아 전망대가 나왔고, 어둡고 따뜻한 빛에 감싸인 잘츠부르크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돌아서려던 순간 잘츠부르크 전역에서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전날 옥토버페스트에서 마신 술이 제대로 넘어가지도 않았고, 종일 어리벙벙하게 아무데나 다니느라 본 것도 없어서 내내 허탈한 마음이었지만, 비를 피해 나무둥치 옆에서 종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이정도면 됐지, 싶었다.
딱히 맛있는 것도 양이 많은 것도 따끈따끈해서 허기를 제대로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여행을 할 때면 온갖 해산물을 끼운 빵을 파는 노드제에(Nordsee)에서 늘 무언가 사먹게 된다. 어쨌든 독일어권 도시엔 지점이 하나씩은 꼭 있고 저렴하니까. 새우가 몇 개 들어간 크레페를 골라 카드를 내밀었더니 아저씨가 싫어하신다. 현금은 없냐고 자꾸 묻기에 내가 어제 지갑을 잃어버려서(*아님. 카드만 잃어버렸음. 유로화는 아주 조금 남아있었음.) 현금이 없다, 미안하다 하며 학생증을 쥐여주자 거기에 박힌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너 참 예쁘네, 하기에 ??? 아니 왜 본인을 앞에 두고 굳이 얼굴이 아니라 학생증 사진을 보며 그걸 말하지??? 싶었지만 아... 예.... 그냥 감사하다고 말하고 받아 나왔다.
방으로 돌어가니 4인용 도미토리에 두 명의 백인 남자가 드러누워 있다. 인사를 하고 씻고 나와서 호텔 로비에서 사들고 온 맥주를 따고 있었더니 좀 재수없게 생긴 남자가 귀찮아하는 옆의 남자에게 아무도 안 물어본 자기 여행 썰을 풀다가 내게 말을 건다. "어디서 왔어?" "한국." "북? 남?" "남. 그러는 너는 브리티쉬지?" 하고 물었더니 허를 찔린 것처럼 "하!" 하고는 "그럼, 나랑 얘 둘 다 영국에서 왔어," 하면서 재수없는 목소리 재수없는 억양으로 대답한다. 자꾸 내 전공을 묻고는 왜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느냐 또 캐묻고. 뭔가 영국 명문대에 다닌댔던가 자기 자랑을 엄청 했던 것 같은데 말을 받아주지 않고 맥주만 마시고 있으니 곧 조용해졌다.
마지막으로 온 룸메는 역시 백인 남자였는데 새벽 한 시가 넘어 들어왔다. 샤워하는 소리가 시끄러워 여러 차례 깼다. 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상체탈의한 남자가 있어서 당황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화장을 하고 있자니 그도 일어났길래 인사를 주고받았다. 상쾌한 기분으로 체크아웃하고 나왔는데 날이 전날보다도 더 흐리다. 어제 구경하지 못한 성 페터 대주교청 성당에 들어가니 8시. 관광객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어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출입이 금지된 앞쪽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제님이 계셨는데 젊고 성스럽게 잘생기셔서 아주 잠깐 천주교를 믿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뒤에 나온 직원이 성당을 돌아다니며 헌금함에서 돈을 걷어들이는 소리에 마음을 고이 접었다. 고작 하루 쌓인 것일 텐데 십수 개쯤 되는 헌금함을 하나 열 때마다 대부분 유로화일 동전이 수십 수백 개씩 나온다. 차르르르르. 챙그랑 챙그랑. 헌금에 잘못은 없고 헌금 회수하는 직원분께도 유감은 없지만 역시 동전 폭포 소리는 좀 깬다. 종교는 역시 세속적이다.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성당 옆 묘역으로 향했다. 비가 오고 안개가 껴 외려 더 운치가 있었지만, 역시나 관리자 아저씨가 따로 묘실이 마련된 묘마다 문 따고 들어가서 쓸고 닦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생활의 영역에 밀접한 느낌이 들어 큰 감동은 없었다. 아름답긴 했지만 너무 화려해서 자본의 냄새가 너무 진하게 났다. 나는 어느 정도의 jinjungsung이 있어야만 감동하는데, 여긴 전날 들른 수도원보다도 훨씬 더 자본주의적 논리에 충실해 보인다. 기부금을 많이 낼수록 더 화려한 묘역일 테니... (아니라면 모욕해서 죄송 돈 안 내고도 거기 계시는 성인들께도 죄송)
조금 걸어 올라가니 호엔 잘츠부르크 성(Hohen Salzburg)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혹은 스카이레일) 탑승장이 나왔다. 잘츠부르크 카드 소지자에 한해 무료 탑승. 사실 이 성은 궁전보단 요새에 가까워서 별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기왕 잘츠부르크 카드를 산 김에 알차게 써보고 싶었다. 요새답게 안의 박물관(역시나 잘츠부르크 카드 소지자는 무료)에는 성의 건축 당시부터 근현대까지 오스트리아-잘츠부르크가 겪은 전쟁사에 가까운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근위대 제복 실물은 물론이고 군복이나 무기, 훈장도 잔뜩 있었으며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초상화도 있었다.
이외에도 요새 내부에 인형박물관, 무기박물관 등이 있었고, 음악의 도시 답게 도시 전역에서 시간에 맞추어 연주회를 진행한다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직접 듣지는 못했다. 요새에서 내려오는 길에 1유로짜리 따끈한 커피 한 잔을 사고, 근처 빵집에서 오스트리아 명물이라는 압펠슈트루델Apfelstrudel(그냥 애플파이)을 사들고 시간 맞추어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용한 티켓은 유레일패스 유스.
아 참, 여행 떠나기 전 빈대 스프레이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도시마다 빈대 나온다는 후기가 많은 최저가 호스텔들만 골라서 일고여덟 번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빈대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것도 복불복이며 한번 잘못 걸렸다간 소지품 죄 불태우게 될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