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길고 멀다. 투발루는 내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업무를 시작한 뒤로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었던 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투발루로 가는 꿈을 이루는 길고 멀었다. 집에서 부터 투발루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51시간 필요했고, 비행거리만 12,000km에 이르는 길고 먼 길이었다.
투발루는 정말로 낯선 곳이다. 2023년 기준으로 투발루에 외국인이 2,055명 정도가 방문했고, 한국사람은 79명이 방문했다. 그마저도 피지의 한국대사관 직원을 포함하여 정부 간의 업무를 위해 방문한 사람이 34명이다. 나 같이 관광이나 여행을 위해 투발루에 방문한 한국사람은 45명 정도이니, 투발루는 정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선 나라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투발루로 가는 길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투발루로 갈 수 있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니! 한국사람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인데, 가는 경로가 여러 가지가 있다고?”
그렇다. 여러 가지 방법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로로 갈 수 있다. ‘여러 가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여행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중간 기착지를 경험할 수 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가지는 못한다는 의미이다. 여러 가지 경로이지만, 종국에는 한 가지 경로밖에 없다.
우선 투발루로 가기 위해서는 피지의 수도 난디(Nadi)로 가야 한다. 과거에는 난디로 가는 대한항공 직항 노선이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과거에는 피지에 사는 교민도 많았고, 관광객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2019년에 경제적인 이후로 직항 노선이 사라져 피지 난디로 가기 위해서는 국제선 경유가 필수이다.
우리나라에서 투발루는 ① 홍콩을 거쳐 피지 난디로 가거나, ② 호주의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을 거쳐 피지 난디로 가거나, ③ 일본을 거쳐 피지 난디로 가야 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투발루에 갈 수 있는 경로가 여러 가지라고 한 거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투발루에 가기 위해서는 모로 가도 우선 피지 난디로 가야 한다.
여기서 여행자는 또다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투발루 푸나푸티 공항에는 일주일에 비행기가 4회 이착륙한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피지 난디에서 월요일에 1회, 피지의 수도인 수바(Suva)에서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총 3회의 비행기가 출발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난디에 도착한 방문객은 일정이 맞으면 월요일에 난디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고, 일정을 맞추지 못한 방문객은 어쩔 수 없이 국내선을 타고 난디에서 수바로 이동해 수바에서 출발하는 투발루행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수바행 비행기 이륙
경로도 정했으니 이제 항공권을 발권할 차례이다. 그런데 항공권을 발권하면서 순간 멈칫했다. 이번 여행은 기후변화 피해의 최전선인 투발루를 방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소비를 통해 최소한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 중에서 하나였다. 여행사 누리집에서는 내가 이번 투발루 여행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계산해서 알려줬다. 무려 2,814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란 ‘인간이 땅 위를 걸어 다니면서 생기는 발자국과 같이 사람의 활동이나 상품의 생산・소비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생산된 이산화탄소(CO2)의 총 양’을 의미한다. 이번에 비행기를 타서 남기는 나의 탄소빌자국이 2,814kg인 것이다.
항공기는 한 사람을 1km 이동시킬 때 285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항공기는 주요한 교통수단 중에서 온실가스를 제일 많이 배출하는 교통수단이다. 반면에 다른 교통수단인 버스는 68g, 일반 승용차는 55g, 기차는 가장 작은 14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비행기 탑승을 통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기 위해서 만약 32,400원을 기부한다면 그 돈을 활용하여 전 세계에 어딘가에서 진행되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가 기부한 돈으로 인도(India) 주민들에게 조리용 고효율 쿡스토브를 보급한다고 한다. 이 사업은 고효율 조리도구인 쿡스토브를 보급함으로써 기존 저효율 쿡스토브에 비해 땔감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줄어든 땔감 사용량만큼 대기 중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줄어드는 구조이다.
양심에 따라 32,400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투발루에 다녀오는 항공편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이제 0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두 달간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투발루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선택한 경로는 인천공항을 출발해 홍콩을 거쳐 피지 난디에 도착한 후, 국내선을 타고 수바로 이동하는 경로이다. 다만 아침 9시에 출발하는 투발루행 비행기 시간이 안 맞아 어쩔 수 없이 수바에 하루 머물고 투발루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투발루로 가는 경로는 참 힘든 경로이기는 하다. 왜냐면 인천공항에서 피지 난디 국제공항까지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출국 및 입국 수속을 한번 한다. 그리고 피지 난디에서 수바로 국내선을 타기 위해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지 수바에서 투발루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출국 및 입국 수속을 또다시 한다. 출국 수속만 3번을 해야 하는 아주 고된 여정이다.
3월 7일 목요일 새벽 5시 별을 보며 집에서 나와 오전 9시에 홍콩행 비행기를 탄 나는, 한국시간으로 3월 9일 토요일 오전 8시 35분쯤(현지시간 11시 35분쯤) 투발루 푸나푸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51시간 만에 도착한 투발루이다.
투발루 푸나푸티 상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