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발루는 많은 사람에게 상당히 낯선 국가 이름이다. 만약 내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나 역시도 잘 모르고 지나쳤을 이름이다. 구글 지도를 켜고 ‘투발루’나 ‘Tuvalu’를 검색해 보면, 그제야 투발루가 “아~ 여기에 있구나”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이제는 검색하지 않고도 투발루를 구글 지도에서 찾을 수 있지만, 투발루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할 때마다 검색을 통해 투발루를 찾았다. 그만큼 투발루라는 나라가 낯설기도 하지만, 면적이 아주 좁기 때문이다.
투발루는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의 섬나라이다. 한국 사람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호주의 오른쪽과 뉴질랜드의 위쪽에 존재하는 많은 섬 중 하나다. 투발루 주변에는 피지(Fiji), 통가(Tonga), 바누아투(Vanuatu), 사모아(Samoa), 나우루(Nauru)와 같은 섬나라들이 존재한다.
피지는 휴양지로도 알려져 있고, 2019년까지도 대한항공이 직항 노선이 존재했기에 한국 사람도 많이 갔었다. 그리고 통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웃옷을 벗고 입장했던 기수 때문에 그나마 알려진 국가이다.
지도를 봐도 투발루는 너무 낯선 이름이다. 그리고 과연 어떻게 이런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까지 사람이 살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남태평양 수많은 섬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폴리네시아인이라고 한다. 디즈니의 5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가 바로 폴리네시아인을 다룬 영화이다. 주인공인 모아나(Moana)와 마우이(Maui)를 떠올리면, 폴리네이시안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국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Dwayne Johnson)도 폴리네시아인이다.
폴리네시아인 이주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 전 중국과 대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동쪽의 이름 모를 섬으로 진출하던 폴리네시아인 선조들은 기원전 2000년경 필리핀 지역에 도착하고, 기원전 1000년경에 마침내 피지에 도착한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먼바다를 건널 수 있는 항해술을 가지고 있었다.
피지는 지금도 남태평양 섬나라를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이다. 남태평양의 많은 섬나라가 피지발 국제선을 운행하기 때문이다. 피지 난디 국제공항을 거쳐야만 바누아투,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투발루, 통가로 갈 수 있다.
폴리네시아인 이주의 역사도 그랬던 것 같다. 피지에 도착한 폴리네시아인의 선조들은 피지를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진출했다. 북동쪽으로 전진한 폴리네시아인은 900년경 하와이를 발견했다. 동남쪽으로 전진한 폴리네시아인은 900년경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Easter Island)에 도착한다. 그리고 남서쪽으로 전진한 폴리네시아인은 1200년경 뉴질랜드를 발견하게 된다.
폴리네시아인은 아무런 도구 없이 하늘의 별과 달, 그리고 새들의 오는 방향을 따라 작은 카누를 타고 이동한다. 영화 《모아나》에서와 같이 폴리네시아인들은 항해의 달인이었다. 마침내 기원후 1200년경 폴리네시아인들은 하와이, 이스터섬, 뉴질랜드를 정점으로 한 커다란 삼각형 안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모든 섬을 점령했다. 폴리네시아인 점령한 거대한 삼각형 점령지를 ‘폴리네시안 트라이앵글’이라고 한다.
영화 《모아나》를 보면, 모아나의 선조들은 원래 위대한 탐험가이자 항해자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든다. 유전적으로 내재된 피 끓는 탐험에 대한 욕망이 폴리네시아인들을 ‘폴리네시아 트라이앵글’을 개척하게 만든 것일까?
기원전 6000~3000년 전은 기온이 가장 온화했던 시기로 ‘기후최적기’라고 부른다. 이때는 모든 자연 자원이 풍부했고, 이에 따라 인구도 증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3000년 이후로 평균기온이 2~3℃ 정도 떨어진다. 냉해나 혹한으로 인해 농업 생산량도 떨어졌을 것이다. 기후최적기에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식량이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용감한 사람은 “여기서 굶어 죽기보다는 다른 곳을 찾아 나서 봅시다”라고 이야기해서 개척의 역사가 시작됐을 수도 있다.
이렇게 투발루에는 폴리네시아인이 이주해 와서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1567년 스페인의 항해사 알바로 데 멘다냐(Álvaro de Mendaña)가 미지의 남방 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중에 투발루가 발견된다. 기원전 1300년 전부터 폴리네시아인은 투발루에 있었지만, 기원후 1567년에서야 투발루가 서양 세계에 알려진다.
이후 1819년에 미국인 선장 아렌트 데 페이스테르(Arent Schuyler de Peyster)가 투발루의 여러 섬 중에 가장 큰 본 섬인 ‘푸나푸티 환초’를 엘리스섬으로 명명한다. 배 소유자인 엘리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후 투발루를 이루는 9개의 섬에 이름이 붙여져 엘리스 제도(Ellice Islands)가 된다.
19세기 말 투발루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1916년 엘리스 제도는 길버트 제도가 편입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투발루는 미국의 군사기지로 활용되었다. 그 당시 미군은 푸나푸티 환초에 활주로를 만들었는데, 이 활주로는 현재 푸나푸티 국제공항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1974년 엘리스 제도는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투발루와 키리바시로 분리된다. 1978년 10월 1일에는 투발루는 완전히 독립하여 영연방에 가입하게 된다. 2000년 9월 5일에 투발루는 189번째로 UN 회원국이 되었다.
투발루는 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투발루의 전체 국토 면적은 26km2으로 여의도 면적의 3.1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국토의 면적이 작은 나라이다.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나라가 교황이 살고 있는 바티칸, 그리고 모나코와 나우루가 그 뒤를 잇는다.
엄밀히 말해서 투발루는 3개의 섬(나누망가섬, 니우타오섬, 니울라키타섬)과 6개의 환초(나누메아 환초, 누이 환초, 누쿠페타우 환초, 누쿨라엘라에 환초, 바이투푸 환초, 푸나푸티 환초)로 이루어져 있다.
산호들이 오랜 시간 자라고 죽고를 반복하면 산호가 돌처럼 굳어져 암초가 된다. 그런데 암초라고 부르지 않고, 환초(atoll)라고 부르는 이유는 암초가 목걸이처럼 둥근 띠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초 바깥쪽은 남태평양에 노출되어 파도가 높고, 환초 안쪽은 파도가 잔잔하다.
암초 :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아니하는 바위나 산호
환초 : 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 안쪽은 얕은 바다를 이루고 바깥쪽은 큰 바다와 닿아 있다.
특히나 환초가 모두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1개의 환초도 엄밀히 말하자면 1개의 섬이 아니다. 환초를 항공 사진으로 보면 그 모양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띠 모양의 섬들이 둥그렇게 위치하고, 섬들 사이도 중간중간 띄어져 있다.
투발루의 국기에도 9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9개의 별은 투발루를 이루는 3개의 섬과 6개의 환초를 의미한다. 참고로 투발루라는 국명은 “함께 서 있는 여덟 (개의 섬들)”을 의미한다. 투발루를 이루는 섬은 9개이지만, 1978년 투발루가 독립하고 국기를 만들 당시에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8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발루는 1978년 독립하면 영연방에 가입했다. 그렇기에 국기 왼쪽 위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 있다. 참고로 투발루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영국의 찰스 3세 왕이 국가의 원수이고, 4년마다 선거를 통해 총리를 선출한다.
9개의 섬 사이도 마냥 거리가 가까운 것만은 아니다. 투발루의 유일한 공항이 있고, 정부 청사와 관공서가 있는 푸나푸티 섬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섬은 100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투발루 안에서도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 여행을 기획하면서 다른 섬들도 방문하고 싶었으나, 혼자 여행을 간 여행가로서 다른 섬 방문은 안전 측면에서 무리라고 판단하였다. 그렇기에 투발루라는 국가를 다녀왔지만, 내가 다녀온 곳은 엄밀히 말하자면 투발루가 아닌 푸나푸티 환초에 국한한 경험이다.